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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우정 여행 - 파리의 정신과 의사 ㅣ 열림원 꾸뻬 씨의 치유 여행 시리즈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이은정 옮김, 발레리 해밀 그림 / 열림원 / 2011년 1월
평점 :
꾸뻬 씨를 알게 된 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사실은 꾸뻬 씨보다 그의 아들인 꼬마 꾸뻬를 먼저 알게 됐다. 정신과 의사인 아빠의 조언대로 인생 수첩을 적어가는 조숙한 소년 꾸뻬에게 멋진 수업을 받은 적이 있다. <꼬마 꾸뻬, 인생을 배우다>(2009)
이제 드디어 꼬마 꾸뻬의 아버지, 꾸뻬 씨를 만난 것이다. 정신과 의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인터폴이 찾아온다. 은행원인 친구 에두아르가 거액의 돈을 횡령한 채 잠적한 것이다. 경찰에게는 숨겼지만 에두아르가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에는 에두아르의 사진과 함께 "내 앞에 타오르던 불은 꺼졌다. 걱정하지 말게나, 친구. 그들의 말은 듣지 마. 날 기다려줘."라고 쓰여 있었다. 어떻게 된 걸까?
사랑하는 아내 클라라의 배려로 에두아르를 찾아 떠난 꾸뻬 씨는 예상치 못했던 모험을 하게 된다. 왠지 잔잔할 것 같은 호수에 파도같은 물결을 마주한 느낌이다. 꾸뻬 씨가 우정에 관해서 강의를 하듯 이야기했다면 그다지 끌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꾸뻬 씨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정을 이야기한다. 물론 그의 수첩에 <우정에 대한 관찰>을 적으면서 말이다.
관찰 1 우정은 건강이다.
관찰 2 친구를 위해서라면 자기 것을 희생하거나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
......
관찰 9 친구란 내가 불행할 때 함께 슬퍼하고 내가 행복할 때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다.
관찰22 우정은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상호적으로 호의를 베풀며 서로를 인정하고 존경하면서 점점 커져간다.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위해서 나는 어떤 희생을 감수할 수 있을까? 반대로 내가 어려울 때 발벗고 나설 친구는 몇이나 될까?
오히려 어릴 때는 우정의 힘을 굳건히 믿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나니 왠지 순수한 우정과는 이별한 느낌이다. 책에서 언급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우정에는 '필요에 의한 우정', '여흥을 위한 우정', '선한 우정' 세 가지가 있는데 진정한 우정은 마지막의 선한 우정뿐이라고 했다. 꾸뻬 씨처럼 우정을 위해서 과감히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선한 우정'이라면 내게는 진정한 우정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아마도 대부분의 기혼 여성들, 이른바 아줌마들이 우정을 지키기 어려운 현실적인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친구에 대한 마음은 변함없는데 현실적으로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면 저절로 우정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 오랜 친구들을 떠올리면 마음 한 켠이 쓸쓸하다. 핑계같지만 아니, 핑계를 대자면 세월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처음 지녔던 우정을 지키려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만나지 못하면 전화라도, 혹은 이메일이라도 보내면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정은 딱딱하게 굳은 화석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 '아, 예전엔 우리 사이가 이랬었지.......' 살다보니 '선한 우정'을 놓치고 산 것 같다.
<꾸뻬 씨의 우정 여행>은 흥미로운 모험이었다. 그가 적은 우정에 대한 작은 성찰들은 이미 우리가 느낀 것들이며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정말 내게 와 닿은 부분은 '센토사'였다. '센토사'란 불교 덕목 중에 하나로써,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을 뜻한다. 모든 사람이 꾸뻬 씨와 같은 친구, 우정을 가질 수는 없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 삶에는 우정만큼이나 소중한 사랑이 있으니까. 뭔가를 굳이 정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소중한 가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친구 에두와르, 브라이스, 솔렌느 그리고 꾸뻬 씨의 환자 스타 등 그들에게 필요한 건 '센토사'였다.
우리에게 우정이 소중한 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한 부분이기때문이다. 결국 지금 우리 삶을 지탱하는 힘은 '센토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