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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의 사라진 작품들 - 팔리거나 도난당하거나 파괴된 그래피티 51
윌 엘즈워스-존스 지음, 서경주 옮김 / 미술문화 / 2025년 6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예술작품이냐, 벽에 칠해진 낙서냐.
그래피티 작품을 두고 시작된 논쟁인데, 이러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건 다름 아닌 '돈'이었네요.
"뱅크시는 약 20년 전 런던 토트넘 코트 로드에 있는 신문 가판대 뒷면에 <뭐라고? WHAT?>라는 그래피티를 그렸다. 그때부터 화상들과의 문제가 시작되었다. 노점상 주인은 가판대 뒷면 패널을 현금 1천 파운드에 팔았다. 그 그림은 얼마 안 가서 25만 파운드에 되팔렸다. 뱅크시의 그림은 돈이 되었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었다." (11p)
세상에나, 예술은 잘 모르지만 모두를 위한 그래피티 작품마저도 사고 팔다니,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요.
《뱅크시의 사라진 작품들》은 제목 그대로, 사라진 주요 작품들과 그것들이 사라진 이유를 소개한 책이에요. 거리에 그려진 그림이 훼손되는 것이 뭐가 그리 큰 일인가 싶겠지만, 단지 뱅크시의 작품이기 때문에 훼손되거나 사라지는 것이라면 그 '이유'를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이 책의 부제는 '팔리거나 도난당하거나 파괴된 그래피티 51'인데, 어쩐지 파괴된 것은 그래피티가 아니라 그래피티 안에 담긴 목소리가 아닌가 싶네요. 지난 3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건물 벽은 말할 것도 없고 철문, 셔터, 온갖 문, 교통표지판, 이정표, 자동차 등등 모든 사물을 캔버스 삼아 스프레이 그림을 그려온 뱅크시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지만 베일에 가린 '얼굴 없는 화가'로 알려져 있어요.
거리 예술가 뱅크시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하게 된 사건이 있어요. 뱅크시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인 'Girl With Balloon' (2018)이 소더비즈 경매에서 1백만파운드(당시 약 15억 원)에 낙찰된 순간 저절로 파쇄됐는데, 이는 뱅크시가 경매 시작 전에 액자에 파쇄기를 설치해 놓았다고 하네요. 그는 자신의 작품이 유명해지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게 된 것과 미술이 부자들의 전유물이 되어 버린 현실을 비판하고자 이런 돌발행동을 한 것인데, 도리어 이 사건이 작품의 가치를 훨씬 높이는 결과가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네요.
그가 그림을 그리던 초기에는 누가 그렸든 상관 없이 낙서로 여겨서 지워버렸다면, 유명해진 이후에는 보존하고 팔아먹으려는 화상들과 일부 그래피티 화가들 때문에 파괴되고 사라졌다고 해요. 미술품 경매장에서 수백만 달러에 거래되는 뱅크시 작품이니 길거리 벽에 남아 있을 확률은 극히 적다는 것, 그 점이 매우 안타까울 따름이에요. 현재까지도 뱅크시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본인 작품의 진위 여부를 가릴 수 있는 뱅크시 공식 작품 보증기관인 '페스트 컨트롤 Past Control'이라는 만들었는데 거리에서 떼어낸 어떤 작품에도 인증서를 발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설립한 의도를 짐작케 하네요. 예술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래피티라는 찰나의 예술을 통해 덧없는 인생과 부조리한 세상 그리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떠올렸네요. 볼 수 있는 사람은 볼 것이고, 들을 수 있는 이는 들을 테니, 그걸로 족하다고.
"앞에 보이는 것은 '뱅크시라는 예술가의 '스프레이 그림'입니다.
혹시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지금쯤 덧칠되었을 겁니다.
그가 옳았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할까? 그의 작품 대부분이 그랬듯이 그 작품을 처음 발견한 운이 좋은 몇몇 사람들은 그것을 직접 보았고 이후 수백만 명은 인터넷에 올라온 것을 보았다. 거리에 남아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 그린 것이다. ... 어떤 그림은 우리 바로 옆에 살아 있어서 영원이 아니라 현재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윌 엘즈워스-존스 (139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