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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늙어간다는 것 - 80대 독일 국민 작가의 무심한 듯 다정한 문장들
엘케 하이덴라이히 지음, 유영미 옮김 / 북라이프 / 2025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내 인생 완전히 망했어." vs "내 인생 완전히 멋졌어."
자, 이제 두 인생 중 하나를 골라보라!
1943년생 독일의 국민 작가 엘케 하이덴라이히는 말했어요.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망했다고, 동시에 완전히 멋졌다고요. 그런데 왜 두 인생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을까요. 그건 나이듦에 관해 묻고 있는 거예요. 거스를 수 없는 세월, 늙어간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나로 늙어간다는 것》는 엘케 하이덴라이히의 책이에요. 독일에서 2024년 출간되자마자 독일 아마존 종합 1위를 기록하며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최고의 논픽션이 되었다고 하네요.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기대 수명이 늘어났고, 고령층 인구가 증가하면서 노년기의 길어진 삶에 대한 고민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젊어서 죽지 않는 한, 산다는 건 늙어가는 과정이기에 노화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네요. 저자는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과 나이듦에 대해 들려주고 있어요. "스무 살에 좀 더 영리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담배도 좀 작작 피우고 좀 더 양질의 식사를 하려고 신경썼더라면. 연애질도 좀 작작하고. 그렇게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툭하면 이삿짐을 싸서 거처를 옮기지 않고 좀 더 조용히 지냈더라면 좋았을 걸. (···) 이제 나는 행복이 우리가 절망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행복은 늘 순간이라는 걸! 나는 그 순간을 알아차리고 누리는 법을 배웠다. 인생의 행복은 행복한 순간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다. 지금의 나는 이런 행복에 스무 살 때보다 훨씬 더 가깝다. (···) 나는 왜 이런 행복을 칠십을 훌쩍 넘기고서 누리게 되었을까? 칠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생겼고, 수천 권의 책을 죄다 꺼냈다가 다시 꽂을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리라." (36-39p)
스무 살 청춘을 좀 더 영리하게 보냈더라면,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후회와 미련은 깔끔하게 정리한 거예요. 중요한 건 지금이니까요. 그래서 잘 늙어가는 것이 삶의 목표인데, 엘케의 이야기를 통해 나 자신과 삶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됐어요.
"내게 죽음은 우리 삶에 구조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시작과 끝은 명확히 정의되어 있다. 그사이에서 삶이 펼치지고, 삶을 펼쳐나간다.
... 유한성에 대한 두려움, 영원에 대한 동경. 이는 위로를 준다. 나는 이런 두려움도 동경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살아온 삶이 바로 나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나다." (57-59p)
저자의 말처럼 시작과 끝은 명확하기에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에요. 이제는 '늙어가기'라는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고 제대로 수행하면 되는 거예요. 늙어가는 게 싫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엘케처럼 가장 나답게 살아가고 싶네요. 그렇게 나이들다 보면 정말 멋진 인생이 될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