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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나구 - 죽은 자와 산 자의 고리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죽은 자와 산 자를 만나게 해주는 사자(使者), 바로 츠나구에 관한 이야기다.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까? 라는 상상만으로도 흥미를 유발하는 소설이다. 흔히 죽은 사람과 만난다고 하면 심령술과 같이 영매를 통한 교접을 떠올리는데 여기서는 실제로 죽은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 오래 전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 보여준 죽은 자와의 만남보다는 더 진지한 느낌이 든다.
보름달이 뜨는 밤, 호텔 방에서 단 둘이 만나는데 살아 생전과 똑같은 모습이라서 죽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츠나구를 통해 죽은 사람을 만날 때에는 알아둬야 할 사실이 있다. 살아 있는 동안에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딱 한 번뿐이라는 것이다. 죽은 사람 입장에서도 한 번의 기회이기 때문에 츠나구가 만남을 의뢰했을 때 죽은 자가 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죽은 자가 한 번 거절한 사람은 죽은 자 입장에서도 다시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서로가 신중할 수밖에 없다.
심장마비로 돌연사한 아이돌 스타를 만나고 싶어하는 여자,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하는 장남, 교통사고로 죽은 단짝을 만나려는 여고생,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실종된 약혼녀를 기다리다 츠나구를 찾아온 남자.
각자의 사연을 안고 죽은 사람을 만나려는 네 사람을 보면서 문득 '나라면?'이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다행히 현재로서는 없다. 하지만 만약에 먼 훗날 츠나구에게 부탁할 수 있다면 아마도 어머니를 찾지 않을까. 무뚝뚝하고 성격이 유별난 장남이 어머니를 만날 때는 괜시리 눈물이 났다. 그리 슬픈 내용도 아닌데 사랑하는 어머니를 떠올리니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그랬나보다. 죽음을 경계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은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물론 아이돌 스타를 만난 여자와 단짝을 만난 여고생은 좀 특별한 경우다. 일생에 한 번의 기회를 사용할 만큼 절박했다는 점이 안타깝다. 츠나구의 존재는 전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츠나구를 통해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 죽음의 세계가 어떠한지는 알 수가 없지만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이유는 그 사람과의 깊은 인연때문이 아닐까. 죽음은 그 인연을 끊는 사건인데 그것을 잠깐이지만 연결한다는 것 자체가 순리를 거스리는 일 같다. 삶과 죽음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인간에게 츠나구는 인간 그 이상의 힘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읽는 내내 츠나구의 정체가 궁금했다.
책 마지막에 츠나구의 정체가 드러난다. 처음부터 고등학생의 어린 소년이 츠나구로 등장해서 소설 속 의뢰인만큼이나 이상하다고 여겼다. 츠나구가 꼭 나이 든 사람이란 법은 없지만 처음 츠나구의 존재를 상상했을 때 소년의 이미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소설은 츠나구라는 존재보다는 츠나구를 필요로 하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실 츠나구를 설명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츠나구가 만나게 해주는 죽은 자는 생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영화처럼 공중에 붕 떠 있는 유령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처럼 육체를 갖추고 나타난다는 점이 신기하다.
작가는 츠나구에 관한 수많은 궁금증을 속 시원히 밝히지 않음으로써 독자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츠나구는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준을 넘어선다고 봐야 할까. 왠지 세상 어딘가에 츠나구가 존재할 것만 같다. 정말 간절히 바라면 츠나구를 만날 수 있을지도......
중요한 건 지금의 내가 츠나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금 내 곁에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새삼 깨닫는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