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할머니 약국
히루마 에이코 지음, 이정미 옮김 / 윌마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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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목만 봤을 때는 소설인가 싶었죠.

100세 할머니는 낯설지 않은데, 약국과의 조합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 뭔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거든요. 아무리 백세 시대라고는 해도 그 나이까지 일하는 모습은 상상한 적이 없어요. 막연하게 행복한 노년의 삶이란 일 대신에 다양한 취미를 즐기는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근데 할머니 약사님을 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사명감과 열정으로 기쁘게 일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축복일 수 있겠구나라고 말이죠.

《100세 할머니 약국》은 1923년생 히루마 에이코 약사님의 에세이예요.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손자 고지로가 등을 떠밀어 준 덕분이라고 해요. "아흔여섯 살이니까 의미가 있는 거예요. 지금이니까 다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고요." (156p) 실제로 일본 도쿄의 번화가 골목에 자리한 히루마 약국을 찾는 동네 사람들은 히루마 할머니의 얼굴을 보면 어쩐지 힘이 솟는다고, 올 때마다 악수를 하며 기운을 받아 간다고 하네요. 히루마 약국은 전쟁 중 공습을 피해 나가노로 피난을 떠났던 히루마 에이코 씨의 아버지가 폐허로 변한 도쿄로 돌아와 빈손으로 시작한 곳으로 1923년 문을 열었다고 해요. 어렵던 시절에 병원보다 쉽게 찾을 수 있는 구제소 같은 역할을 해온 약국인데 그 아버지의 마음을, 딸인 히루마 씨가 이어서, 지금은 며느리와 손자, 다른 약사들이 함께 일하며 어아가고 있는 거예요. 모든 것이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한 도쿄에서도 끝까지 타지 않고 살아남았던 건물이 존재하듯이 저자는 모두에게, 잃어버린 것이나 절망에 향해 있는 시선을 남아 있는 빛으로 돌려 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말로만 하는 조언이 아니라 본인도 아흔다섯 살 때 인공관절 수술을 받고 다시 걷기 위해 매일 재활 훈련을 할 때 희망을 놓지 않았다고 해요. 위기의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았던 건 삶에 남아 있는 빛에 시선을 두겠다고 다짐했고, 그 다짐을 평생 지켜왔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손님들에게 그 빛을 발견하고, 다시 하루를 살아갈 마음이 되어 주는 순간들을 찾으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늙어서도 행복하게 지내는 히루마 약사 할머니를 보는 것만으로도 젊은 사람들이 힘과 용기를 얻고 있어요. 매일 같이 손님과 이야기하고 약을 건네다 보니 만병은 마음에서 온다는 말이 맞다면서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용서하라고 조언해주네요. "만병은 마음에서 옵니다.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일이 병을 막고 증상을 완화해 주지요.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은 나에게 꼭 맞는 약이 되어 줍니다." (95p) 오랜 세월을 산다고 해서 저절로 지혜가 생기는 건 아닌데 히루마 에이코 씨는 지혜로운 어른이네요. 함께하는 사람들을 소중하고 다정하게 대하는 그 마음, 무엇보다도 배움의 즐거움을 아는 삶의 태도가 참으로 아름답네요. 100년을 살아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인생 이야기라서 특별했네요. 근황이 궁금하여 찾아봤더니 올해 봄, 10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네요. 남겨진 이 책의 인생 조언을 마음에 새기며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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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사람들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청와대를 받치는 사람들의 이야기
강승지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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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하루아침에 전면 개방된 청와대를 보면서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더랬죠.

이토록 중대한 결정이 아무런 준비 절차도 없이 즉각적으로 이뤄졌다는 자체가 너무 황당했어요. 청와대라는 공간의 특수성 때문에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의 속사정을 알 길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기분이 묘했어요. 텅 비어 있을 거라고 상상했는데 여전히 묵묵하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청와대를 받치는 사람들이 있었네요. 《청와대 사람들》은 청와대에서 일하고 있는 강승지님의 책이에요. 미술을 전공하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하다 청와대에 들어간 저자는 지난 정부가 출범하던 전날, 인사팀에서 "인사 발령 없습니다." (155p)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해요. 교체 없이 그대로 직무가 유지되면서 청와대가 변해가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사람이 되었고, 이 책에서 첫 출근부터 현재까지의 청와대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나에게 청와대는 '직장'이었다. 직장이란 자리가 있고, 일이 있고, 함께하는 사람이 있어야 살아 움직인다. 구내식당도 운영을 멈췄다. 조리팀 직원들의 이사는 신속하게 진행됐다. 남겨진 사람들의 식사는 각자의 몫이 됐다. 도시락으로 때우거나, 근처 관사로 뛰어가거나, 편의점에 줄을 서는 일이 반복됐다. 구내식당이 사라졌다는 건, 더 이상 이곳이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뜻으로 다가왔다. '아, 내가 이어온 일이 아주 쉽게 없어질 수도 있구나.' 낯설었다 하나의 체계가 끝나고 다른 체계가 들어오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그 시간은 조용히 나를 관찰자로 만들었다." (156p) 이상하게도 저자가 일하는 사람에서 관찰자로 변해버린 상황에 감정 이입이 되어 착잡하고 씁쓸했어요. 더군다나 다음의 일화는, 좀 화가 났어요. 관람객들이 출입증을 목에 건 저자를 향해 낙하산, 세금 운운하며 함부로 떠든 건 선을 넘는 무례함이고, 폭력이네요. 청와대가 개방되고도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 중 101경비단은 정복을 입고 초소에 서 있는데, 관람을 하던 여성이 갑자기 초소에 정복을 입고 정자세로 서 있는 101경비단 직원에게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더라는 거예요. 순간 초소 안 직원의 표정이 굳었는데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묶여 있더래요. 자랑스러워야 할 그 역할이 한순간 포토존 전시물로 변질된 거죠. 문득 이토 히로부미가 창경궁을 동식물원이 있는 창경원으로 만들어 구경거리로 전락시킨 사건이 떠오르네요. 저자의 말처럼 청와대를 받쳐온 사람들은 늘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주목받지 않지만, 없으면 공백이 느껴지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 안에 존재했던 여전히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없었더라면 그 고마움을 몰랐을 거예요. 세상은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지탱하는 이들 덕분에 잘 굴러가고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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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환하니 서러운 일은 잊어요 - 문태준 시인의 초록문장 자연일기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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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주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참 부럽더라고요.

겨우 며칠 간의 여행에서도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을 바라보며 힐링이 되는데 이 좋은 걸 매일 누릴 수 있는 이들은 축복이지 않을까요.

《꽃이 환하니 서러운 일은 잊어요》는 문태준 시인의 제주살이 5년간의 기록을 담은 책이에요.

저자는 시골로 들어와 살면서 조금 바뀐 것이 있다면 조용하게 은은하게 일어나는 생활의 태도라고, 그것이 시골살이의 매력인 것 같아요. 마음은 자연에 있지만 몸은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에 끌리나봐요. 시인의 제주살이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역시나 초록의 문장들이 주는 싱그러움과 일상의 노동을 느낄 수 있는 땀내음이 있네요. 푸른 비와 맹꽁이 울음소리, 꽃들이 활짝 핀 여름 정원으로 시작해 가지마다 조롱조롱 자줏빛 무화과 열리는 가을을 거쳐 싸락눈 내리는 겨울, 한동안 얼어있던 마당가 수도에서 맑은 물이 쏟아지는 봄의 정원과 산빛을 보여주고 있어요.

"한동안 작약꽃이 피어 화단과 마당을 환하게 밝히더니 작약꽃이 지고 낮달맞이꽃이 피었다. 이 꽃들은 오일장에서 사서 심었는데 이제 두 해째 꽃이 피었다. 구근에서 시작된 이 꽃들은 각각의 성품에 기초한 것이되 흙과 물과 바람과 햇살과 구름과 꿀벌과 낮과 밤과 나의 작은 노동을 흔쾌히 받아서 개화한 것이다. ... 꽃은 험담을 할 줄 모르고, 꽃은 불평이 없고, 꽃은 분노가 없다. ... 연한 꽃잎이 수줍은 듯이 피어 있다. 그 꽃 앞에 내가 앉고, 식구가 앉고, 찾아온 손님이 앉고, 나비가 앉고, 시간이 앉는다. 가만히 앉아 숨을 고르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기운을 받는다. 꽃이 환하니 사람도 환하고 세상도 환하다. 서러운 일은 잊을 수 있다." (26-27p)

누가 작약꽃을 좋아한다길래 어찌 생겼나 보았더니, 아하, 겹겹이 여린 꽃잎을 옹그린 어여쁜 꽃이더라고요. 시인은 마당 화단에 작약꽃을 심어 봄마다 언제 피어나려나 마음 설레며 기다린다고 하네요. 이 기다림 자체가 개화를 보는 순간 못지않게 좋다고,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시골의 자연 속에 살면서 화단을 가꾸고 텃밭 농사를 짓는 시인의 일상을 보고 있노라니 소박하고 평온한 기쁨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네요. 내 마음속에도 작약꽃이 피어난듯 환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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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오세요, 저승길로 로컬은 재미있다
배명은 지음 / 빚은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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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에서 귀신이 젤로 무섭다는 사람들 중에 진짜 귀신을 만난 경우는 얼마나 될까요.

저 역시 지금껏 살면서 귀신을 본 적은 없지만 보이지 않을 뿐이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상상은 해봤어요.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나 악행을 저지른 자들은 쉽사리 이승을 떠나지 못해 귀신이 되어 떠도는 거라고 말이죠. 어찌됐든 귀신 이야기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인데, 이번 책에서 만난 귀신들은 친근한 이웃처럼 느껴졌네요. 특히 사천왕, 불교에서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킨다는 수호신의 등장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K 판타지가 완성된 것 같아요.

《놀러오세요, 저승길로》는 배명은 작가님의 어반 판타지 장편소설이에요.

이 소설의 주인공 여운영은 번아웃인 건지, 알 수 없는 우울감 때문에 회사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퇴사를 결정했어요. 막막한 운영에게 아빠는, 2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집을 유산이라며 주셨어요. 수원시 행궁동에 위치한 이층집은 1970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손수 지으신 집이라, 차마 팔 수 없었던 운영은 돈도 아낄 겸 직접 고쳐가며 커피숍을 준비하는데, 카페 이름은 '카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고 지었네요. 집을 수리하던 도중, 2층에 숨겨진 문을 발견하고 억지로 없앤 듯한 계단 아래에 골목으로 이어지는 입구를 막은 담장을 허물게 되는데... 어설픈 해머질로 담벼락을 부수다가 뜻밖의 손님을 만나게 되면서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는 이야기네요.

카페 주인이 된 운영과 저승길 상인회 그리고 사천왕의 아찔한 만남으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라는 신비로운 세계의 문이 열렸네요. 처음 접하는 이야긴데 전혀 낯설지 않은 이 익숙함은 우리 고유의 정서와 문화적인 공감대일 거예요. 사천왕 중 '국'은 왜 운영에게만 꼼짝을 못하는 걸까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망자들, 별별 귀신들, 저승길에 있는 상인들 등등 참으로 살벌하고 괴이한 존재들인데 무서워하기는커녕 참견하고 오지랖을 떠는 운영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졌어요. 운영이 본인만 몰랐던 매력과 대대로 내려온 특별한 재능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랄까요. 수원 화성 축제가 열리는 행궁동 거리, 그 어디쯤 있을 것 같은 운영의 카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가보고 싶네요. 분명 작가님은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을 거라고, 혼자만의 기대를 품고 있네요. 운영과 국의 컬래버레이션, 여기서 멈추기엔 너무 환상적이잖아요.


"있잖아요. 이 모든 게 운명 같지 않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OO를 보려고 필연들이 이 자리에 다 모였잖아요.

작은 세계평화 같달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평화가 오래 가도록 노력해야겠군요." (2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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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사투리 - 서울 사람들은 이거 어떻게 읽어요? 아무튼 시리즈 70
다드래기 지음 / 위고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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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잉, 실물 책이 요렇게 쪼매난 줄 몰랐네요.

문고판 사이즈보다 더 작은 것 같아요. 평소 사용하는 수첩 크기라서 주머니에 쏙 들어갈 듯.

《아무튼, 사투리》는 아무튼 시리즈 70번째 책이라고 하네요. 그동안 아무튼 시리즈의 다양한 주제들을 보면서 약간의 호기심 정도로 그쳤는데 이번엔 사투리가 좀 궁금했어요. 주변에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우리말인데도 우리말 같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사투리, 그것이 알고 싶다는 심정으로 책을 펼쳤는데, 사투리에 대해 할 말 많은 저자의 흥미진진한 화개장터 인생 스토리를 만났네요. 부산에서 태어나 광주에 살고 있는 만화가 '다드래기'는 현재 영호남을 관통하는 화개장터 언어를 구사하고 있어요. 자연스러운 경상도와 전라도의 컬래버레이션이라는데, 사투리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어떤 느낌인지 영 감은 안 오지만 쫀득쫀득한 말맛이 주는 재미가 있네요. 사투리의 재발견, 요근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사투리 자체가 맛깔스럽게 등장하면서 사투리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각 지역이 가진 정서적 특성이 녹아있는 사투리, 드디어 그 언어적 가치에 대해 제대로 알아봐주는 시대가 온 것이겠지요. 저 역시도 잘 몰랐던 사투리의 묘미를 알아가는 중이네요.


"영화 <친구>가 나에게 그랬듯 지역 배경의 드라마들이 수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지난 시간의 추억을 상기시켰고, 그와 함께 슬쩍 누르고 있던 사투리를 분출하게 만들었다. 부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큰 신호탄이었던 것 같다. 이후 광주를 배경으로 한 <오월의 청춘>, 제주인들의 삶과 사랑을 그린 <우리들의 블루스>, 충남 부여의 청년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년시대> 등이 계기가 되어, 드라마 속 사투리에 반응한 지역 사람들의 격의 없는 대화가 순식간에 SNS를 훈훈하게 만들기도 했다.

특히 육지 사람은 알아듣기 힘든 제주도 사투리가 나오는 드라마에 대한 제주인들의 반응은 한결같은데, 바로 '나는 안 쓰는 말인데 신기하게 다 알아먹겠다'는 것. 그들 또한 그야말로 몸속에 사투리가 스며든 것이다." (1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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