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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적뒤적 끼적끼적 : 김탁환의 독서열전 - 내 영혼을 뜨겁게 한 100권의 책에 관한 기록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지, 조금은 망설여진다.
그러나 작가 김탁환님은 <내 영혼을 뜨겁게 한 100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을 보여준다.
그 역시 평범한 독자였을 적에는 작가의 집필실이 궁금했다고 한다. 나도 궁금하다. 도대체 작가는 일상에서 무엇을 하며 지낼까?
그는 말한다.
"뒤적뒤적 끼적끼적!
작가란 무언가를 뒤적이고 무언가를 끼적이는 자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꽤 겸손하면서도 솔직하게 와 닿는 말이다. 뒤적이고 끼적이는 일 자체는 흔하지만 작가에게는 열정적인 작업이기에 훌륭한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위대한 작가는 동시에 열정적인 독서가이기도 하다. 과연 어떤 책을 소개하였을까?
흔히 작가의 작업실이라 하면 책이 빼곡히 꽂힌 서재가 떠오른다. 김탁환님의 서재를 본 적이 없으니 모르겠지만 그 중에서 100권을 선택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 나름의 책 분류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예술이여 인생이여, 너희 얼굴 참 곱구나
2. 지금은 잠시, '잃어버린 것들'을 만지작거릴 시간
3. 그리하여 비일상적인 일상들
4.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볼 수 있는 그대의 이름, 시인
5. 누가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리오
6. 농도 진한 한국인의 피
7. 사실 혹은 상상, 그 혼미한 경계선에서
8. 삶의 지침을 가르쳐 주는 사람, 사람들
9. 읽어야 할 책이 많기에, 써야 할 글이 넘치기에, 삶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10. 과거와 미래가 담긴 '과학'이라는 이름의 도서관
자, 이 중에서 끌리는 제목이 있다면 그 부분을 펼쳐 봐도 좋다. 사실 처음부터 차근차근 한 번에 읽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100권의 책은 마치 100명의 사람을 만나는 일과 같다. 이미 알고 지내던 누군가라면 더욱 반가웠겠지만 수많은 낯선 사람들을 연달아 만나니 어색한 순간이 있다. 처음이지만 친근한 경우도 있다. 어찌됐든 누군가의 영혼을 뜨겁게 했던 책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소개된 100권의 책은 김탁환님에게 감동을 준 친구들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권장도서 100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작가 김탁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절친한 친구일수록 닮는 법이니까. 영혼을 뜨겁게 할 만한 글이란 그 글을 읽는 이의 마음도 똑같다는 의미다.
내 영혼은 어떤 책을 읽을 때 뜨거워졌는가?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끌리는 작가가 있다. 아니 에르노!
"현실을 추적하는 대신 현실을 생산하고자 하는 옛날 이야기는 꾸며 내지 말 것. 추억 속의 이미지를 거론하여 번역하는 데 만족하지 말고, 이 이미지를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스스로 속살을 드러내는 자료로 취급할 것, 한마디로 나 자신의 인류학자가 될 것."
부끄러움에 대한 아니 에르노의 철학적 성찰이 내게도 필요하다. 예전부터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은 부끄러움에 대한 고백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글쓰기가 쉽지 않았다. 작가가 아니더라도 일상의 글쓰기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상에 책이 없었다면 혹은 글을 쓸 수 없었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누군가는 뒤적이며 감동을 받고, 누군가는 끼적이며 감동을 준다. 뒤적뒤적 끼적끼적! 행복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