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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의 세계 - 인류의 식탁, 문화, 건강을 지배해온 차가움의 변천사
니콜라 트윌리 지음, 김희봉 옮김 / 세종연구원 / 2025년 6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죠?
인류의 역사는 눈부신 발전이었다고 자화자찬하기엔,
매일 냉장고에서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꺼내 먹으면서, 냉동트럭을 통해 배송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그저 기술의 발전이라고만 생각했지, 냉장 혁명이 지닌 의미와 영향에 대해서는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른바 '인위적 차가움'이 얼마나 우리의 일상을 지배해왔는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네요.
《냉장의 세계》는 인류가 '이뤄낸' 냉장 기술의 명암을 보여주는 책이네요.
저자는 이 책을 '인공 빙설권(식품 보관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광활한 겨울왕국)'에 대한 탐험기라고 표현했는데, 그 여정을 살펴보면 인류의 일상을 바꿔놓은 '콜드 체인(육류, 우유 따위의 식품을 차갑게 유지하는 냉동창고, 선적 컨테이너, 냉동트럭, 식품매장의 진열장, 가정용 냉장고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가리키는 전문용어)' (17p)에 관한 추적기라고 볼 수 있어요. 이 책에서는 얼음 무역의 초기부터 냉장 기술이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에 대한 모든 것을 어떻게 변화시켜왔는지를 차근차근 추적하며 알려주고 있어요. 지난 150년 동안 냉장 기술은 부패를 막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규모로 더 맛있는 고기를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줬고, 과일의 신선도와 맛을 유지시켰고, 더 나아가 냉동 컨테이너의 발명으로 냉장 운송 시장이라는 지각 변동 수준의 변화를 이끌었어요.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과일과 채소의 거의 3분의 2가 생산지를 벗어나 다른 나라에서 소비된다. ... 이는 음식 작가 조안나 블라이스먼이 '영구적인 글로벌 여름'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상황이다. 전 세계 소비자들이 일 년 내내 여름을 누리기 위해서는 똑같이 영구적인 인공 겨울이 있어야 한다." (254p)
"미국은 이미 1억 5천만 세제곱미터 이상의 냉장창고 공간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인공 겨울을 자랑하고 있다. 미국의 인구 증가는 답보 상태이지만, 이 정도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냉장창고 산업은 향후 몇 년 안에 다시 절반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대부분의 확장은 해안 도시와 그 주변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팡파르도 예고도 없이, 지금 우리 주변 곳곳에서 새롭고 향상된 북극이 건설되고 있다." (278p)
차가움의 변천사, 그 과정들을 따라 가다 보면 무역, 운송, 정치, 경제까지 혁신적으로 변화된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우리의 몸과 집, 도시, 풍경, 지구 전체의 대기까지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문제 의식이 필요해요. 저자는 현재 인류가 '인위적 차가움', 즉 기계식 냉각에 대한 의존도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 당장 냉장고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잖아요.
"우리의 식품 시스템 자체가 차가움에 의해 동상에 걸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의 경우 인간과 환경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을 최적화하기 위해 냉장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많은 미국인들은 냉장의 채택 뒤에 감춰진 상업적 동기를 알고 있었고, 이것이 이 새로운 기술을 의심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차가움은 공중 보건이나 환경 보호보다 편리함, 풍요로움, 이윤을 우선시하는 식품 시스템 구축의 핵심 요소였다. ... 냉장은 우리가 가진 식품 시스템에 필수적이지만 냉장 시스템이 꼭 이런 모습일 필요는 없다. 목표와 수단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411p)
냉장 기술은 우리가 식품을 보관하고 운반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신중하게 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다만 냉장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음식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노력을 하자는 거예요. 냉장고, 냉동고의 사이즈를 더 늘리지 않는 것이나 작은 규모라도 과일이나 채소를 직접 가꾸는 것은 충분히 실천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이 만들어낸 북극이 진짜 북극을 녹이고 있다.' (414p)라는 저자의 경고처럼 이제는 우리 스스로를 바꿔야 할 시점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