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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미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될까요.
아무것도 장담할 순 없지만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희망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쉽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 역시 민주주의 위기를 회복하는 과정에 있으니 말이에요. 미국은 현재, 이민자 추방에 군대까지 동원하며 마구잡이식 정책으로 혼란에 빠져 있어요.
하퍼 리 작가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앵무새 죽이기》가 출간된 해가 1960년이니 벌써 6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이 소설은 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데, 2025년 다시금 주목해야 할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소설의 원제는 '앵무새(parrot)'가 아니라 '흉내쟁이 지빠귀(mockingbird)'라고 하는데, 실상 새의 종류보다는 '죽이기'라는 행위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인간들은 왜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대상에게 그토록 잔인하게 구는 걸까요. 피부색, 인종, 성별 등등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혐오와 폭력, 급기야 목숨까지 빼앗는 끔찍한 비극의 현장을, 저자는 여덟 살 소녀 스카웃(진 루이즈 핀치)의 시점에서 보여주기 때문에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는 데에 약간의 시간이 필요해요. 1930년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의 작은 마을 메이콤에서 강간 사건이 벌어졌는데, 흑인 남성 톰 로빈슨이 백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되었고, 스카웃의 아빠가 변호를 맡았어요. 스카웃은 네 살 많은 젬(제러미 애티커스 핀치) 오빠, 변호사인 아빠, 흑인 가정부 캘퍼니아 아줌마와 함께 살고 있어요. 딜(찰스 베이커 해리스)은 이모인 레이철 아줌마 집에 여름을 보내러 놀러왔다가 핀치 남매와 친해졌는데, 어쩌면 이 세 명의 아이들이 순수한 양심의 표본이 아닐까 싶어요. 나쁜 짓인 줄 알면서도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동조하고, 방관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부끄럽고 한심하네요. 남다른 정의감으로 톰 로빈슨을 변호하는 스카웃의 아빠조차도 주저하는 것들, 견고한 그들만의 세상이 얼마나 추악한가를 아이들에게 들키고 말았네요. 더 이상 앵무새를 죽이는 일이 없도록, 잘못한 그들이 부끄러워하며 참회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거야.」
「네?」
「말하자면 그 사람 살갗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다니는 거지.」 (65p)
「내가 참을 수 없었던 건 바로 그 사람 때문이야. 그 늙은이 길머 검사 말이야. 그런 식으로 그를 대하다니,
그렇게 경멸적으로 말하다니 ······.」
「딜, 그게 그분의 직업이잖아. 검사들이 없다면, 그럼 아마 피고를 변호해 줄 변화사들도 없게 될 걸.」
「스카웃, 나도 그건 알아. 난 바로 그 사람의 말투 때문에 구역질이 난 거야. 그냥 구역질 말이야.」
「딜, 길머 검사님은 그런 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어. 반대로 -」
「그런 식으로 하지는 않았어, 그때는······.」
「그런데 말이야, 딜, 결국 그는 흑인이잖아.」
「난 그런 거 손톱만큼도 상관 안 해.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말할 권리는 없어.
그게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드는 거야.」
「핀치 아저씨는 그렇지 않잖아.」
「딜, 아빠는 표본이 아니지. 아빤······.」
「내 말은 그게 아니야.」 딜이 말했습니다.
「얘야, 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너희들은 낯가죽이 두껍지 않아. 그래서 구역질이 나는 거지?」 (367-369p)
도대체 왜 아저씨는 가장 깊숙이 숨겨 둔 비밀을 우리에게 털어놓고 계신 걸까요. 그래서 그 이유를 여쭤봤습니다.
「너희들은 어리고, 어린이들은 그걸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저 애가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야.」
아저씨는 딜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아직 저 애의 양심은 세상 물정에 물들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 봐. 그러면 저 앤 구역질을 느끼지도 않고 울지도 않을 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옳지 않은 일을 봐도 울먹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몇 년만 나이를 더 먹어 봐, 그렇게 될 테니.」
「아저씨, 내가 도대체 뭐 때문에 운다는 거예요? 」 딜의 남자다움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고통 때문에 우는 거지. 심지어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말이야. 흑인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일부러 생각한 것도 아닌데 백인이 흑인에게 안겨 주는 그 고통 때문에 우는 거란 말이다.」
「아빠는 흑인을 속이는 것이 백인을 속이는 것보다 열 배는 더 나쁘다고 말씀하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행동이라고 하셨어요.」 내가 중얼거리며 말했습니다. 레이먼드 아저씨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곤 생각하지 않는다만. 진 루이즈 양, 너희 아빠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너는 아직 잘 몰라. 그걸 제대로 깨달으려면 앞으로 몇 년은 더 있어야 할 거야.」 (372-373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