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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ㅣ 소담 클래식 3
제인 오스틴 지음, 임병윤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다시 봐도 놀라워요.
스물한두 살 무렵에 이 소설을 썼다니, 사람 심리를 꿰뚫어 볼 줄 아는 능력자가 아니었나 싶네요.
75년생 작가의 이름은 제인 오스틴, 2025년은 제인 오스틴의 탄생 250주년이네요.
소담클래식 시리즈 세 번째 책으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출간되었어요.
이 소설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면들을 발견하게 되네요. 로맨스 소설의 고전, 18세기 영국 상류층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로 정리할 수도 있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할 수 있어요. 일단 주인공들을 빼놓을 순 없으니, 다아시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는 무도회장에 처음 등장했을 때 세련된 태도와 큰 키, 잘생긴 외모, 고상한 분위기로 모든 이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지만 거만하고 주변 사람들을 깔보는 듯한 뻣뻣한 태도 때문에 기분 나쁜 인물로 찍혀 버렸고, 리지(엘리자베스의 애칭)는 다아시가 내뱉는 무례한 말을 직접 듣는 바람에 그에 대한 반감이 생겨 버렸네요. 사실 다아시는 리지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는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는, 태생적으로 잘난 집안의 자식이라서 본인이 얼마나 거만하고 비호감인지 몰랐어요. 무도회에서 만난 사람들도 다아시 앞에선 아무 말도 못하면서 뒤에서 쑥덕거리며 나쁜 사람을 만든 경향이 있어요. 소문을 만들고, 퍼뜨리는 이들 때문에 오해와 편견이 생기는 거예요. 리지는 똑똑하지만 다아시의 첫인상과 주변 평판에 휩쓸려서 경솔한 판단을 했네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 중요한 건 어떻게 그 실수를 만회하느냐인 것 같아요.
"어떤 성격이든 어느 정도의 사악한 면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아무리 교육을 잘 받아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타고난 성격적 결함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럼 선생님의 경우는 모든 사람을 싫어하는 성향이겠군요."
"그렇다면 당신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오해하는 성향이겠군요." (91-92p)
첫인상부터 어긋난 두 사람이기에 거기서 인연은 끝나야 하는데, 다아시의 마음이 더 컸기에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네요. 당시 여성들에겐 선택의 폭이 좁아서 가슴앓이를 하던가 포기하던가, 딱히 해볼 수 있는 뭔가가 없는 것 같아요. 리지의 절친 샬럿이 하루아침에 콜린스와의 결혼을 승낙한 것은 매우 충격적이지만 샬럿의 입장에선 가난한 독신으로 사느니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결혼이 유일한 선택지였을 거예요. 그래서 리지는 용감하면서, 동시에 무모하다고 볼 수 있어요. 결혼을 위한 결혼이 아닌 진정한 사랑을 찾고자 했으니, 이건 순전히 부모님의 영향이 컸네요.
"젊음과 아름다움은 대체로 사람을 겉보기에 착해 보이게 만들곤 한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도 그런 젊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착해 보이는 모습에 끌려 어머니와 결혼했지만, 어머니는 이해심이 부족하고 속도 좁은 편이어서 결혼하자마자 어머니에 대한 애정은 차갑게 식어 버렸다. 존경과 신뢰는 영원히 사라졌고, 행복한 가정에 대한 모든 기대도 산산이 깨졌다. (···) 엘리자베스는 부모의 잘못된 결혼으로 자식들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지를 지금처럼 절실히 느껴 본 적이 없었다." (344-345p)
첫눈에 반해 결혼으로 이어졌지만 불행한 부부의 전형이 된 부모님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러니 남자를 만날 때 조심스럽고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단순한 호감과 진짜 사랑을 구분할 줄 아는 리지, 그래서 잘생기고 언변이 뛰어난 위컴에게 넘어가진 않았지만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한 걸 보면 '사람 보는 눈'은 부족한 거죠. 위컴에게 속아서 다아시를 나쁜 놈으로 생각했으니 말이에요. 속이려고 작정한 사기꾼을 누가 당해내겠어요. 사람은 깊이 사귀어 봐야 진심을 알 수 있고, 사랑은 깊을수록 내면이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까지 배워 온 것과는 다르게, 참으로 이기적으로 살아왔습니다. 어릴 적부터 무엇이 옳은지는 배웠지만, 올바른 인격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어요. 훌륭한 도덕이 어떤 것인지 알기는 했지만, 오만과 자만심 속에서 제멋대로 행동해 왔습니다. ... 우리 가족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지 말고, 다른 사람은 모두 나보다 천한 존재라고 여기도록 가르치셨습니다. ... 전 당신께 정말 큰 빚을 졌습니다. 당신이 절 깨우쳐 주신 겁니다. ... 사랑하는 여자를 진정으로 기쁘게 하는 것은 번지레한 온갖 겉치레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536-537p)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에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사랑이라는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요. 조건을 따져가며 결혼 상대를 찾는 것은 18세기 영국이나 21세기 한국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다만 지금은 결혼이 필수가 아닌 시대이니, 누구를 만나기 전에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