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노동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6
클레르 갈루아 지음, 오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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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내가 당신을 모른다고 우기면서 당신에 관한 글을 쓰기를 바라는군요."

"그래. 모든 건 거짓이니까. 난 그것에 만족해. 삶이 그렇듯 그것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어."  (191p)



인간은 왜 거짓말을 할까요. 모른다고 하면서 이미 알고 있고, 다 안다고 말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니 말이에요.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알아야만 사랑할 수 있다면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을 거예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글을 쓰고 사랑하는, 모순 덩어리들, 아니 고집쟁이들...

《육체노동자》는 클레르 갈루아의 소설이에요. 주인공 크리스틴은 빅토르를 사랑하는 10년 동안 스물일곱 명의 애인이 있었고, 현재도 아쉴이라는 늙은 남자를 만나고 있어요. 크리스틴이 보낸 하루를 따라가다 보면 그녀가 살아온 인생과 빅토르를 향한 사랑을 엿볼 수 있어요. 그녀에게 금기의 단어가 된 '사랑', 그것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뜨거운 여름 코르뒤레에서의 첫날 밤의 그 눈빛, 그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어요.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해도 영원히 알지 못할 진실에 대해,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걸 일깨워주네요. 인간이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 물론 모두에게 해당되지는 않지만, 그럴 때 용기를 내야 진심을 전할 수 있는데 빅토르는 해냈네요.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최초의 밤을 위하여! 수많은 밤들과 수많은 남자들이 한낱 물거품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한 크리스틴의 이야기, 그녀 덕분에 깨달았네요. 멋진 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그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걸 말이죠. 삶은 늘 크고 작은 문제들로 가득 차 있어서 완벽한 순간, 적당한 때를 고르다간 늦는다고요. 너무도 짧은 웃음을 위해 오래도록 고통을 참아야 하는, 그것이 삶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다음은 죽음, 무엇이 중요한지는 그때 밝혀지겠지요.

"사실, 문은 항상 열려 있거나 항상 닫혀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은 두 가지 경우가 공존하지. 그게 진실이다."   (2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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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와 암실 ANGST
박민정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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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마음 속에는 수많은 방들이 있어요.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는 방들이 대부분이지만 굳게 잠겨 있는 방들도 있어요. 삭제할 수 없는 기억들을 넣어두는 곳, 기억하지만 기억하기 싫은 것들은 그대로 덮어버리는 거예요. 이 소설은, 어쩐지 그 닫혀 있던 방문을 열어버린 느낌이 드네요.

《호수와 암실》은 박민정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주인공 '나',연화는 수영장에서 재이를 처음 만나 가까워졌고, 둘도 없는 사이가 되었어요. 근데 왜 멀어지게 된 걸까, 그 원인은 로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연화가 그토록 숨기고 싶은 시절을 같이 보냈던 로사의 등장으로 모든 게 어긋나고 있어요. 연화는 갑자기 견딜 수 없는 가려움을 느꼈고 알레르기 증상처럼 숨이 막힐 것 같았어요. 전에 없던 가려움증이 일어난 이유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더럽고 지저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아무도 모르게 숨겨두었던 기억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그 더러운 기억들이 아닌가 싶어요. 연화와 재이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과거와 감추고 싶은 기억의 정체가 드러나네요. 더러운 기억의 정체는 모욕감, 이 불쾌한 감정이 어떻게 그녀들의 삶을 좀먹었는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았는지 짐작할 수는 있어요. 중요한 건 그녀들의 미묘한 관계 안에서 다시금 그 감정이 소환된다는 거예요. 아물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애써 덮은 채 그저 불쾌하고 찝찝한 감정으로 치부하며 견뎌내던 그녀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네요. 먼지 알레르기마냥 불현듯... 알다가도 모를 것이 사람의 마음이지만 하나의 마음만은 알겠더라고요. 그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까, 사람마다 반응은 다르겠지만 마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마음을 숨기려고 하니까 거짓말을 하는 거죠. 연화는 자신의 거짓말을 정당화하려고 했지만 어찌됐든 속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그녀들의 속사정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네요.


나는 언제나 살아남기 위해서 집요하게 기억했다. 끈질기게 기억하는 것만이, 그 기억만이 나를 살려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더러운 기억들이 점점 피로해졌다. 시간이 흐른 후 재이가 폭로하고 고발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옛날의 나를 떠올리면서 말해주었다.

"사진도 없고 영상도 없지만 너에게는 기억이 있어. 오직 너만 알 수 있는 감정이란 게 있어. 

고통스럽다고 해도 정확하게 생각해내야 해. 떠오를 때마다 기록하고." 로사는 뭐라고 말해주었을까. (106-107p)


"기억이 너를 살려 줄 수 있다고. ... 끝내 나를 살려준 것은 ... 진실 그 자체였다.

진실은 내게 너무 오래 그 기억에 붙들려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결코 잊을 순 없지만 그것에 사로잡혀 나를 전부 다 놓아버리지 않아도 된다고. ... 내가 왜 그 짓을 했는지 기억했기에 나는 진실을 거머쥘 수 있었다." (118-1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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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
법정 지음, 김인중 그림 / 열림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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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근래 다짐한 것이 있어요.

불필요한 말을 줄이자는 건데 실천하기가 쉽지 않네요. 평소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말 점검을 해보니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구분하고, 제때 말하고 침묵하는 일 자체가 수행인 것 같아요. 나름 노력한다고, '바보의 마음은 입에 있지만 현자의 입은 마음에 있다.'라는 문장을 잘 보이는 곳에 적어놨는데, 입과 마음 관리가 참으로 어렵네요.

《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과 김인중 신부님의 그림이 수록된 책이에요.

이 책에는 침묵과 마음 수행에 관한 법정 스님의 글들이 김인중 신부님의 다채로운 그림과 어우러져 있어서 마음이 평온해지네요.

책 표지를 벗겨내면 안쪽에 김인중 신부님의 스테인글라스 작품을 만날 수 있어요. 색채와 질감으로 표현된 그림들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마음이 그림 같이 보이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했네요. 좋은 말씀과 그림이 함께 있는 책이라서 더욱 몰입이 된 것 같아요.

요즘 세상은 온갖 소음들이 넘쳐나서 너무나 시끄러워요. 너도 나도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쳐대면 거대한 소음이 되어 아무도 들을 수 없어요. 주위가 조용해져야 제대로 들을 수 있는데 한시도 조용하질 않으니 혼란하고 어지러운 거죠. 우리에겐 고요한 시간이 부족해요. 갈수록 심각해지는 건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내뱉는 말에 냄새를 더할 수 있다면 그리 쉽게 말하진 못할 텐데, 그만큼 악취나는 말들이 세상을 혼탁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나부터라도, 어리석은 입을 다물어 지혜를 얻기 위한 침묵 수행을 하자고 다짐했네요.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있는 것은 새로운 나다. 개울물이 항상 그곳에서 그렇게 흐르고 있어 여느 때와 같은 물이면서도 순간마다 새로운 물이듯이 우리들 자신의 '있음'도 그와 같다. 그러니 흐르는 물처럼 늘 새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 (14p) 라고 했듯이 오늘 노력한다면 내일은 달라질 수 있어요. 단순한 삶이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한다는 것,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내려놓으라는 의미이기에 침묵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어요. "우리는 안에 있는 것을 늘 밖에서만 찾으려고 한다. 침묵은 밖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특정한 시간이나 공간에 고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늘 내 안에 잠재되어 있다. 따라서 밖으로 쳐다보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안으로 들여다보는 데서 침묵은 자기 정화의, 또는 자기 질서의 지름길이다. 온갖 소음으로부터 우리 영혼을 지키려면 침묵의 의미를 몸에 익혀야 한다." (76p)

침묵의 의미를 알아야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어요. 많은 말을 즐기다 보면 내면은 텅 비어버린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며 살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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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전 시집 : 진달래꽃, 초혼 - 한글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시인
김소월 지음 / 스타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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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일기장이었던가, 그냥 노트였던가.

어릴 때 예쁜 시를 옮겨 적고 정성껏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나네요. 김소월의 시를 읽으면 그때의 마음이 떠올라요. 말들이 예쁘고 고와서 좋았는데 이상하게 마음 한 켠이 먹먹해졌던, 아마도 그리움과 슬픔이었을 그 감정들을 한참 세월이 지나서야 사무치는 한이었음을 알게 되었네요.

올해는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 출간 100주년이 된다고 하네요. 『진달래꽃』 초판본에 실린 127편의 시 외에 흩어져 있던 시들을 모두 모아 110편을 추가한 '김소월 전 시집'이 출간되었네요. 그동안 수많은 김소월의 시집이 출간되었으나 김소월의 모든 시들을 모은 책은 처음인 것 같아요.

《김소월 전 시집 : 진달래꽃ㆍ초혼》은 다시 없을 소중한 시집이네요.

원래 이렇게 눈물나는 시였던가요,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울컥하네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 (136p) 「초혼」 의 첫 문장을 해맑게 낭독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요. 김소월 시인은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라고 말하였는데, 서른세 살의 생을 마친 시인보다도 더 긴 생을 살면서도 여전히 세상을 모르니 언제쯤 세상을 알게 될까요. 철없던 아이는 눈물만 한가득, 그저 울고 있네요. 들고나는 자리가 보이지 않는 밀물처럼 바람처럼 어느새 우리 마음속에 자리한 김소월의 시가 가만가만 어루만져주네요. 멀리 떠나 돌아올 줄 모르는 그대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마음, 그저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아요.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 걸까요. 아프고 슬프고 괴로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아무도 답해줄 수 없지만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어요. "불운不運에 우는 그대여, 나는 아노라 / 무엇이 그대의 불운을 지었는지도, / 부는 바람에 날려, / 밀물에 흘러, / 굳어진 그대의 가슴속도, / 모두 지나간 나의 일이면. / 다시금 또 다시금 / 적황赤黃의 포말은 북고여라, 그대의 가슴속의 / 암청暗靑의 이끼여, 거치른 바위 / 치는 물가의." (103p) 「불운에 우는 그대여」라는 시에서 시인은 울고 있는 그 마음을 알고 있노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흐르는 눈물은 언젠가 마르겠지만 울고 있는 가슴은... 다시금 또 다시금, 포말과 이끼로 남아 있겠지요. 그대의 불운이 모두 지나간 나의 일이라고, 그 아픔을 알아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울어 본 사람은 아는 거예요.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이라는 시에서, "하루라도 몇 번씩 내 생각은 / 내가 무엇하려고 살려는지? / 모르고 살았노라, 그럴 말로 / 그러나 흐르는 저 냇물이 / 흘러가서 바다로 든댈진댄. / 일로조차 그러면, 내 몸은 / 애쓴다고는 발부터 잊으리라. /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 그러나, 다시 내 몸, / 봄빛의 불붙는 사태흙에 / 집 짓는 저 개아미 / 나도 살려 하노라, 그와 같이 / 사는 날 그날까지 / 살음에 즐거워서, / 사는 것이 사람의 본뜻이면 / 오오 그러면 내 몸에는 / 다시는 애쓸 일도 더 없어라 /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166p), 여기에서 주목한 문장은 '나도 살려 하노라' 인데, 암울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시인은 삶의 끝은 죽음이지만 집 짓는 개미를 보며 삶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고뇌하고 방황하면서도 끝끝내 희망의 끈을 붙잡는, 간절한 생의 외침이었다고 생각해요. 김소월의 시는 구석구석 빈틈 없이 스며드는 물길처럼 촉촉하게 마음을 적시고, 불에 달궈진 쇠처럼 뜨겁게 녹여버리네요. 마음이 흠뻑 젖었다가 어느새 활활 타올라 재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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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프로젝트 - 페미니스트를 위한 여성 성기의 역사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10
리브 스트룀키스트 글.그림, 맹슬기 옮김 / 푸른지식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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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성교육을 전 아동에게 의무 교육화시킨 나라예요.

1998년 교육법을 개정하여 모든 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을 실시하도록 규정하였고, 현재 모든 교육과정에 성인지적 관점을 반영하고 있어요.

스웨덴 정부가 공인한 성교육 전문가의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되었는데 일부 시민단체가 음란유해도서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심의한 결과, 청소년유해간행물로 분류되어 청소년에게 판매 금지되었다는 소식에 기겁했네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도대체 왜 무슨 의도로 성평등, 성교육 도서를 검열하고 금지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여성과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명백한 인권 침해라는 것을 정말 모르는 걸까요.

《이브 프로젝트》는 스웨덴에서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페미니즘 예술가이자 라디오 진행자인 리브 스트룀키스트의 책이라고 하네요.

이 책의 부제는 '페미니스트를 위한 여성 성기의 역사'인데, 자세한 내용은 직접 확인하시길, 그래야 어떤 책인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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