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교육을 위한 고전 강의
김재욱 지음 / 포럼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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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녀 교육에 성공하고 싶다면 욕심을 버려라.

자녀를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하나의 욕심인데 그 자체를 버려야 얻을 수 있다니 어찌 보면 이런 모순이 없다. 그런데 부모 된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 말에 수긍할 것이다.

요즘은 한 두 명의 자녀를 키우다 보니 자녀에 대한 관심이 크고, 자녀 교육에 열성적인 부모가 많다. 문제는 교육의 내용이 인성보다는 지적 능력이라는 데 있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를 잘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이를 앉혀 놓고 가르쳐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기분 좋게 시작했는데 어느새 언성이 높아지면서 꾸짖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는 괜히 공부하다가 야단 맞는 꼴이 된 것이다. 아이가 특별히 둔하고 모자란 것도 아닌데 더 잘하길 바라는 욕심이 아이를 못난 아이로 만들고 있었다. 그 뒤로는 아이 공부에 간섭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욕심이 아이를 망치는 거란 생각 때문이다.

이 책은 옛 선비들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 세월은 지났지만 그 지혜로움은 변함 없고 가르침을 행하는 데 어색한 부분이 없다.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은 먼저 그 사람을 헤아린 뒤에 가르쳐야 한다.

헤아림이 충분하면 가르침이 쉽게 행해지고,

헤아림이 올바르지 못하면 가르침은 헛수고가 되며 효과를 얻기도 어렵다.

-          최한기 [인정] 권 13,[측지후교]

옛 선조들은 그 사람을 가르치기 전에 그 사람을 헤아렸다고 한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향과 적성이 다른데 획일적인 가르침은 소용 없다는 의미이다. 그야말로 현명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요즘 교육은, 내용은 다양하지만 정작 교육을 받는 아이들의 다양성은 헤아리지 않고 있으니 문제가 생기는 것같다.

자녀를 위한 사교육, 유학이 아이 스스로 원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욕심으로 선택한 것이라면 헛수고가 될 것은 자명하다. 자녀 교육을 위한 엄청난 경제적 지원, 투자를 하기에 앞서

아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아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학원 선생님이나 담임 선생님이 아니라 바로 부모 자신이 되어야 한다.

나 스스로 반성한 부분이다.

자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행하는 가정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라면 당연히 가정 교육, 인성과 예절을 가르치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러려면 부모 먼저 언행을 조심하고 솔선수범 해야 한다. 그러니 부모가 되는 일은 인격 수양과 흡사하다.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고 싶다면 자녀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부모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라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다.

나는 바담풍 하면서 아이에게 바람풍 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모든 부모가 훌륭한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좋은 부모가 될 길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경력이라는 벼슬을 지낸 우언겸은) 자제를 가르칠 때 윤리를 우선으로 삼았다.

평소에 집안을 청소하고 어른에게 응대하는 예절을 반드시 자제에게 행하도록 했다.

어떤 사람이 그것이 학업을 방해하지 않을까 의심하자 공이 말했다.

이것은 기본적인 일이다. 이런 것도 모르면서 글은 읽어서 무엇하겠는가?

                              - 유성룡, [서애집] 권 19, [의인부경력우공갈명]

아이에게  바른 마음 자세와 생활 습관을 익히게 하는 것은 부모의 몫이다. 아무리 공부를 시키고 똑똑한 아이로 키운다 한들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고 자기 일을 스스로 못한다면, 제대로 교육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삶에 있어서 기본에 충실하다면 흔들림이 없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 불필요한 욕심은 남들보다 똑똑하고 뛰어나게 키우려는 것이고,

필요한 욕심은 인간다움, 인과 예를 몸에 익히게 하는 것이다. 결국 자녀의 인생은 스스로 만드는 것인데 부모가 욕심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올바른 안내 표지판이 되어야 한다.

옛 성현의 가르침은 지혜로운 부모의 마음을 닮은 듯 자상하며 엄격하다. 좋은 말씀을 마음에 담아 좋은 부모가 되고자 힘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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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주는 그림 
크리스토프 앙드레 지음, 함정임.박형섭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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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유난히 하늘이 청명했다. 어제까지 태풍으로 어두웠던 하늘이 오늘은 더 맑고 파랗게 느껴졌다. 유난히 비가 많았던 여름을 지나 가을에 접어들었다. 흐린 날을 지나는 동안 누구나 맑은 하늘을 그리워한다. 마치 간절히 바라던 선물을 받은 것처럼 맑게 개인 하늘이 반가웠다.



이 책은 그런 반가운 느낌이었다. 저자인 크리스토프 앙드레는 정신의학자로 예술을 통한 치유법을 연구한 분이다. 그는 예술 작품인 그림 스물 다섯 편을 통해 행복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림은 우리의 인생을 비유하듯 행복의 아침, 점심, 저녁, 밤, 새벽 그리고 비상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자연의 순리를 깨달은 사람만이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안다고 할 것이다. 저자는 그림을 통해 행복을 전해주는 행복 큐레이터라 할 수 있다.



평소에 볼 기회가 적은 명화들을 보면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즐거운 일이었다. 책의 속표지를 장식한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꽃 핀 편도나무가지이다. 이 그림은 동생 테오의 아들인 자신의 조카를 위해 그린 것이라고 한다. 막 피어난 하얀 꽃들이 삶의 기쁨, 창조에 대한 경탄을 말하는 듯하다. 예술가들은 자연 속에서 남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아름다움, 특별함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그들의 작품 속에서 새롭게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행복은 그와 같은 발견이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행복은 늘 그곳에 있었다. 자연은 이미 말해주고 있다. 낮과 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처럼 우리 인생은 행복과 불행이 교차한다.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삶의 작고 큰 어려움, 시련 속에서도 우리를 살 수 있게 하는 힘이 행복 안에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불안증과 무기력증,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인 질환들은 행복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고 볼 수 있다. 물질적인 소유처럼 행복을 소유하려 하기 때문에 절망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우리의 삶은 슬픔과 맞닿아 있다. 우리 삶의 목적지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행복과 슬픔은 하나의 감정이다. 모든 감정은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사라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식없이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은 그것을 의식하고 커지도록 도와주는 것, 또 그것의 덧없이 사라지는 특성을 의식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하라는 조언을 하지 않는다. 행복의 본질, 행복이 무엇인지를 그림을 통해 보여줄 뿐이다. 누가 우리에게 행복을 보여줄 것인가? 자연을 통해서, 예술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보고자 한다면 작은 들꽃에서도 볼 수 있다. 그것을 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행복은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 행복은 지식이 아닌 행동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이었나?



더 크고 넓은 집, 멋진 차와 같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머무르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행복을 원하면서 정작 행복이 무엇인지 잊고 있었다. 우리가 겪는 시련과 고통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도록 놔둬서는 안된다. 불행에 맞서야 한다. 많은 예술가들이 현실에서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 세인들의 눈에는 불행했던 삶 속에서 아름답고 찬란한 작품을 만들어낸 힘은 행복을 향한 열정에 있다. 작품을 통한 행복의 절정을 맞보기 위해 오히려 행복과 멀어진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현실의 고독과 고뇌가 더욱 행복을 절실하게 표현하도록 만든 것일 수도 있다. 행복을 주는 그림 중에 예전부터 좋아하던 그림이 있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란 작품인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별빛의 일렁임이 행복하게 춤추는 느낌이 든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썼다.



나는 그림을 통해 음악처럼 뭔가 위안이 되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알 수 없는 영원, 지난 날 후광으로 상징되었던 영원과 함께 남자와 여자를 그리고 싶었다. 우리는 빛의 울림이나 떨림을 통해 색조를 찾을 수 있다.



비록 반 고흐는 자신의 삶에서 고립되고 소외된 불행을 겪었지만 동생에게 보낸 편지처럼 자신의 작품을 통해 구원과 소통을 원했다. 자기만의 행복이 아닌 세상을 향한 행복의 나눔을 실천한 것이다.
<행복을 주는 그림>은 잊고 있던 행복의 본질과 몰랐던 예술 작품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림이 주는 행복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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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주는 그림 
크리스토프 앙드레 지음, 함정임.박형섭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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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유난히 하늘이 청명했다. 어제까지 태풍으로 어두웠던 하늘이 오늘은 더 맑고 파랗게 느껴졌다. 유난히 비가 많았던 여름을 지나 가을에 접어들었다. 흐린 날을 지나는 동안 누구나 맑은 하늘을 그리워한다. 마치 간절히 바라던 선물을 받은 것처럼 맑게 개인 하늘이 반가웠다.



이 책은 그런 반가운 느낌이었다. 저자인 크리스토프 앙드레는 정신의학자로 예술을 통한 치유법을 연구한 분이다. 그는 예술 작품인 그림 스물 다섯 편을 통해 행복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림은 우리의 인생을 비유하듯 행복의 아침, 점심, 저녁, 밤, 새벽 그리고 비상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자연의 순리를 깨달은 사람만이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안다고 할 것이다. 저자는 그림을 통해 행복을 전해주는 행복 큐레이터라 할 수 있다.



평소에 볼 기회가 적은 명화들을 보면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즐거운 일이었다. 책의 속표지를 장식한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꽃 핀 편도나무가지이다. 이 그림은 동생 테오의 아들인 자신의 조카를 위해 그린 것이라고 한다. 막 피어난 하얀 꽃들이 삶의 기쁨, 창조에 대한 경탄을 말하는 듯하다. 예술가들은 자연 속에서 남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아름다움, 특별함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그들의 작품 속에서 새롭게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행복은 그와 같은 발견이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행복은 늘 그곳에 있었다. 자연은 이미 말해주고 있다. 낮과 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처럼 우리 인생은 행복과 불행이 교차한다.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삶의 작고 큰 어려움, 시련 속에서도 우리를 살 수 있게 하는 힘이 행복 안에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불안증과 무기력증,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인 질환들은 행복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고 볼 수 있다. 물질적인 소유처럼 행복을 소유하려 하기 때문에 절망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우리의 삶은 슬픔과 맞닿아 있다. 우리 삶의 목적지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행복과 슬픔은 하나의 감정이다. 모든 감정은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사라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식없이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은 그것을 의식하고 커지도록 도와주는 것, 또 그것의 덧없이 사라지는 특성을 의식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하라는 조언을 하지 않는다. 행복의 본질, 행복이 무엇인지를 그림을 통해 보여줄 뿐이다. 누가 우리에게 행복을 보여줄 것인가? 자연을 통해서, 예술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보고자 한다면 작은 들꽃에서도 볼 수 있다. 그것을 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행복은 소박한 실천에서 시작된다. 행복은 지식이 아닌 행동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이었나?



더 크고 넓은 집, 멋진 차와 같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머무르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행복을 원하면서 정작 행복이 무엇인지 잊고 있었다. 우리가 겪는 시련과 고통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도록 놔둬서는 안된다. 불행에 맞서야 한다. 많은 예술가들이 현실에서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 세인들의 눈에는 불행했던 삶 속에서 아름답고 찬란한 작품을 만들어낸 힘은 행복을 향한 열정에 있다. 작품을 통한 행복의 절정을 맞보기 위해 오히려 행복과 멀어진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현실의 고독과 고뇌가 더욱 행복을 절실하게 표현하도록 만든 것일 수도 있다. 행복을 주는 그림 중에 예전부터 좋아하던 그림이 있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란 작품인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별빛의 일렁임이 행복하게 춤추는 느낌이 든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썼다.



나는 그림을 통해 음악처럼 뭔가 위안이 되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알 수 없는 영원, 지난 날 후광으로 상징되었던 영원과 함께 남자와 여자를 그리고 싶었다. 우리는 빛의 울림이나 떨림을 통해 색조를 찾을 수 있다.



비록 반 고흐는 자신의 삶에서 고립되고 소외된 불행을 겪었지만 동생에게 보낸 편지처럼 자신의 작품을 통해 구원과 소통을 원했다. 자기만의 행복이 아닌 세상을 향한 행복의 나눔을 실천한 것이다.
<행복을 주는 그림>은 잊고 있던 행복의 본질과 몰랐던 예술 작품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림이 주는 행복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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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서 구하라 
구본형 지음 / 을유문화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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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힘든 세상이다. 서로 경쟁자가 되어 치열한 생존 싸움을 하는 것 같다. 그런 속에서 희망은 무엇일까? 작가 구본형은 말한다.  “사람에게서 구하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 누구는 말한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사람을 두고 너무나 상반된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작가의 마지막 말처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속에 좋고 나쁨이 섞여 있는 것이다. 불완전하다는 것, 그것은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어제보다 아름다운 나’를 소망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바로 어제는 과거의 역사를 뜻하기도 한다. 0년 전 중국의 역사인 춘추전국시대의 뛰어난 인물들을 통해 현대적인 가치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역사를 수레 바퀴에 비유하듯이 돌고 도는 역사 속에 과거는 곧 미래가 되기도 한다. 저자의 말대로 역사와 문화의 기원이 어디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보석 같은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역사의 주인인 것이다.



역사를 사실적인 시대의 기록으로만 본다면 난해하고 지루한 분야일 수 밖에 없다. 죽은 자들의 이야기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과거사라고 외면한다면 보석을 한낱 돌덩이로 취급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이다. 솔직히 일반인들에게 역사는 소외된 분야였다. 심하게 말하면 드라마나 영화로 소개되는 볼거리 위주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부끄럽지만 내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작가의 인간 경영론에 초점을 맞추어 새롭게 알아가는 역사 속 이야기는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나다.



“ 일 년의 계획으로는 곡식을 심는 것만 한 것이 없고,


 십 년의 계획으로는 나무를 심는 것만한 것이 없으며,



 평생의 계획으로는 사람을 심는 것만 한 것이 없다.”



 이 유명한 말은 바로 중국 춘추시대의 재상이었던 관중의 말이다.


제대로 사람을 심는다는 것은 인재를 뜻한다. 역사는 그 시대의 인재, 훌륭한 리더들이 이끌었다. 인재는 어떤 사람인가? 공자는 인(仁) , 어짊이 우선이라고 했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에는 남을 침략하고 정벌하는 것을 현명하다 여기는 시대로 천하는 이익을 다투게 되었다. 지금 현대 사회와 너무도 흡사하다. 그 때에 맹자는 인(仁)과 의(義)가 이(利)보다 우선임을 왕에게 충언했다. 바로 인간다움을 말한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많은 것이 변했어도 변하지 말아야 할 진리는 존재한다. 공자의 가르침이 그것이다. 변해서는 안 되는 것들, 그것을 잃으면 결국 사람을 잃게 된다는 인간사에 대한 지혜로운 통찰이다.



경영의 핵심에 사람이 있다. 인간을 이해하는 리더야말로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 세계적인 경영인들, 흔히 우리가 부자라고 일컫는 이들은 이미 그 진리를 알고 있었다.

 
“ 사람이 되는 것이 사업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성공하는 데 가장 큰 관건은 당신을 도와 기꺼이 함께 일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리자청



 한 사람이 인재가 되고자 한다면 인간다움을 중요시 해야 하듯 경영에 있어서는 윤리 의식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기업 경영의 목적은 이익 추구이지만 이익을 좇다가 윤리를 저버린다면 그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다. 근래 아름답지 못한 기업의 소식을 접하면서 더욱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어제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우리가 언제나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할 그것을 이 책을 통해 얻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속엔 치열한 생존이 아닌 뜨거운 공존이 있었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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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박완서 외 지음 / 작가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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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올해 작가가 선정한 소설 6편을 읽었다. 마치 참고서를 보듯 작가와의 짧은 인터뷰와 작품에 대한 해설이 있는 구성이어서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또한 마지막은 올해의 창작집 6편에 대한 서평이 있다.



오랜만에 읽는 우리 작가들의 단편 소설이라 신선한 느낌이었다. 이미 각 작품마다 멋진 해설이 있다 보니 독자 입장에서 단순한 감상문을 적어봤다.



박완서  <친절한 복희씨>



 박완서님의 소설은 편안하다. 친한 친구나 이웃의 이야기를 듣는 것마냥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언젠가 박완서님을 직접 만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작품을 통해서 만나지만 뭔가 친밀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분이다.



소설의 느낌은 책 제목에서 이미 짐작된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느낌처럼 평범하면서도 뭔가 특별한 무엇을 감춘 금자씨, 그녀의 또다른 모습이 복희씨다. 물론 영화처럼 끔찍한 복수극을 펼칠만큼 복희씨는 모질지 못하다. 책에서 묘사하듯 벌레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착한 여자의 표상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참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어쩌면 우리 어머니 세대에서는 대부분 공감할 만한 삶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 어머니 세대만큼 자신을 희생하며 사신 분들이 또 있을까. 남편 위해, 자식 위해, 부모 위해 사는 삶이라 자신의 감정은 사치스럽게 여기시는 어머니.



복희씨의 마음 속에 오래도록 자리잡은 복수심, 남편에 대한 살의는 끝내 현실로 드러나지 않는다. 차라리 영화처럼 어떤 식으로든 표출되었더라면 속이라도 후련했겠지만 역시 이 소설은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만큼 복희씨는 평범한 여자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남자 독자라면 잠시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여자의 마음은 쉽게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몇 십 년을 함께 살아 온 아내라고 해서 그녀의 마음을 전부 얻었다고 착각하지 말기를.



 



전성태  <목란 식당>



 몽골에서 가이드를 하는 나와 화가인 삼촌. 그리고 북한 사람이 운영하는 목란 식당.



북한에 방문했다가 그린 그림 때문에 북한 화가가 처벌을 받자 죄책감에 붓을 꺾은 삼촌.



어쩌면 독자인 나는 가이드하는 주인공 나처럼 삼촌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 나라가 언제쯤 통일이 될 것인가? 우리 세대에는 통일이 간절하지 않다. 이미 남과 북으로 나뉜 현실에 익숙해져서 통일의 절실함이 없어졌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도 마치 슬픈 영화처럼 현실감 없이 느껴지니 말이다.



목란 식당을 찾은 단체 손님인 목사와 신도들의 태도는 모순되고 비뚤어졌단 느낌을 준다. 단체로 입은 조끼에는 구국을 위한 고난의 십자가라고 씌여 있으면서 정작 작은 실수나 거짓말은 용서할 수 없다는 어이없는 광경을 연출한다. 어찌 보면 우리가 북한 사람들을 보는 태도도 이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우리 동포라고 하지만 역시 총부리를 겨눈 적인 것이다.



목란 식당은 그저 밥 먹는 식당일 뿐인데, 그 곳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은 더 크다. 아무런 이념의 장벽이 끼어 들 필요가 없는 식당에서도 분단의 현실은 존재한다. 씁쓸하게 나누는 삼촌과 나의 대화처럼.



아이고, 시국이 어수선하니 냉면 한 그릇 먹기도 고되네.



글쎄 말이에요. 목란은 그냥 식당인데……”



이제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 국가인 우리 나라의 통일을 조금은 생각하게 되었다.



 



정미경  <내 아들의 연인>



부유층의 중년 여성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아들의 연인인 도란은 가난하지만 당당하다.



주인공에게 도란의 존재는 젊은 시절의 추억과 같다. 가슴 따뜻한 사랑보다는 현실적인 조건대로 결혼하고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는 주인공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솔직히 별로 와 닿지는 않는 내용이다.



티슈를 뽑아쓰듯 돈을 펑펑 쓰는 부유층이 아니라서?



왠지 중년 아줌마의 권태로움같아서 싫다. 남의 일에는 귀찮아서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기만을 걱정하는 모습이 싫다. 작품 해설에는 이런 내용이라서 참신하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공감하기 어려운 주인공이니까.



 



천운영  <후에>



요즘 tv 프로그램 중에 열악한 환경의 가정을 찾아가 취재하고 전문가들이 문제점을 분석하여 교정해주는 내용이 있다. 좋은 의도의 프로그램이지만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마치 방송 출연에 대한 대가처럼 지원해주는 기간이 겨우 일 년뿐이라는 것이다. 정말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의 아이들에게 일 년의 보상 지원은 너무나 짧다. 또 학대하는 부모의 경우는 잠시 격리할 수는 있지만 법 때문에 다시 함께 살 수 밖에 없다. 이런 잠깐의 도움과 지원은 동정에 불과하다. 그나마 봉사도 하지 않으면서 비판하는 내 자신도 부끄럽지만 방송 다큐 역시 무책임한 참견이 아닌가 싶다.



이 소설은 그런 소재를 소설화하여, 방송이 끝난 후에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린 불행해선 안 된다고 했지. 우린 행복해야 한다고. 그래서 우리에게 선행을 베풀겠다는 그들의 말. 그건 정말 벗어나기 힘든 무서운 명령 같았어. 선행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독한 벌을 받게 되리라는 엄포였어. 왜 그들의 잣대로 우리의 운명을 강요하는 건지 모르겠어. 행복과 불행을 왜 하나의 관점에서만 평가해야 하는 거야? 그 부름에 응하지 않으면 부끄러워해야 하다니. 틀어박혀 있고 싶고, 되는 대로 살아가고 싶어. 그게 내 행복인데, 왜 그들은 그들의 행복만을 강요하는 걸까?……”



단순한 동정심이 아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박민규  <굿바이, 제플린>



앞서 <내 아들의 연인>과는 정반대의 주인공이다. 가난한 그들의 꾸는 꿈은 소박하다. 평범하게 함께 사는 것. 제플린은 비행선을 뜻한다. 이벤트 회사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중요한 이벤트에 쓰일 커다란 풍선이 날아가버려서 그걸 쫓아가는 과정의 내용이다. 결국 고급 벤을 타고 다니는 사냥꾼들의 엽총에 맞아 산골 양로원 마당에 떨어진 제플린. 상징적인 제플린의 모습에 왠지 울적해진다.



 



김애란  <성탄 특선>



성탄절 가난한 연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성탄을 맞아 한껏 분위기가 들떴던 여동생과 그녀의 남자 친구는 모텔을 찾아 전전하다가 결국 지쳐 여관에 들어간다. 너무나 지저분한 침대방. 결국 여동생은 피곤에 절어 집으로 돌아온다.



아름답고 멋질 것만 같은 연애의 모습은 아니다. 돈 때문에 눈치보고 신경쓰는 가난한 연인들의 모습이라 안타깝다. 드라마였으면 둘 중에 누구 하나라도 부자여서 낭만적인 연애 모습을 보여줬겠지만.



 



우리 나라 소설은 현실적이고 평범한 일상이 소재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편안하고 공감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씁쓸하다. 그냥 드라마나 영화처럼 멋진 상상을 하고 싶은데 너무나 냉정하다. 오늘의 소설은 느낌보다는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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