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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읽습니다, 그림책 - 어른을 위한 그림책 에세이
이현아 외 지음 / 카시오페아 / 2020년 12월
평점 :
그림책, 한때는 정말 많이 읽었어요.
아이를 위해서 읽어주는 책이라서 의무감이 더 앞섰던 것 같아요.
당연히 좋은 그림책은 감동과 재미를 주기 때문에 좋다는 걸 알면서도 그 좋은 점이 아이에게만 해당된다고 여겼던 거죠.
그러다가 문득 책장에 꽂힌 그림책을 아이가 아닌 나를 위해 펼쳐 보게 되었어요.
뜨거운 차를 마시면 온몸에 그 온기가 사르르 퍼지듯이, 그림책이 마음속으로 사르르 들어 왔어요.
<좋아서 읽습니다, 그림책>은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의 운영진들이 매주 모여서 그림책과 삶에 대해 나눈 이야기들을 글로 엮어낸 책이에요.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의 운영진들은 아홉 명의 교사들로 이뤄졌는데, 공통적으로 "홀로 우물을 파다가 강물을 만난 느낌"이었다고 이야기하네요. 이들은 좋은 교사를 넘어서 좋은 어른으로 살아가자는 다짐이 있었고, 아이들 곁에서 함께 창작하는 삶을 살아가며, 학교 밖과 안의 온도 차를 줄이는 통로의 역할을 하자는 운영 철학이 있었다고 해요.
첫 집필에서부터 출간까지 꼬박 2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줄 한 줄 쌓아 올린 글들이 100여 편이었고, 그 중에서 열다섯 편의 글을 정성껏 담아냈다는 이야기에 감동했어요.
비록 책을 통한 만남이지만 그림책을 좋아하는 마음들이 통한 것 같아서 좋았어요.
이 책은 그림책을 매개로 한 삶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요.
각자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들려주면서, 그 상황과 꼭맞는 그림책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고 있어요.
런던 여행을 떠나기 한 달 전, 갑자기 아빠가 아프셨는데 병원에서 검사해보니 천식이라고 진단을 내렸대요. 천식약을 복용해도 차도는 없고 도리어 심한 부작용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빠와 병수발을 하느라 지쳐가는 엄마를 지켜보던 저자는 여행을 포기하려고 했대요. 하지만 엄마가 다녀오라고 하셔서 무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대요. 런던 숙소에서 만난 친구 미영이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는데, 천식은 큰 병이 아니라서 괜찮아지실 거라는 미영이의 담담한 말투가 비수처럼 마음에 꽂히더래요. 자신의 고민을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는 것처럼 느꼈던 거죠.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한 고통을 마주하고 나서야,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대요. 타인에게 무심코 건넸던 말들은 위로였을까, 비수였을까.
아마도 이런 경험이 있을 거예요. 자신이 고통을 겪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감정들, 그래서 아픔과 고통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공감은 존재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이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저 역시 아프고 난 뒤에 배웠어요.
《비폭력대화》(마셜 B. 로젠버그 지음, 캐서린 한 옮김, 한국NVC센터,2011)에 의하면,
우리는 고통받고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공감하기보다는 상대방을 안심시키고 조언을 해주거나 자신의 의견과 느낌을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요.
... 책에서는 공감의 열쇠가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온 존재로 상대방과 함께 있는 것이라고 했어요.
... 도대체 존재로 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의문은 그림책《가만히 들어주었어》를 읽으면서 한 겹 풀렸어요.
주인공 테일러는 공을 들여 새롭고 특별한 뭔가를 만들었는데 난데없이 새들이 날아와 망쳐버렸고, 여러 동물 친구들이 차례로 다가와 테일러를 위로하기 위해 애쓰지만 테일러의 기분은 전혀 풀어지지 않아요. 그때 토끼가 조용히 다가와 테일러가 따뜻한 체온을 느낄 때까지 말없이 그 옆에 머물러줘요. 테일러가 말을 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테일러의 말을 가만히 들어줘요. 그러자 놀랍게도 테일러는 다시 일어날 힘을 얻게 돼요.
... 공감의 핵심은 《가만히 들어주었어》의 토끼처럼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에요. 상대방의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는 것이에요.
(105-106p)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의 운영진이자 이 책의 저자들 - 이현아, 김다혜, 김미주, 김설아, 김여진, 김지민, 우서희, 이한샘, 조시온 - 에게 그림책은 어떤 의미일까요.
아홉 가지 답변 중에서 "간지럼"이라고 표현한 내용이 가장 제 마음과 통했던 것 같아요.
그림책이 왜 좋냐고 물으면 그냥 좋다는 말 이외에는 할 말이 없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을 김미주님의 표현을 빌려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림책은 나를 간지럼 태운다. 세상에 마음을 닫고 꽁꽁 얼어붙어 있는 나에게 어느 날 그림책은 다가와
"너 언제까지 그렇게 버티나 보자"하며 옆구리를 간지럽혔다.
간지럼을 참지 못한 나는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쭉 펴고 마음속에 담았던 말들을 하나둘씩 표현하게 되었다.
오늘도 그림책 한 권을 펼치니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로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 김미주 (197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