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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
패트릭 스벤손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의철학 / 2021년 1월
평점 :
품절
<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는 특별하고 기이하고 놀라운 이야기예요.
이 책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냐고 묻는다면 제목 그대로, 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한마디로 신기해요.
상상도 못했던 신비로운 물고기와의 만남이 우리의 삶과 죽음이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는 일이 될 줄은 몰랐어요.
저자는 뱀장어 낚시를 좋아했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사르가소해에 대해 말해줬을 때, 그곳이 마치 마법에 걸린 동화 속 세상 혹은 세상의 끝처럼 느껴졌다고 해요. 사르가소해(Sargasso Sea)는 북서대서양 지역의 바다이며 뱀장어가 탄생하는 장소라고 해요.
솔직하게 한 번도 뱀장어의 생활사를 궁금해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뱀장어에 대해 아는 거라곤 먹어본 맛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뜨거운 팬에 구워지는 음식으로만 여겼지, 방금 전까지 살아 있었던 생명체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던 것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의 정체는 바로 뱀장어예요.
아마 다들 뱀장어와 '신비로움'이라는 조합이 이상하게 느껴질 거예요. 익숙하게 봐 왔지만 실상 아는 게 없는 뱀장어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진 않으니까요.
그런데 뱀장어와 관련된 인물들을 보면서 무척 놀랐어요. 어쩌면 뱀장어보다 뱀장어를 연구했던 사람들 때문에 궁금해졌던 것 같아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뱀장어를 연구했다고 해요. 그의 위대한 저서인《동물의 역사》에는 동물과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독창적이고 급진적인 접근법이 나오는데, 그것이 곧 현대 생물학과 자연과학을 탄생시켰다고 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을 바탕으로 접근했고 자연을 체계적인 관찰로 기술할 수 있어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뱀장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이한 주장을 유별나게 많이 한 대상이었대요. 뱀장어를 아주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연구했는데도 불구하고, 뱀장어가 생물학적 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무에서 탄생한다는 비과학적인 결론에 도달한 거예요. 바로 그 점이 뱀장어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어요. 뱀장어는 이상한 생활사와 변태, 생식에 대한 우회적 접근 때문에 관찰하기가 극도로 어렵고, 증명된 수수께끼가 거의 없다는 것. 우리가 뱀장어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다는 건 그럴 수 있지만 동물학자들조차 밝혀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신비로운 존재로 만든 거죠. 우리는 뱀장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동물학자들은 이를 '뱀장어 질문'이라고 한대요.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아시나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원래 의대생이었지만 카를 크라우스 교수에게 철학, 생리학, 동물학도 배웠대요. 카를 크라우스 교수는 해양동물학 전문가이며, 자신이 속한 분야의 모든 사람들처럼 뱀장어에 관심이 많았대요. 자웅동체 동물을 연구했는데, 당시 뱀장어는 자웅동체라고 여겨지던 때였어요. 빈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트리에스테에 있는 해양 연구소의 책임자였기 때문에 열아홉 살의 프로이트를 자신의 해양 연구소에 파견보냈던 거예요. 그리하여 프로이트는 몇 주 동안 지중해에 있는 실험실 책상에 앉아서 뱀장어를 자르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수컷 뱀장어의 생식기관을 찾기 위해 애썼지만 고환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야심만만했던 열아홉 살의 프로이트는 첫 번째 과학적 임무에서 좌절했지만, 그의 실패는 운명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뱀장어의 성과 생식기에 관한 수수께끼는 못 풀었지만 환자들의 심리를 치료하면서 성과 성적 특성을 탐구하게 되었으니까요.
레이첼 카슨은 20세기에 가장 저명하고 영향력 있는 해양 생물학자 중 한 명이었다고 해요. 그녀가 해양 생물에 대한 획기적인 책을 여러 권 썼다는 사실보다는 환경운동의 개척자로서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예요. 대학원에서 해양 생물학 연구를 시작했는데, 그때 뱀장어에게 매혹됐다고 해요. 몇 년 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카슨이 어머니와 언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처지가 되면서 적은 보수를 받는 연구소에서 일할 수 없게 되었대요. 미국 수산청에 고용된 그녀의 임무는 해양 생물에 대한 팸플릿 글을 쓰는 작업이었는데, '물의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바닷속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를 썼대요. 그녀의 상사가 이 글은 수산청의 정보 팸플릿으로 적합하지 않다면서, 잡지사에 보내보라고 말했대요. 그렇게 해서 카슨은 작가가 되었어요. 레이첼 카슨의 첫 번째 책《바닷바람을 맞으며》에서 뱀장어를 소개한 부분이 나오는데, 바다의 흥미로운 복잡성을 대표하기에 뱀장어보다 나은 생물을 찾지 못했다고. 그녀가 출판사에 보낸 편지에도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나는 많은 사람들이 뱀장어를 보기만 해도 몸서리를 친다는 것을 압니다.
나에게 (그리고 뱀장어의 이야기를 아는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것입니다) 뱀장어를 보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멀고 놀라운 곳까지 여행한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순식간에 나는 뱀장어가 지나온 낯선 곳, 인간인 내가 결코 갈 수 없는 곳의 생생한 그림을 봅니다." (175p)
뱀장어는 사르가소해로 돌아갈 여건이 되지 않으면 마지막 변태를 거치지 않는다고 해요. 영원한 아이로 남은 피터팬처럼.
대신에 기회가 생기면 기력이 다할 때까지 바다를 향해 머나먼 길을 떠나는 거예요. 뱀장어는 자신의 삶이 원래 정해진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모든 것을 보류하고 죽음마저도 거의 무기한으로 미룰 수 있다고 해요. 뱀장어는 변태를 거칠 때마다 다른 형태가 되고, 현재 어디에 있는지, 그 환경에 따라 생활사의 각 단계가 길어지거나 압축될 수 있대요. 뱀장어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신기했던 건 뱀장어에 관한 이야기와 저자의 개인적인 가족사가 전혀 이질감 없이 흘러갔다는 거예요.
저자의 아버지는 동물을 아주 많이 좋아했지만 가끔은 동물을 죽였다고, 그건 살생이나 폭력을 즐겨서가 아니라 옳다고 여겼기에 그렇게 했던 거예요. 아버지는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힘뿐만 아니라 책임도 있다고 믿었던 분이에요. 살릴 것인가, 아니면 죽일 것인가, 이런 책임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항상 명료하지는 않지만 어찌됐든 회피할 수 없는 책임인 것은 분명해요. 생명에 대한 존중, 그 존중이 필요한 책임에 대해서 우리 역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인간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는 것을 죽음을 통해 배우는 것 같아요. 인간의 생명은 누구의 손에 달려 있을까요.
지금 뱀장어가 빠른 속도로 멸종하고 있다고 해요. 왜 뱀장어가 사라지고 있을까요.
우리는 그 답을 알 수 없어요. 다만 한 가지는 알고 있어요. 이 일은 우리의 잘못이라는 것. 뱀장어가 직면한 위협에 대해 모두 알지 못하지만, 가장 오래된 위협은 어업이라고 해요. 또한 실증하긴 어렵지만 가장 심각한 위협은 기후 변화예요.
과연 우리는 뱀장어를 구할 수 있을까요. 멸종된 도도처럼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신비로운 물고기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까요.
세상의 신비는 풀리지 않아도, 우리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