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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이 -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소녀의 이야기
모드 쥘리앵 지음, 윤진 옮김 / 복복서가 / 2020년 12월
평점 :
<완벽한 아이>를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이 모든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거예요.
설마, 친부모가 이런 짓을 했다고?
그러나 부모에 관한 이야기 역시 평범하지 않아요. 불행의 시작은 루이 디디에의 비뚤어진 정신 세계에서 출발해요.
1936년, 루이 디디에는 서른네 살이고 프랑스 북부 릴에서 성공한 사업가예요. 그는 프리메이슨 비교秘敎의 교리를 받아들여, 이 세상이 타락했고 어두운 힘의 먹이가 되어버렸다는 영적 관점을 지니게 돼요. 그해에 루이 디디에는 릴의 피브 지역에 사는 한 광부를 만나, 그의 여섯 살짜리 막내딸 자닌을 자기에게 맡기라고 제안해요. 자닌을 선택한 이유는 아마 빛깔의 머리카락을 지녔기 때문이에요. 금발의 소녀 자닌이야말로 첫 번째 희생양이라고 볼 수 있어요.
"자닌은 부족한 것 없이 살게 될 거요. 제대로 교육받고, 아주 안락한 삶을 누리면서.
단 하나, 당신이 다시는 그 아이와 만나지 않는다는 약속만 지켜준다면 말이오." (13p)
루이 디디에는 약속을 지켰고, 자닌은 기숙학교에 들어가 훌륭한 교육을 받았어요. 릴 대학에서 철학과 라틴어를 배우게 했고, 학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챙겼어요. 그리고 법적 연령에 이르렀을 때 보호자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살기 시작했어요. 자닌을 처음 데려오고 스물두 해가 지난 뒤, 루이 디디에는 그녀가 자기에게 딸을 낳아줄 때가 되었다고 했고, 그리하여 1957년 11월 23일에 짙은 금발의 여자 아이 모드(Maude)가 태어났어요. 완벽하게 계획된 딸.
아버지가 된 루이 디디에는 자신의 완벽한 딸이 '선택받은' 인간으로서 훗날 인류를 일으켜 세우라는 부름을 받게 될 거라고 했어요. 교육에 필요한 자격증을 가진 어머니 덕에 아이는 외부의 오염을 피해 안전한 곳에서 자라날 수 있게 되었다고요. 자신의 완벽한 아이를 낳기 위해 아내마저도 철저하게 사육했던 남자.
과연 루이 디디에가 만든 왕궁은 완벽한 세상이었을까요?
세상에 단 한 사람, 루이 디디에한테는 완벽했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두 여자는 한 남자에게 감금됐고, 노예와도 같은 생활을 했어요.
그가 딸에게 했던 교육은 교육을 빙자한 고문이었을 뿐이에요. 솔직히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은 어머니 자닌이에요. 그녀는 그와 떨어져서 대학 생활을 했을 때, 왜 벗어날 생각을 못했을까요. 순순히 그의 아내가 되어 아이를 낳았으면서 왜 그 아이를 증오하게 된 걸까요.
너무도 안타깝고 비극적인 일이에요. 자닌은 친부모에게 버림받았고(부모는 딸을 보내지 말아야 했어요), 낯선 남자에게 사육당했으며(겨우 여섯 살 소녀에게 광기에 빠진 남자와의 동거는 재앙이죠), 엄마로서 누려야 할 행복조차 빼앗겼어요 (미친 놈 때문에 출산의 도구가 되었으니 얼마나 끔찍했을까요). 그녀에게 딸은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옭아매는 족쇄였는지도 모르겠네요. 자닌은 그저 루이 디디에가 선택한 삶의 도구였던 거예요, 인간이 아니라.
처음에는 모드의 입장에서 미친 아버지와 방관하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어머니 자닌은, 루이 디디에라는 감옥에 갇혀버린 불쌍한 존재였어요. 누가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녀야말로 철저하게 고립된 채 사랑 없는 삶을 살았는데...
모드는 열여덟 살에 그 집에서 탈출했어요. 그리고 이 책을 쓴 것은 쉰여섯 살 때라고 해요. 2014년 『철책 뒤에서』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어요.
모드 쥘리앵은 정신과의사와 심리치료사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과거를 직시하는 길고 긴 치유의 과정을 거쳤다고 해요. 그 과정 중에 자신처럼 학대의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심리치료 전문가가 되었대요.
거의 사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자신의 과거를 글로 남길 수 있었다는 건 그 시간만큼의 고통을 의미할 거예요.
우리는 그 고통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느끼게 될 거예요. 소름 돋고 구역질 나는... 추악한 인간의 악행.
마치 신처럼 군림했던 잔인하고 비정한 아버지는 그저 나약한 인간이라는 걸, 다행히 모드는 그 사실을 깨달았어요.
모드는 아버지와는 달리 뜨거운 심장을 가진 아이였으니까. 진심으로 동물 친구들을 사랑했고,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인간이었으니까.
괴물이 원했던 완벽한 아이는 또 다른 괴물이 아니었을까요.
모드는 아버지 몰래 많은 책들을 읽었어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백치』를 읽고 도스토옙스키에 빠졌고,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으면서 결말에 담긴 냉혹한 교훈이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느꼈다고 해요.
"그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언젠가 자신의 광기를 깨닫는 날이 온다 해도,
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사람이야. 도망쳐!" (159p)
결국 모드는 그 집을 탈출할 때 딱 두 가지를 챙겼어요. 찢어진 조각들을 셀로판테이프로 붙인 <헝가리 랩소디> 악보와 삼층의 종이 상자에서 몰래 꺼내온 『지하로부터의 수기』.
<완벽한 아이>는 지옥으로부터의 탈출기이며, 모드는 생존자였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