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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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걸까요.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옛 성현의 말을 무시한 채 비뚤어진 욕망을 좇다가는 그 끝이 결코 유쾌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가 나왔네요.

《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은 고호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고호 작가님의 소설은 한 편의 범죄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 같아요. 첫 장면부터 묘사된 내용들이 영상을 틀어놓은 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나도 모르게 몰입되더라고요. 나름 에이스 경찰이던 양태열은 상사들과 함께 연루된 비리 문제를 혼자 떠안은 채 시골로 좌천됐어요. 스스로 총대를 멘 거라면 모를까, 완전히 버림받은 신세라는 점에서 꼴이 우스워진 거죠. 이래저래 오갈 데 없는, 출셋길에서 밀려난 낙오자 태열은 시골의 파출소장이 되었고, 지역 유지로 알려진 최영춘 실장은 태열의 상황을 모두 안다는 듯이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하는데... 경찰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는 순간,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네요. 중요한 건 그 다음에 벌어진 상황들이에요. '앗, 이게 뭐지?' 싶더라니까요. 세상에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역시나 방심은 금물이네요. 나쁜 놈들의 놀라운 두뇌 회전에 연신 감탄했네요. 도대체 누가 누구를 쫓는 것인지,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는 차차 드러나는데, 매번 범죄스릴러 장르에서 느끼는 교훈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라는 거예요.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하는데, 애초에 길도 없는 황무지에 버려졌다면 다른 선택지는 없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대개 범죄는 돈 때문에 발생하지만 때로는 생존 그 자체가 목적인 경우도 있다는 것,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불행의 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다는 것이 슬픈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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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그리움 - 배우 임병기 사극 드라마 시집
임병기 지음 / 그림같은세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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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때 KBS 대하사극 드라마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더랬죠.

대하, 큰 강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지는 방대한 분량의 장편 역사소설을 드라마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솔직히 주인공 외에는 배우들의 이름을 잘 모르는데, 책 띠지에 인쇄된 사진을 보고는 단번에 '아하, 이 분!', 얼굴을 알아봤네요. 사극 전문 배우라고 할 정도로 대하사극 드라마에서 늘 얼굴을 봐 왔던 배우님의 책이 나와서 반가웠고, 그 장르가 에세이가 아닌 시집이라서 놀라웠네요. 마치 사극 속 인물처럼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경험한 것들을 시의 형태로 표현하였네요.

《천년의 그리움》은 배우 임병기 사극 드라마 시집이에요. 저자는 서시 <천년의 그리움>에 대해, "고구려, 백제, 신라, 부여, 가야, 5국 시대로 시작한 파란만장했던 한민족의 대서사시. 우리 민족의 역사에는 숱한 고통과 슬픔이 있었지만, 빛나는 영광의 순간과 아련한 그리움도 있다. 한민족의 고달팠던 역사의 여정을 시로 표현해 보았다." (19p)라고 소개하면서, "고난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 우리의 빛, 우리의 숨결. / 비바람이 몰아쳐도 / 결코 쓰러지지 않으리 / 역사의 먼지를 털고 / 지금도 이어지는 우리의 길 / 가슴 속 깊이 흐르는 / 한민족의 그리움이여!" (20-21p) 라는 시의 마지막 부분이 감동적이네요. 우리 가슴 속에 깊이 흐르는 빛과 숨결 덕분에 어려운 시기마다 지혜롭게 극복해낸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저자는 배우로서 역사 속 인물을 연기했지만 그 과정에서 진심으로 역사를 만나는 경험을 했고, 그 심정을 시로 적어내려갔네요. "흙먼지 가득한 대본 속엔 천년 역사의 숨소리가 살아 있었고, 무수한 땀과 고통이 피로 변해가는 현실의 허구엔 역사의 영혼들이 새로운 생명의 이야기로 기억될 것이다." (63p) 또한 무대 밖 이야기, 동료들의 부상과 죽음 그리고 현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저자는 대하드라마의 부활을 고대하며, 대하사극의 부활을 염원하는 언론기고문을 통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있네요. "방송사들이 경영악화를 비롯한 여러 내적, 외부적 여건 때문에 제작을 꺼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유럽은 물론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1963년 대하드라마 첫 방영 이후 한 번도 방송 중단 없이 수십 년을 이어 오고 있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며, 스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 대하드라마는, 특히 대하사극은 사각형 화면 안에서 극적으로 재탄생하는 역사다.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시공간을 뚫고 나와 살아 움직이며 오늘의 나에게 말을 거는 유기체다. 오래전 내 조상의 삶을, 그리움과 감동의 그 순간을 눈앞에서 보여준다. 이런 귀한 경험을 제공하는 대하드라마 ··· 전통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154-155p)

가장 시급한 것은 KBS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제 역할을 되찾는 것, 다시 정상화되는 것이네요. 그래야 재정 적자를 핑계로 대하드라마의 존폐를 운운하지 않을 테니 말이에요. OTT를 통해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KBS 대하사극 드라마의 전성기가 다시 도래하기를, 저 역시 소망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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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들어가 과학으로 나오기 - 사고 습관을 길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
리용러 지음, 정우석 옮김 / 하이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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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흥미로운 이야기?

뭘 억지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으악, 괴성이 나오는데, 지금부터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면, 우와, 환호성이 나온다고요.

《수학으로 들어가 과학으로 나오기》는 물리교사이자 물리 올림피아드 반 학생들을 지도하는 리용러 선생님의 책이에요. 저자는 오랫동안 많은 제자들을 중국 명문대에 합격시켰고, 국제 올림피아드에서 다수의 수상자를 배출시켰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타고난 이야기꾼이 아닌가 싶네요. 수학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과학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이, 주제도 주제이지만 그 내용들이 흥미로워서 저절로 몰입하게 만드네요.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은 대개 공식을 달달 외운 다음에 문제를 풀면서 익혔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공식은 알지만 그 공식이 어떻게 생겨났느냐에 대해선 까맣게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저자는 동그란 모양의 피자를 직사각형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네요. 일단 피자를 아주 잘게, 수많은 부채꼴로 나눠야 해요. 이 피자 조각을 정반으로 엇갈려가며 한 조각씩 늘어놓으면 직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이 되고, 이때 원을 작게 조각낼수록 직사각형에 더 가까워진다는 거예요. 원을 무한대로 나누면 직사각형이 되기 때문에 이 직사각형의 면적이 원의 면적과 같다고 본 거예요. 이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무한대로 나눈 후 이들의 합을 구하는 것, 분할이 미분이고 합이 적분이라서 미적분의 기본 개념으로 이어지네요. 미적분을 조금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면적 계산을 하는데, 세 변의 직선과 한 변의 곡선, 두 직각으로 이루어진 나무판 있다고 가정하고, 목판의 면적을 구하는 거예요. 목판을 좌표계에 놓고 아래 변을 x축에 포개어 놓고, 좌우 두 개의 변은 각각 x=a 와 x=b 두 개의 선에 맞춰 윗변의 곡선은 함수f(x)를 만족시킨다는 것, 계산만 보면 복잡한데 원리는 명쾌하네요. 수학 공식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수학의 매력만큼은 알 것 같아요. 수학과 과학으로 나눠져 있지만 수학을 모르고서 과학을 안다고 말할 수 없듯이, 수학적 사고를 통해 과학이 발전해왔다는 것을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네요.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이야기 보따리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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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집
정보라 지음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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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정보라 작가님만의 장르, 예상치 못한 미스터리 스릴러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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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집
정보라 지음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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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작가님의 신작 장편소설 《아이들의 집》이 나왔어요.

제목만으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 무엇보다도 첫 장면은 처음 읽을 때는 긴가민가 하다가 나중에 진실을 알고 난 뒤에 밀려오는 충격이 더 큰 것 같아요. 이 장면은 몹시 괴기스럽기는 해도 환상이나 꿈으로 바라보면 엄청 놀랄 만한 수준은 아니에요. 근데 현실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에 대한 진술이라면... 모호했던 것들이 너무나 선명해지면서 뒷골을 강타하는 충격이 있네요. 하얗게 눈으로 덮혀 있는 땅, 그 아래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눈이 다 녹기 전에는 알 수 없듯이, 아주 서서히 베일을 벗겨나가는 방식, 이것이 정보라 작가님만의 장르였네요.

이 소설에서 당황스러웠던 건 이름이에요. "무정형은 눈을 뜬다.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가는 날이다. 예방주사를 맞혀야 한다." (12p) 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무정형'은 사람 이름이고,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사물이나 사람에게 붙여진 공식적인 이름을 멋대로 바꿔버리면 일종의 리셋 상태가 되는 것 같아요. 무정형, 정사각형, 삼각형, 역삼각형, 마름모, 가루, 줄넘기, 평행선, 색종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이름인데, 로봇에겐 '앨리스'라는 이름이 있다는 걸 굳이 알려주네요. 등장인물들에게 붙여진 낯선 이름들은 그들을 특정한 누군가로 인식하지 않은 채 말과 행동으로만 파악하게 만들어요. 마치 '네가 신경써야 할 건 이름 따위가 아니라 그들이 어떤 일을 했느냐라고!'라고 속삭이듯 말이죠. 그래서 '아이들의 집'이 어떤 곳이고, 무정형이 왜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가서 예방주사 맞히는 일을 하는지,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와 일상의 모습을 가장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비슷하지만 다른, 그러면서도 사건을 통해 깊숙하게 자리한 병변을 끄집어내고 있어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 드러내어 공론화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개선할 수 있겠어요. 소설일 뿐이라고, 조금 무서운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그냥 넘길 수 없는 중요한 주제들을 담고 있네요. 무겁지만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할 문제라서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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