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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만세,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 - 조선어학회, 47년간의 말모이 투쟁기
이상각 지음 / 유리창 / 2013년 9월
평점 :
한글!!!
언문, 정음, 반절 등으로 불리던 우리 말글에 '한글'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인 사람이 누구인가?
올해 한글날이 23년 만에 공휴일로 다시 지정되었다.
단순히 공휴일로 부활한 한글날을 그저 하루 쉬는 날로 생각했던 사람도 바로 이 책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을 읽는다면 제대로 한글날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다.
그러므로 이지러짐 없이 반듯하게 자리를 잡아 굳게 선 뒤에야 그 말을 잘 지킬 수 있다.
글은 또 말을 닦는 기계라서 기계를 닦은 뒤에라야 말이 잘 닦인다.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려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잘 다스려지는 법이다.
너희는 우리 말글을 아름답게 가다듬어 후손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 주시경 선생 (16p)
한글날은 훈민정음 곧 오늘의 한글을 창제하여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기리기 위한 국경일이다. 2013년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지 567년 되는 해이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 속에는 한글이 짓밟히고 사라질 절체절명의 시기가 있었다. 일제 암흑기에서 목숨바쳐 한글을 지켜낸 이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한글 만세! 대한민국 만만세!
이토록 소중한 우리의 한글이 지금은 어떠한가?
외래어, 비속어, 은어, 유행어 등으로 언어 오염이 심각하다. 가끔 청소년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도대체 여기가 한국인지, 어디 외국인지 분간이 안 될 때가 있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공영방송에서조차 이상한 신조어와 비속어를 함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과 모바일 사용이 일상이 된 요즘에는 오히려 신조어와 비속어가 기본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언어말살 정책을 예견하고 우리 말과 글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의 언어 독립 투쟁의 기록이다.
주시경 선생은 1911년부터 말모이 사업을 시작하여 어휘 수집에서 주해까지 진행되었으나 4년 뒤, 1914년 7월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때 주시경 선생의 나이 38세였다. 주시경 선생의 사망으로 말모이 편찬 사업은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장지영, 최현배, 신명균 등이 다시 조선어연구회를 만들어 한글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이후 학회 이름을 조선어학회로 바꾸고 독일에서 귀국한 이극로가 가세하여 활기를 띠게 되었다.
조선어학회는 1093년 12월 13일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 위원을 뽑고 제정, 수정,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첫 제정 위원은 권덕규, 김윤경, 박현식, 신명균, 이극로, 이병기, 이윤재, 이희승, 장지영, 정열모, 정인섭, 최현배 등 12명이었다. 이들은 2년 동안 심의를 거듭하여 1932년 12월 맞춤법 원안 작성을 마쳤고, 김선기, 이갑, 이만규, 이상춘, 이세정, 이탁 등 6명을 증원하여 총 18명이 참여한 가운데 제 1독회를 열었다. 햇수로 3년, 총 125회 433시간에 걸친 회의를 통해 완성된 한글맞춤법통일안은 1933년 10월 29일 한글날을 맞아 명월관에서 기념식 석상에서 발표되었다.
일제는 조선어 연구와 사전 편찬 작업을 와해시키기 위해서 조선어학회를 정치 조직으로 규정하고, 회원들을 모두 체포했다. 일제의 고문은 묘사된 것만 봐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했다.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체포된 인사들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었으니 일제의 비열한 음모를 짐작할 만하다.
이은상의 ㄹ자 시는 당시의 참담한 상황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평생을 배우고도
미처 다 못 배워
인제사 여기 와서
ㄹ자를 배웁니다.
ㄹ자 받침 든 세 글자.
자꾸 읽어봅니다.
제 '말' 지켜라.
제 '글' 지켜라.
제 '얼' 붙안고
차마 놓지 못하다가
끌려와
ㄹ자같이
꼬부리고 앉았소.
문득 이정명 작가의 <별을 스치는 바람>이 떠오른다. 윤동주 시인의 생애를 다룬 소설이다. 일제시대 감옥에서 사라져간 애국지사들과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고통이 전해져 마음 아팠던 소설이다. 감히 짐작하고 상상하면서 새삼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해본다.
해방 이후에는 한글 파동으로 또다른 위기가 있었다. 한글 간소화 방안은 조선어학회가 목숨까지 버리며 지켜낸 한글을 훼손하는 일이었고 <조선말 큰사전>을 무시한 방안이었다. 학계, 교육계, 언론계가 일제히 정부의 조치를 비난하였다. 다행히 미국과 국내 여론을 의식한 이승만의 백기 투항으로 한글파동은 끝이 났고, 1957년 드디어 을유문화사에서 <큰사전> 여섯 권을 완간했다.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이 말모이 사업을 시작한 지 47년만의 쾌거였다.
이렇듯 잔혹한 탄압 속에서도 우리 말글을 지켜냈던 분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한글이 존재하는 것이다
주시경 선생을 비롯하여 조선어학회사건 33인 [ 이윤재, 한징, 최현배, 이극로, 이희승, 김윤경, 정인승, 이병기, 권덕규, 장지영, 이인, 김법린, 이은상, 안재홍, 정열모, 안호상, 정인섭, 정태진, 김선기, 이석린, 이중화, 신현모, 권승욱, 김도연, 이우식, 김양수, 서민호, 이만규, 윤병호, 이강래, 장현식, 서승효, 김종철 ] 은 민족의 '얼'을 지켜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을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 아무리 소중한 것도 그 가치와 의미를 모르면 무의미해진다.
'한글이 목숨'...... 지금 우리에게 한글은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생각하며 가슴 뜨거워지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