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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노트
우타노 쇼고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열네 살 소년이 일기를 적는다. 그 일기장에는 '절망'이라고 쓰여있다.
마치 데스노트처럼 절망노트에 적힌 사람들이 죽기 시작한다. 소년은 그 사람이 죽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자기만의 신에게 빌었을뿐......
반 친구들에게 왕따 괴롭힘을 당한다는 소년은 숀이다. 존 레논을 숭배하는 무능력한 백수 아버지와 회장댁에서 파출부 일을 하는 어머니를 둔 빼빼마른 남자아이. 가난해서 다른 아이들은 거의 갖고 있는 핸드폰도 없고 컴퓨터도 없다. 학원비가 없어서 학원도 못다닌다.
숀이 써내려간 절망노트를 읽으면서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다. 숀의 말대로 어른들은 왕따 혹은 학교폭력에 대해 제대로 모르면서 아이들 탓만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숀과 같은 상황이라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숀을 절망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절망노트에 적힌 대로 누군가 죽는다는 건 뭔가 불길하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
어느 정도 예상은 있었지만 마지막 부분은 충격 그 자체다. 소름이 돋는다.
솔직히 숀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하고 안 좋았는데 결말은 그 감정이 극대화된 것 같다. 겨우 열네 살 소년이 그토록 잔인할 수 말인가? 만약 절망노트가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을 것 같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절망적이다.
근래 <피그 보이>라는 책을 읽었다. 캐나다 소설인데 주인공 댄 호그도 열네 살 소년이다. 빼빼마른 몸에 두꺼운 안경을 낀 소년이 돼지를 떠올리게 하는 호그라는 이름을 가졌으니 친구들의 놀림을 받는 게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굉장히 심각할 수 있는 왕따 문제를 이 책에서는 매우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절망노트>에 비하면 책도 얇아서 금세 읽는다. 그때문일까. 왠지 진짜 왕따를 당하는 아이의 마음을 그려내기에는 부족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반면 <절망노트>는 너무 처절하게 그려내서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간혹 어린 중학생의 자살 소식을 접하면서 이해하지 못했는데 <절망노트>를 보면서 어느 정도는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살은 잘못된 선택이지만 그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 같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 그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처음에는 절망에 빠진 숀이 일기장에 써내려간 저주의 글에 공감했던 것 같다. 누구라도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향해 저주를 퍼부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마음에서 저지르는 악(惡)도 악이다.
이 책을 덮는 순간, 열네 살 소년에게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어른들보다는 순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엇이 소년의 마음을 악으로 물들였을까?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절망노트>를 <희망노트>로 바꿔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