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가 - 시야를 열어주는 휴머니즘의 대답들
앤드루 콥슨 지음, 허성심 옮김 / 현암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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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수많은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울렁증을 느끼네요.

시끄러운 소음 속에 갇혀서 진짜 들어야 할 내용은 전혀 듣지 못하고 있는 듯 답답했네요.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가'라는 제목을 봤을 때, 헤매고 있던 길에서 이정표를 찾은 느낌이었어요.  세상과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서른한 명의 지식인들에게 답을 들을 수 있는 책,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가》는 전업 인본주의 활동가이자 작가, 영국 인본주의 협회 Humanists UK의 최고 책임자, 국제 인본주의 및 윤리 연합 Humanists International 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앤드루 콥슨의 책이에요. 이 책은 저자는 팟캐스트 <나는 이렇게 믿는다 What I Believe>를 진행하며 만난 인본주의자들의 철학과 가치관을 정리한 대담집으로, 크게 세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어요. 여기에 나오는 대담자들은 모두 인본주의자라서 대부분 공통된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각자 인본주의적 신념에 이르게 된 경로가 다르고, 직업군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을 만날 수 있어요. 이성, 과학 그리고 진리에 관하여, 사랑, 존중 그리고 공감에 관하여, 자유, 평등 그리고 정의에 관하여, 라는 주제만 보더라도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의 모든 가치를 다룬다고 볼 수 있어요. 전적으로 그들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지 않아도 충분히 수용하고, 새로운 관점들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했네요. 세상의 이치를 해석하고 명확하게 이해하려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값진 답변들이 많았네요. 나이들수록 호기심과 열정이 줄어든다는 건 편견인 것 같아요. 배움의 즐거움을 알고 나면 점점 더 흥미로운 것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잘 산다는 것, 좋은 삶이란 개인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세계 안에 존재하는 우리로서 바라보니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네요. 결국 개인의 좋은 삶이란 좋은 사회적 환경이 갖춰진 좋은 국가에서 가능한 일이네요. 기후 변화, 세계적 빈곤, 경제적 불평등, 사회 부조리와 같은 문제들은 세계 각국의 사려 깊은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동참해야만 모두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는 것. 요즘처럼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시기에 현명한 인본주의자들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해요. 휴머니즘, 인본주의의 핵심 철학과 가치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 인간답게 살고자 노력해야만 해요.


Q. 선생님께선 인생에서 두 가지 질문이 있다고 하셨죠. '무엇이 실재하는가'와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인데요. 과학적 방법과 과학적 세계관을 전적으로 따른다고 하셨는데, 그런 의미에서 물질주의자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선생님의 답은 무엇입니까?

A. 제가 무조건 중요하다고 믿는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모든 인간 개개인입니다. 어떤 조건도 붙지 않아요. 인간은 누구나 매우 명백하게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인간의 삶이 있는 모든 곳에는 세심한 관심을 받아 마땅한 존재가 있습니다. 지금 진행자님과 제가 서로에게 받고 있다고 느끼는 그런 종류의 관심 말이에요. 저에게는 이게 도덕의 근본적인 사실이에요. 사람들은 말로는 쉽게 모든 인간이 소중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 믿음에 따라 살아가는 건 전혀 다른 문제죠. 칸트가 '정언 명령'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도덕적 명령 중 하나는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식고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식과 윤리는 우리에게 각자의 책임을 분명하게 정해주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믿습니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지식에 무언가를 보태고, 사람들의 삶에 지식과 가치를 더하는 거예요. 인간으로 산다는 건 정말 힘들잖아요. 그래서 저는 누군가의 삶에 가치를 더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Q. 저를 포함해서 모든 인본주의자가 자주 듣는 질문인데요.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주장을 옹호할 때 어떻게 하십니까?

조금 전에 자신이 관심받고 싶듯이 타인에게도 관심을 줘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게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인가요? 그런 논리만으로 충분하다고 보시는지요? 아니면 꽤 급진적인 이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추가로 내세울 다른 이유나 의견이 더 있으신가요?

A. 그게 바로 인본주의의 핵심 아니겠습니까?

Q. 맞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주장을 어떻게 옹호할 수 있느냐고 자주 묻습니다.

A. 어떤 주장을 옹호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그것이 삶을 일관되게 살기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신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신념은 단순한 의견을 넘어서 다른 함의를 지니게 되죠. 일종의 방어 논리예요. 예를 들어 우리는 자연법칙이 내일도 계속 그대로 작용하리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도 그냥 믿어야만 하죠. 그렇지 않으면 삶을 일관되게 살아갈 수가 없어요. 중력이 지금까지 항상 작용해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작용하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하면서, "그럼 이 절벽에서 뛰어내려도 괜찮겠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미래가 과거와 같으리라는 건 증명할 수 없지만, 일관되게 살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믿음을 따라야 합니다. 논리도 마찬가지죠. 그렇지 않나요?

Q. 우리가 지금까지 인간이라고 말해왔지만, 선생님이나 저나 둘 다 고통받는 동물들도 포함해서 이야기하고 있죠.

A. 맞습니다. 정확히 그래요.

Q.사실 이 주제에 대해 이렇게 깊이 이야기해본 건 처음인데요. 선생님의 생각이 정말 궁금합니다. 저는 늘 이렇게 생각해왔어요. '인본주의'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는 종종 인간 중심적인 개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오히려 인본주의적 신념은 도덕적 관심의 범위를 인간을 넘어 다른 동물들에게까지 확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요. 우리가 '도덕이란 무엇인가, 도덕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고민해보면, 그 개념 안에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복잡한 특성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레미 벤담, 피터 싱어를 비롯해 동물의 고통에 주목해온 철학자들이 모두 인본주의자였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지요!

A.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_ 리베카 골드스타인 <지식 그리고 중요한 것들> 2020년 6월 (63-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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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 - 우주 불평등 시대를 항해하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긴박한 질문들
최은정 지음 / 갈매나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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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누리호 4차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어요.

전문가들은 이번 성과가 대한민국 우주개발 역사에서 민간 주도 우주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이야기하네요.

우주항공청장은 발사 직후 브리핑에서 "지난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에 이어 오늘 4차 발사까지 성공하며, 누리호의 신뢰성을 높임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자주적인 국가 우주개발 역량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발사체 본연의 역할인 위성 발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관련 기술을 확보했고, 체계종합기업인 한화에오로스페이스가 제작 총괄을 주관하고 발사 운용에 참여하여 역할을 완수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어요.

우리나라는 독자 기술로 실용급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세계 일곱 번째 위성 발사체 보유국이며, 발사장까지 갖춘 스페이스 클럽 회원국으로는 열한 번째에 해당된다고 하니, 참으로 자랑스럽네요. 그러나 깊이 들여다 보면 미처 몰랐던 우주라는 새로운 국제 질서의 현실이 존재하네요.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는 우주과학자 최은정님의 책이에요.

'우주 불평등 시대를 항해하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긴박한 질문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어요.

저자는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 센터장으로 국가 우주 위험 대비를 위한 연구개발의 중추를 맡고 있고, 2014년부터 매년 유엔 외기권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위원회에 한국 대표단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하네요. "모두를 위한 우주 Space for @ll "는 2022년 국제우주대회(IAC)의 구호였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 인류가 우주의 주체로 활약하는 탐사와 정복의 시대를 맞이한 지금 우리는 우주 불평등과 우주 전쟁을 겪고 있기에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며, '모두를 위한 우주'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하네요.

이 책에서는 우주전쟁의 실체가 무엇인지, 과열된 경쟁 속에서 평화를 지키는 방법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어요. 저자는 우리에게 우주개발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알려주는 동시에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네요.

지구를 중심으로 운용되는 인공위성, 우주선, 우주정거장은 모두 일정한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궤도 공간은 그 자체로 제한된 인프라이기 때문에 각 국가와 기업은 정지궤도 공간을 선점하기 위해 자원 경쟁을 펼치고 있어요. 좋은 위치를 차지하려면 고도의 기술력과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보니 기술력과 재정력을 갖춘 국가와 기업이 유리할 수밖에 없어요. 정지궤도위성은 수십 년간 지구의 기후를 감시하고 예측 모델을 훈련해왔는데 이러한 기능의 혜택, 즉 데이터 접근권이 일부 우주 선진국들이 독점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불평등을 낳고 있어요. 점차 우주가 사유화되고 민간기업이 제공하는 기술이 특정 국가 또는 계약자에게만 독점 제공되는 우주로부터의 식민지화 문제가 드러나고 있어요. 위성발사, 데이터 확보, 궤도 운용을 스스로 하지 못하는 국가는 점점 더 기술 중심 국가에 의존하게 되고, 이는 디지털 주권을 넘어서 우주 주권을 새로운 국제적 이슈로 부상시켰네요. 우주 기술의 독점과 종속은 단순히 기술 격차에 따른 불균형 문제를 넘어 미래세대의 주권적 선택지를 제한하는 심각한 구조적 위협이라는 거예요. SF영화에서나 봤던 우주전쟁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었다는 게 충격적이네요. 저자는 우주를 군사·경제 패권을 펼치는 공간이 아닌 인류의 공공영역으로 재정의하는 제도적 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범국가적 우주상황인식이 시급하다고 이야기하네요. 우주 대항해 시대, 패러다임 전환은 선언이 아니라 현장의 수많은 선택이 모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국가 간의 연대가 필수적이네요. 이제는 지구 중심 관점에서 벗어나 범우주적 관점으로, 두 가지 질문에 대해 현명한 답을 찾아야 해요. 우주는 누구의 것이며, 우리는 그 공간에서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불평등을 지나 인류 공동의 미래를 함께 꿈꾸기를 바랄 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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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언스 웰레스트는 죽지 않아
니콜라스 볼링 지음, 조경실 옮김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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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아 할아버지는 이제 내 무덤을 파도 좋다고 허락하셨다." (7p)

이 소설의 첫 문장이네요. 무덤을 파도 된다니, 이 무슨 해괴망칙한 소리인지, 약간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었네요.

《오비디언스 웰레스트는 죽지 않아!》는 니콜라스 볼링의 섬뜩한 고딕 미스터리 소설이네요.

이 소설에서는 무덤을 파는 행위가 단순히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목적과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왜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키는 이야기인지 알 것 같아요. 과학과 마법 사이, 그 어디쯤에서 벌어지는 놀랍고도 신기한 이야기네요.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은 주인공인 네드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고, 할아버지의 모습은 다소 기괴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 염려는 없어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모스카와 묘지에 사는 새와 동물을 제외하면 아무도 두 사람을 신경쓰지 않아요. 할아버지의 직업은 묘지 관리인이거든요. 비드는 웰레스트 가문의 딸이지만 외롭게 자랐다는 점에서 네드가 공통점이 있어요. 비드가 바로 오비디언스 웰레스트예요. 어느 날 비드가 묘지를 찾아 왔고, 할아버지에게 오두막 뒤편에 자라고 있는 식물에 관해 물었어요. 이것이 네드와 비드의 첫만남이네요.


"그럴게요, 아가씨."

"비드."

"뭐라고요?"

"나는 비드야. 우리 나이도 거의 비슷해 보이는데, 격식 차리지 말고 앞으로 편하게 말하는 거 어때?

격식 차리는 건 집에서 하는 걸로 이미 충분하거든."

"그래 그럴게." 나는 뒤돌아서다 말고, 그 애가 막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려는 순간에 다시 돌아섰다. 그 바람에 문틈에 코가 끼일 뻔했다.

"식물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면 다윈이 쓴 책을 한번 읽어봐."

그 애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아까보다 더 환하게 미소 지었다.

"다윈?"

"응, 에라스무스 다윈. 『식물원』이라는 책인데, 우리 할부지한테도 한 권 있어. 적힌 글도 그림도 무척 아름다운 책이야."

"교회지기인데, 학자처럼 아는 것도 많구나. 진짜 대단하다. 책 추천해줘서 고마워." (152-153p)


서로 마주치거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던 두 사람이 우연한 기회로 만나면서 가까워지고, 네드는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훔치는 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데... 그리고 비드의 책을 사람들은 왜 나쁜 책이라고 부르는 걸까요. 충격적인 죽음과 반전, 과연 사람들 말처럼 미신 때문일까요, 아니면 숨겨진 음모가 있는 걸까요. 하나씩 베일을 벗겨내듯이 흥미로운 전개에 빠져드는 이야기네요. 마지막 장면에서 책 제목을 다시 보게 됐네요. 알아선 안 될 것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달까요. 어쩌면 무서운 고딕 미스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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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대변자, 달라이 라마 - 조국과 민족을 위한 70여 년의 비폭력 투쟁, 달라이 라마 구순 특별 회고록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 지음, 안희준 옮김 / 하루헌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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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폭력과 야만에 맞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싸워야죠, 근데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가 있네요.

《티베트의 대변자, 달라이 라마》는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구순 특별 회고록이라고 하네요.

현재 티베트인들은 공산주의 중국의 억압적인 통치 아래, 민족 고유의 언어와 문화, 종교 전통을 빼앗겼고, 자유롭게 말할 권리조차 박탈당했어요.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는 1959년 망명 이후 티베트인들의 목소리가 되어 왔어요. 이 책은 티베트의 비극적인 현대사 그리고 티베트와 티베트 민족 그리고 티베트 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을 가슴 깊이 품고 살아온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투쟁기이자 인류 평화를 추구하는 부처님 말씀이 담겨 있어요.


"과거 수천 년 동안, 이 눈의 땅 티베트는 종교와 세속이 결합된 제도 아래 통치되는 독립 국가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 나라의 크고 작음을 제외하면, 우리는 세계의 여타 독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속성, 위상, 자격을 갖추고 있다.  ······ 간덴 포당이라는 새로운 정부의 수립을 알리는 이 희소식을 접하는 자는 이 칙령을 자기 지역의 모든 승려와 재가자에게 널리 알리고, 그들 모두가 이를 들었는지 반드시 확인하라." _ 1959년 3월 26일, 티베트 독립 정부 선포문 (62-63p)


중국의 티베트 침공은 단지 티베트인들만의 비극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겪는 참혹한 재앙이라는 것, 바로 그 사실을 깨닫기 위해 이 책을 읽은 게 아닌가 싶어요. 강대국의 침략에 주권을 빼앗긴 약소국의 비애를 우리는 잘 알고 있기에 티베트 문제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네요. 지난 70여 년 동안 티베트인들이 중국의 지배에 맞서 끊임없이 투쟁하고 분노해 온 현실에 대해 공산주의 중국의 대답은, "달라이 라마 파벌의 분리주의 활동"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명백한 거짓이에요. 달라이 라마는 지난 70여 년간 공산주의 중국의 역대 지도자들과 만나 교섭해왔고, 시종일관 비폭력 투쟁으로 진정한 자치를 추구하는 중도적 접근을 제안했어요. 하지만 마오쩌둥 주석은 웃는 낯으로 긍정적인 대화로 안심시킨 뒤, 마지막엔 "종교는 독이오."라며 정체성을 무시했어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살하려는 자와 무슨 협력이 가능하겠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에 직면하면 포기하거나 낙담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고, 이런 절망은 티베트인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억압적인 정권 아래서 자유를 추구해 온 이들이 겪는 공통된 경험일 거예요. 고통과 난관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네요. 비극은 사람들로 하여근 자발적인 자비심을 드러내게 하고 인간 본연의 선한 본성을 일깨운다고, 이럴 때일수록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인간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어요. 증오를 경계하라고 강조하고 있어요. 증오는 더 큰 증오로 이어질 뿐이라는 부처님 말씀은 단순히 영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실천적인 조언임을 상기시켜주네요. 증오에 뿌리를 둔 행동은 그 대의가 아무리 숭고해도 지속 가능한 해결을 위한 토대를 파괴한다고, 결국 티베트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를 위기에서 구하는 방법은 편협한 이기심을 넘어서는 인류애, 연대와 보살핌 안에 있다는 것을 배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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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서 채우는 마음 필사 - 손끝으로 새기는 옛 시의 아름다운 문장들
나태주 외 지음 / 서울문화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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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당신의 얼굴은 봄 하늘의 고요한 별이어요

그러나 찢어진 구름 사이로 돋아 오는 반달 같은 얼굴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어여쁜 얼굴만을 사랑한다면 왜 나의 베갯모에 달을 수놓지 않고 별을 수놓아요

··· 온 세상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아니할 때에 당신만이 나를 사랑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여요. 나는 당신의 <사랑>을 사랑하여요." (16p)


한용운 시인의 <사랑을 사랑하여요>의 일부분이에요. 오랜만에 아름다운 시를 읽으며 써보는 시간을 가졌네요. 《쓰면서 채우는 마음 필사 한국시 100》은 한국 시 100편이 담긴 필사책이에요.

이 책에는 한국 근현대 시문학을 대표하는 스무 명의 시인들,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 이육사, 김영랑, 이상, 박인환, 정지용, 심훈, 이상화, 장정심, 이장희, 함형수, 윤곤강, 박용철, 김현구, 오일도, 노자영, 조명희, 나태주의 시들이 실려 있어요. 크게 다섯 개의 장, '사랑이 머무는 자리', '마음이 돌아가는 길',' 자연이 건네는 말들', '나를 마주하는 시간', '다시 봄이 오는 소리'로 나누어 시를 소개하고 시 아래에는 시인에 대한 정보가 간략하게 나와 있고, 시 옆에 나란히 필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네요. 시를 필사하고 난 뒤에는 맨 아랫줄에 적혀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적을 수 있어요. 예전부터 좋아했지만 요즘 더 즐겨 읽게 된 시가 바로 한용운 시인의 시들이네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22p)는 <사랑하는 까닭>이라는 시의 일부인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네요.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미소뿐 아니라 눈물도 사랑해주는 사람, 세상에 이러한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우리는 버텨내고 살아낼 수 있어요. 좋은 시를 낭독하고, 그 시를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시인의 마음이 되는 것 같아요. 사랑을 이야기하고, 자연을 노래하며,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를 통해서 문학적 감성이 되살아나고, 철학적 사유의 시간을 갖게 되네요. 한 편의 시와 하나의 질문, 그리하여 모두 100편의 시와 100개의 질문을 만나게 되네요. 좋은 시와 질문이 내면의 나를 깨우고, 더 나은 나로 성장시키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무언가를 꾸준히 기쁨으로 해낸 경험이 있나요?" (201p)라는 질문을 보면서, 이 책이야말로 모두에게 꾸준히 기쁨으로 해내는 경험을 선물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네요. 시를 읽고 쓰면서 마음을 채우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직접 경험해보면 느낄 수 있어요. 한국시, 아름다운 문장들이 전하는 감동을 누릴 수 있었네요.


"좋은 시는 사람을 살리게 마련입니다. 애당초 시를 쓰면서 시인을 살린 시가 좋은 시입니다.

그런 다음 그 시가 독자에게로 가서 독자까지도 살립니다. 나날이 외롭고 우울하여 시들어 가는 감성이 있다면 시를 읽고 외우고 베끼는 사이 조금씩 소생하기 시작하여 끝내는 싱싱한 목숨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 우리, 오래된 시의 덕성을 빌려 우리 또한 좋은 인생을 꿈꾸어 봅시다." _ 나태주 시인 (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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