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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학 수업 - 우리가 다시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에리카 하야사키 지음, 이은주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저자 에리카 하야사키는 우연히 컴퓨터 스크린에 뜬 웹 링크를 보게 된다.
한 대학생이 어떤 교수에 관해 쓴 글이다.
제목은 '삶을 바라보는 작은 관점을 얻다 : 삶의 매 순간을 죽음 안에서 새롭게 포착하기. 킨kean 대학교에서 선사하는 놀라운 수업.' 이다. 죽음학 교수로 불리는 그녀의 이름은 노마 보위. 공중위생정책학 박사로 보건행정 분야의 석사학위를 가진 공인 간호사이자, 뉴저지 주 유니언의 킨 대학교 종신교수다. 무엇보다 그녀의 명성은 킨 대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좌 <긴 안목으로 보는 죽음>로 알 수 있는데 수강 대기자만 3년 치가 밀려 있을 정도란다.
저자는 직접 보위 교수를 만나 저널리스트 자격으로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수업 및 체험을 상세히 기록하기로 한 것이다. 책에 나오는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나는 3년을 기다려야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강좌를 단지 3시간만에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죽음학 수업>
솔직히 이 책을 받고도 며칠째 읽지 못했다. 왠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고 해야 할까.
만약 이 강좌를 신청했다고 해도 첫 번째 과제를 접하고 망설였을 것 같다.
학생의 입장이 된 에리카에게 노마가 준 첫 번째 과제는 다음과 같다.
"여러분 곁을 떠난 누구, 또는 무엇에게 작별의 편지를 써오세요. 상대에게 하고픈 말을 쓰면 됩니다. 무엇이든 좋아요. 그런 다음 서명을 하고 날짜를 적으세요.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여러분 머리에 딱 떠오른 생각, 그게 여러분이 써야 할 내용입니다." (23p)
이제 이해가 됐을 것이다. 죽음학 수업은 일방적인 전달식 교육이 아니다. 이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노마가 준 과제를 적어내야 한다. 물론 여러가지 체험이나 견학도 있지만 그것 역시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 느낌 등을 적어내야 한다. 그리고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한다.
죽음에 대한 수업은 죽음 그 자체를 알고자 하는 의도도 있겠지만 결국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노마, 그녀를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왜 많은 이들이 그녀를 찾는지 알 것 같다. 아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 속에는 노마 보위와 그녀의 제자들에 관한 삶과 죽음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저자는 4년이라는 시간동안 녹음기를 들고 다니면서 노마 보위와 학생들을 취재했다고 한다. 누구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조나단과 케이틀린의 삶, 노마 자신의 삶, 이스라엘과 아이시스. 불행하다고 느낄 때는 세상의 모든 불행을 나 혼자 떠안은 것 같겠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더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른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과연 나도 큰 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노마는 죽음학 수업에서 에릭슨의 단계 이론으로 우리의 삶을 설명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가 겪어야 하는 심리 상태이며 모든 갈등과 위기를 설명해 주는 기준이 된다. 성인기는 생의 7단계로 '생산성 대 침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 이 때 중요한 변수는 자신의 정체성 이다. 만약 한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한 번도 파악하지 못하고 생의 초기 단계들에서 진정한 사랑이나 친밀한 관계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성인기에 이르러 비참한 불평분자가 될 수 있다. 즉, 그 무엇도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의미다. 계속 이런 식으로 산다면 에릭슨의 마지막 발달 단계에서는 심각한 좌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 올바른 성인기라면 '나의 유산은 무엇인가? 나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기게 될까?'라는 생산성에 집중하게 된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이 책을 읽는 사람들과 죽음학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설명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제 할 일은 노마의 작문숙제를 조용히 적어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