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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핑 더 벨벳 ㅣ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평점 :
<티핑 더 벨벳>은 세라 워터스의 소설이에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세라 워터스의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네요.
<티핑 더 벨벳>이 데뷔작이며, <끌림>, <핑거스미스>로 이어진다는 것.
그 중 <핑거스미스>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아가씨」원작 소설이라는 것.
솔직히 놀랐어요. 열여덟 살 낸시는 작은 마을의 오래된 대가족과 살고 있는 평범한 소녀였어요. 가족들을 도와 굴 따는 배에서 일하며 지냈는데 연예장, 일종의 극장인데 그곳에서 공연하는 남장 배우 키티 버틀러를 만나면서 열병을 앓게 되었죠. 이른바 사랑의 열병.
누가 알았겠어요. 소녀가 남장배우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이야. 키티는 남자 옷을 입고 남자인 척 노래를 불렀지만 미소년의 느낌을 풍기면서 묘한 매력을 발산했어요. 처음엔 잘생긴 외모의 남자 같아서 키티를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냥 사랑에 빠진 거예요. 키티는 자신에게 푹 빠진 낸시에게 제안했어요. 의상 담당자가 되어 자신과 함께 런던에 가자고 했어요. 이 무모한 제안에 낸시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허락했어요. 가족들과 떨어지는 것쯤은 괜찮다고 여길 정도로 낸시에게는 오직 키티뿐이었어요. 바로 그게 가장 큰 문제였어요.
처음에 놀랐던 건 낸시가 동성의 키티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홀린 듯 빠져든 사랑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키티 곁에는 매니저 역할을 해주는 월터가 있었고, 월터는 낸시의 노래 실력을 알아보고 키티와 함께 남장배우로 무대에 서게 했어요.
키티 버틀러와 낸시 킹의 공연!
당시에 남장 여가수 두 명이 무대에 서는 일은 처음이라서 대박이 났고, 두 사람은 많은 공연을 하며 돈을 벌었어요. 그리고 은밀하게 사랑을 나누었죠. 낸시는 왜 사랑을 숨겨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렸어요. 어리숙했던 거죠. 그러다가 낸시가 며칠 고향에 다녀온 사이에 모든 게 바뀌었어요. 예정된 날짜보다 일찍 돌아온 낸시의 눈앞에는 키티와 월터가... 엄청난 충격을 받은 낸시에게 키티는 폭탄 선언을 해버렸어요. 월터와 결혼하겠다고. 낸시는 한순간에 버림 받았어요. 도망치듯 숙소를 뛰쳐나온 낸시는 겨우 새로운 숙소를 구하지만 완전 폐인 같은 생활을 하게 되고, 그 뒤에는 생계를 위해 남창 노릇을 하다가 돈 많고 나이든 여자의 성노리개가 되는... 적나라한 성적 묘사가 너무 자극적일 수 있으나 그건 낸시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어요. 낸시는 몸은 성숙한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미숙한 소녀라는 걸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키티의 사랑은 찰나의 불꽃이었기에 낸시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만 남겼을 뿐, 성숙한 사랑이 무엇인지는 배우지 못했던 거예요. 그래서 제삼자의 눈에는 사랑이 아닌 쾌락 혹은 타락으로 비쳐졌을 것 같아요. 키티는 그걸 알았고, 낸시는 몰랐던 거죠. 순진한 시골 처녀는 도시에서 혼자 사는 여자가 되어 파란만장한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게 돼요.
결국 낸시가 그토록 원했던 건 진정한 사랑이었어요.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이 깨지는 순간 삶을 포기한 듯 보였지만 낸시를 구원한 것 역시 사랑이었어요.
저자 세라 워터스는 퀸 메리 대학교에서 레즈비언과 게이 역사 소설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박사 논문을 준비하다가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해요. 빅토리아 시대의 낸시라는 인물은 단순히 동성애자라기 보다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사회적 약자로 느껴졌어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사랑 앞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회적 금기마저 넘어서는 역동적인 인물이라서 더욱 놀라웠던 것 같아요. 정말이지 대담하고 도전적인 작품이었어요.
「우리는 누구와도 같지 않아요!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일 뿐이에요.」
「그렇지만 만약 우리가 단지 우리 자신일 뿐이라면, 왜 우리는 그걸 숨겨야 하는 거죠?」
「왜냐하면 우리와 그런 여자들 사이의 차이점을 아무도 모를 테니까요!」
내가 소리 내어 웃었다. 「차이가 있어요?」 내가 다시 물었다.
키티는 여전히 시무룩하고 우울해했다. 키티가 말했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해요. 당신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알지 못해요......」
「전 이게, 우리가 하는 게 그르지 않다는 걸 알아요. 세상이 이런 행동이 옳지 않다고 말할 뿐이에요.」
키티는 고개를 저었다. 「같은 거예요.」 키티가 말했다. (176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