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정체성 - 경복궁에서 세종과 함께 찾는
박석희 외 지음 / 미다스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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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15일 광화문 복원 행사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 광복절 행사에 맞춰 광화문 복원과 현판식이 있다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겸 갔던 것이다. '광화문'이라고 쓰인 한자 현판을 보면서 왠지 역사의 현장에 참여한다는 뿌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광화문을 거쳐 경복궁을 둘러보면서 아이들에게 좀더 자세한 설명을 못해준 것이 아쉬웠다.

그 후로 광화문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뉴스를 통해 종종 접하는 것이 광화문 현판 소식이다. 2010년에 새로 복원 교체한 현판이 석달 만에 균열이 생겨서 여러번 수리작업을 거쳐왔고, 그 과정에서 광화문 현판 글씨를 한글로 하느냐, 한자로 하느냐로 논쟁이 일고 있다.

도대체 광화문 현판을 놓고 왜 이러한 갈등이 생기는 것일까?

<조선의 정체성>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조선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제법 두껍지만 사진 자료가 많아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경복궁을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각 사진을 보면서 안내를 받는 기분이 들 것이다. 경복궁에 관한 역사적 자료나 정보는 많지만 경복궁에서 세종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어떨까?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경복궁 건물이 많이 파괴되어 100년 전의 경복궁을 복원하려면 아직도 멀었지만 현재 남아있는 경복궁 답사만으로도 조선 역사의 현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세종대왕과 경복궁을 통해 조선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건 광화문 거리에 세종대왕이 앉아 있는 이유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경복궁은 조선 역사의 현장이며 세종대왕은 중심적 역할을 해낸 임금이다. 역사의식이란 한 개인뿐 아니라 국가 전체를 바로 세우는 기반이 된다. 곧 우리 민족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가 우리의 미래를 변화시킬 것이다.

며칠 전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다. 광화문 현판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한글에서 한자로 바뀌었다. 한글단체와 문화재청에서 말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각자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조선의 정체성>을 읽으면서 과연 세종대왕이라면 어떤 결정을 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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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철학할 시간 - 소크라테스와 철학 트레킹
한석환 지음 / 유리창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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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이가 든다고 해서 저절로 지혜로워지지는 않는다.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해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지금, 철학할 시간?

아마도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철학적 사색이 아닐까, 라는 심정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소크라테스는 꽤 유명해서 철학과 동일시 여길 때도 있다. 소크라테스 가라사대~ 이 책은 철학을 어렵게 설명하지 않는다. 아예 유명한 소크라테스를 강사로 불러와 직접 강의를 듣는 것처럼 철학 이야기를 풀어간다. 화자만 바꿨을 뿐인데 철학책이 한결 만만해진 느낌이다. 인생을 논하는 철학이 너무 어렵다면, 그건 죽은 철학이 아닐까?

소크라테스는 죽었지만 그의 철학이 살아있듯이 이 책을 통해 생생한 철학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사실느낌상 만만해진 것이지 내용까지 만만한 것은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2400년 전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이 가지는 철학적 물음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인간의 삶이 몇 백년, 몇 천년을 살 수 있다면 또 모를까.

새해가 시작되고 숫자상 나이는 늘어가는데 인생의 지혜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다. 당장 살기에 급급한 사람은 멀리를 바라보지 못한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삶의 지혜이며, 그 지혜를 깨닫는 과정이 철학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철학은 평범한 사람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 그냥 스쳐가는 말이며 쓰여진 글일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저자는 소크라테스를 현재 우리들 곁으로 데리고 와서 소크라테스의 말을 들려주고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 지를 보여준다. 만약 내 상황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철학은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도 철학을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 소크라테스를 좀더 알게 되었고 철학에 대한 편견을 조금은 떨쳤내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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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트라우마 - 우리 아이 마음의 상처 읽기와 치유하기
배재현 지음 / 에코포인트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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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의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후로 점점 대화가 줄어든 것 같다. 바쁘다는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컸다는 이유로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든 탓이다. 그러다보니 가끔 아이와 대화하다보면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생긴다. 어떤 경우는 아이를 야단치면서 마음의 상처를 준 것 같아 걱정스럽다.

솔직히 그동안의 육아방식에 대해 자랑할 정도는 아니어도 반성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요즘은 많이 걱정이 된다. 아이는 점점 커가는데 그 마음을 점점 이해할 수 없어서다. 주변에서 보면, 모범적이던 아이가 한순간에 돌변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부모들이 흔히 하는 말, "우리 애가 갑자기 왜 이럴까요?"라고 반문한다. 아이의 마음 속에 상처가 곪을 때까지 부모는 왜 몰랐을까? 어쩌면 부모의 관심이 아이가 아닌 아이의 성적으로 바뀐 탓은 아닌지. 학교성적이 우수하고 특별히 부모에게 반항하지 않는다면 아이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단정짓는 것은 아닌지.

솔직히 부모로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아이의 마음보다는 외적인 태도나 눈에 보이는 성과에 더 집착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부모의 기준에 맞게 아이를 조정하려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의 주관을 가지니까 부모와 의견을 달리하게 되고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지금 육아에 대해 걱정하는 것도 근본적인 원인을 바라본다기 보다는 아이의 태도를 마음에 안들어하는 속마음인지도 모르겠다.

부모로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살펴보는 건 어려운 것 같다. 그보다는 내 안에 어떤 마음이 자리잡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이 책은 저자가 오랜 시간을 상담한 내용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조언을 해준다. 차근차근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부모로서의 '나'를 돌아보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어설프게 아는 것이 더 문제란 생각이 든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 순순히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새롭게 아이를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트라우마, 내 아이의 마음 속에 어떤 상처가 있는지를 알고 지금부터는 그 상처를 치유해야 할 시간이다. 부모의 사랑도 온전히 아이 마음에 전해지려면 항상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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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벽난로에 산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3
애너벨 피처 지음, 김선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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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난로에 사는 누나?

어떤 은유나 비유가 아니다. 말 그대로 누나는 벽난로에 있다. 다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골함에 존재한다. 쌍둥이 누나의 죽음으로 인해 모든 것이 변해버린 한 가정의 이야기다.

주인공 제임스는 열 살의 소년이다. 런던 시내의 폭탄 테러 사건으로 로즈 누나가 죽었고 엄마는 집을 나갔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제임스는 눈물을 잃었고 재스민 누나는 말을 잃었다.

한 가정의 비극이란 무엇일까?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변해버렸다. 비극적인 사고 후에 벌어진 가족의 변화는 누구의 탓도 아니다. 불행을 예상하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항상 불행은 쓰나미처럼 찾아오고 당하는 사람은 어이없이 쓰러지고 만다.

아빠가 죽은 로즈 누나를 놓아주지 않는 건 현재의 불행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불행을 함께 겪으면서 서로의 상처를 다독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임스에게는 이 모든 일들을 관찰하는 입장이다. 어린 제임스에게는 외모는 똑같지만 성격은 전혀 다른 로즈 누나에 대한 기억은 없으니까.

부모라고 해서, 어른이라고 해서 강인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불행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으니까.

제임스의 엄마와 아빠는 왜 살아 있는 두 아이들은 신경쓰지 않는 것인지 처음에는 이해 못했다. 그런데 누가 그런 비극적인 일을 당하고 멀쩡하게 살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경험하지도 않은 불행에 대해서 감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니 마음이 아프다. 불행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는 못해도 마음 어딘가에는 상처를 입을테니까.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은 아파본 사람에게는 가슴을 후미는 말 같다. 어쩔 수 없는 불행과 아픔을 견디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뿐이다. 사람마다 아픔을 극복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묵묵히 견뎌야 하는 시기가 필요한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든 아픔이 지나가면 또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다. 재스민과 제임스, 두 아이에게도 좀더 밝은 내일이 있을 거라고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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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노트
우타노 쇼고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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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소년이 일기를 적는다. 그 일기장에는 '절망'이라고 쓰여있다.

마치 데스노트처럼 절망노트에 적힌 사람들이 죽기 시작한다. 소년은 그 사람이 죽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자기만의 신에게 빌었을뿐......

반 친구들에게 왕따 괴롭힘을 당한다는 소년은 숀이다. 존 레논을 숭배하는 무능력한 백수 아버지와 회장댁에서 파출부 일을 하는 어머니를 둔 빼빼마른 남자아이. 가난해서 다른 아이들은 거의 갖고 있는 핸드폰도 없고 컴퓨터도 없다. 학원비가 없어서 학원도 못다닌다.

숀이 써내려간 절망노트를 읽으면서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다. 숀의 말대로 어른들은 왕따 혹은 학교폭력에 대해 제대로 모르면서 아이들 탓만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숀과 같은 상황이라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숀을 절망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절망노트에 적힌 대로 누군가 죽는다는 건 뭔가 불길하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

어느 정도 예상은 있었지만 마지막 부분은 충격 그 자체다. 소름이 돋는다.

솔직히 숀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하고 안 좋았는데 결말은 그 감정이 극대화된 것 같다. 겨우 열네 살 소년이 그토록 잔인할 수 말인가? 만약 절망노트가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을 것 같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절망적이다.

근래 <피그 보이>라는 책을 읽었다. 캐나다 소설인데 주인공 댄 호그도 열네 살 소년이다. 빼빼마른 몸에 두꺼운 안경을 낀 소년이 돼지를 떠올리게 하는 호그라는 이름을 가졌으니 친구들의 놀림을 받는 게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굉장히 심각할 수 있는 왕따 문제를 이 책에서는 매우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절망노트>에 비하면 책도 얇아서 금세 읽는다. 그때문일까. 왠지 진짜 왕따를 당하는 아이의 마음을 그려내기에는 부족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반면 <절망노트>는 너무 처절하게 그려내서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간혹 어린 중학생의 자살 소식을 접하면서 이해하지 못했는데 <절망노트>를 보면서 어느 정도는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살은 잘못된 선택이지만 그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 같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 그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처음에는 절망에 빠진 숀이 일기장에 써내려간 저주의 글에 공감했던 것 같다. 누구라도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향해 저주를 퍼부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마음에서 저지르는 악(惡)도 악이다.

이 책을 덮는 순간, 열네 살 소년에게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어른들보다는 순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엇이 소년의 마음을 악으로 물들였을까?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절망노트>를 <희망노트>로 바꿔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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