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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의 루머의 루머 ㅣ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5
제이 아셰르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3월
평점 :
# 루머에 대하여
루머란 그야말로 근거없는 뜬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루머에 집착한다. 요즘처럼 편리한 인터넷 세상에서는 '아닌 뗀 굴뚝에 연기가 나고', '발 없는 말은 순식간에 천리를 가는' 일이 흔하다. 더군다나 익명이 보장되는 경우에 악성루머는 거침없이 떠돌고 그에 따른 피해자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도대체 루머를 퍼뜨린 범인을 어떻게 잡겠는가? 이미 엎지러진 물이다. 한 번 손상된 이미지는 돌이키기 힘들다. 그러니 악성루머로 괴로워하던 연예인의 자살 소식은 모두에게 경각심을 일으킨다. 자살은 무책임하다느니, 자살은 나약한 사람의 선택이니 하는 식으로 섣불리 비판해서는 안 된다. 루머는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치명적 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루머를 퍼뜨린 범인도 잘못이지만 루머를 진실로 받아들인 대다수의 사람들도 공범이 아닐까?
분명 이전에도 루머는 존재했다. 그러나 요즘처럼 루머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던가? 모르겠다. 유독 사기가 극성을 치고 불신이 팽배해진 시기와 맞물려 루머가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루머의 속성을 그대로 표현해 내고 있다. 처음에 의도는 가벼운 장난일 수도 있지만 점점 눈덩이처럼 커져 한 사람을 매장시킬 만큼의 위협적인 루머를 만들어낸다. 루머의 피해자는 십 대 소녀 해나 베이커다. 연예인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소녀에게 루머는 무엇이었을까? 가해자는 같은 학교의 학생들이었다. 십 대 청소년들에게 루머는 집단 따돌림 혹은 왕따 현상과 연관지을 수 있다. 해나는 꽤 예쁘고 모범적인 여학생이며 전학생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할 만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루머를 빼고는. 루머의 시작은 너무나 유치했다. 전혀 믿을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원래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었다면 심한 농담은 그만두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나는 그 지역에 이사 온 이방인이었다. 낯선 학교와 학생들 속에서 루머는 점점 사실처럼 굳어지고 해나는 점점 고립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해나에게 루머는 벗어나기 힘든 굴레였다. 자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풀기 위해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결심한 것이다. 모든 사실을 테이프에 녹음으로 남긴 뒤 자살하기로 말이다.
# 자살에 대하여
해나는 왜 자살을 결심했을까? 물론 해나에게는 몹쓸 루머가 큰 상처가 되었고 친구들에게 다가갈 수 없는 벽이 되었다. 중요한 건 상처입은 해나를 위로해줄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는 것이다. 도움이 될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해나에게는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셨고 해나를 짝사랑하던 클레이가 있었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고 마음을 열었더라면 기회는 있었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가장 억울한 것은 자살한 본인일텐데......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세상에 혼자 뿐이라는 외로움과 공허감일 것이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여길 정도로 사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해나는 제대로 된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십 대 청소년이었다. 겨우 첫키스에 대한 환상이나 꿈을 꾸는 소녀였다. 그런데 루머는 소녀의 꿈과 희망을 짓밟았다. 청소년 시절에 친구란 인생의 중요한 의미이며 힘이다. 친구가 될 수도 있었던 아이들이 만든 루머 때문에 해나는 살 의미를 잃은 것이다.
정말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 안타까웠던 부분은 해나의 부모님이 어려워진 경제 사정때문에 해나의 아픔을 알아차릴 여유가 없었다는 점이다. 일하느라 바빠진 부모님은 해나와 대화할 시간도 없었던 것 같다. 그 동안 스스로 잘 해온 딸이었으니까 믿는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해나가 부모님과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딸이 자살한다면 부모님이 받을 충격은 엄청날 것이다. 해나는 자신을 괴롭힌 아이들의 비리를 낱낱이 밝히고 자살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루머의 진실을 밝힌 유품이 된 일곱 개의 테이프는 관계된 열세 명의 아이들에게 소포로 전해졌다. 루머 때문에 자살한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어떤 심정일까? 해나가 짐작한 대로 그 아이들은 저마다 자살에 대한 일말의 책임이 있었고 심리적으로나마 그 대가를 치룰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부모님은? 해나가 부모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했었다면 절대로 자살을 선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소중한 부모님이 겪을 아픔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다. 자살까지는 아니더라도 절망 속에 빠진 이들이 간과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원했다면 기꺼이 내밀었을텐데 절망으로 가려져 그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안타깝다.
해나가 마지막으로 살기 위해 찾아 간 사람은 상담을 맡고 있는 포터 선생님이다.
다음은 포터 선생님과 나눈 대화의 일부다.
- 네 친구들은 어때?
"친구"가 정확히 무슨 뜻인 것 같아요?
- 친구가 없다는 건 아니겠지, 해나? 복도에서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던데.
뜻을 알고 싶어요. 친구가 뭔데요?
-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의논할 수 있는.....
그렇다면 전 없어요. 그래서 여기로 온 거에요. 선생님에게 의논하려고요.
포터 선생님은 알았을까? 해나는 선생님이 자신을 붙잡아주길 원했던 것이다. 마지막 남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선생님을 찾아갔지만 선생님은 잡아주질 못했다. 선생님에게는 일상과 다를 바 없는 상담시간이 해나에게는 결정적인 기회였음을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불행히도 해나가 보내는 메시지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해나는 자살하기 2주 전에 테이프로 자신의 심정을 남겼다. 진작에 해나의 진심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면......해나가 남긴 테이프는 뒤늦게 진실을 알렸다.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의 심정은 이해하면서도 그들이 준 아픔이 너무 커서 원망스럽기도 하다.
너도 아팠겠지만 남겨진 사람도 아프다는 걸 왜 모르니?
해나가 남긴 테이프는 정해진 순서대로 소포로 받고, 받은 사람이 다시 다음 사람에게 소포로 보내지면서 남자 주인공 클레이에게 전해졌다. 클레이는 해나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미일까? 왜 이 책이 출간되면서 작가의 헤어졌던 첫사랑이 전화를 걸었는지 알 것 같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다.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것이 인생이다."
이것이 해나를 통해 얻은 교훈이다.
***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읽으면서 떠오른 책들이다.
<살았더라면> 사랑의 아픔 때문에 자살한 남자의 후회와 절규를 느낄 수 있다.
<미안해, 스카이> 열네 살 소녀가 집단 따돌림으로 자살하기까지의 심정이 나와 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해나가 찾아갔던 시모임 때문에 이 시집이 떠올랐다. 외로움이 절망이 아니라 삶의 일부임을 깨달았다면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외로워도 사랑이 있으니까 살 수 있음을......
<내가 사는 이유> 열다섯 살 소녀 데이지의 삶을 통해 읽는 이들도 삶의 이유를 돌아보게 된다.
<개밥바라기별>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우리는 누구나 반짝이며 빛내야 할 삶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