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는 용감했다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39
알렉스 쉬어러 지음, 정현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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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소설 작가의 이름을, 그것도 외국작가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내게 있어서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스 쉬어러'라는 작가는 그 이름만으로도 읽고 싶게 만드는, 대단한 작가인 것 같다.

<13개월 13주 13일 보름달이 뜨는 밤에>라는 작품으로 처음 만난 작가인데 그 뒤에 <두근두근 체인지>, <두근두근 백화점> 등을 만나면서 정말 팬이 되었다. 어른이 봐도 재미있는 작품들이라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영국에서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어 큰 사랑을 받았다고하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형제는 용감했다> 역시 재미있다.

쌍둥이 형제가 주인공인데 5분 차이로 형이 된 '나'와 동생 클리브가 아빠의 직장인 크루즈에 몰래 타면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다 읽고 나니 엄청 궁금한 게 있다.

도대체 '나'의 이름은 뭘까? 그리고 쌍둥이는 몇 살이지?  겨우 5분 차이로 형과 동생으로 운명지어진 두 소년들이 완벽한 밀항을 했다는 사실이 놀라워서다. 단순히 어른들을 속였다는 것뿐 아니라 크루즈 내에서의 활약을 볼 때 어른 못지 않은 능력을 지닌 것 같다. 특히 쌍둥이 형인 '나'는 동생 클리브에 비하면 훨씬 똑똑하고 의젓한 것 같긴 하다. 항상 말썽을 일으키고 어리버리한 클리브가 원래 좀 모자란 것인지 동생 역할에 충실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 이란성 쌍둥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쌍둥이 형제의 모습을 상상하려니 자꾸 책 표지에 눈길이 간다. 완전 똑같다!  어쩐지 동생과 외모가 다르다는 형의 주장은 굉장히 주관적인 판단인지도 모르겠다. 형과 동생을 구분하는 기준은 동생의 돌발행동과 어리숙한 말투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것도 남들이 보기엔 약간의 성격 차이 정도?

아빠가 승무원이지만 크루즈 여행을 한 번도 한 적 없고, 가족을 초대하는 특별한 날 하루동안 견학한 것이 전부라면 나 같아도 크루즈에 타고 싶을 것 같다. 하지만 밀항까지는 조마조마 떨려서 시도하진 못했을 것이다. 왜 제목이 '형제는 용감했다'냐고 묻는다면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이해될 것이다.

호화로운 크루즈 모나리자호에 승선하는 일이 평범한 집안의 아이들에게는 꿈 같은 일이지만 잘난척대마왕 왓슨에게는 방학 때마다 가는 휴가 중 하나라는 것은 좀 속상한 일이다. 그래도 언제나 씩씩한 클리브는 왓슨 앞에서 기죽는 일은 절대 없으니까 안심이다. 아빠가 비록 선장님은 아니지만 형제들에게는 최고의 승무원이며 멋진 아빠니까. 아이들 눈에 아빠는 1등급 선실을 서빙하는 웨이터가 아니라 진짜 바다를 좋아하는 남자니까.  

돈 많은 부자들만 탈 수 있는 초호화 크루즈를 두 형제 덕분에 즐겁게 여행한 기분이다. 세상에는 잘난척대마왕 왓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넉넉한 도미닉스 부인 같은 부자도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 될 수 있으려나. 소설이라 가능한 모험일 수도 있겠지만 형제의 용기만큼은 칭찬해주고 싶다. 마지막 반전은 특별 보너스인 것 같다.

 

"그냥 멈추고 표기할 순 없단다, 얘야."  도미닉스 부인이 말했다.

"아무리 내 나이라고 해도 말이지. 계속 새로운 일을 해야 해. 모든 걸 포기하는 순간 인생은 끝나는 거란다." (2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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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까지 헤어져라 - 다시 사랑하기 위한 이별의 심리학
한기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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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사랑을 말하면 다른 누군가는 이별을 말한다. 사랑과 이별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주제인 것 같다.

이 책은 사랑 후 이별을 경험한 이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기 위한 심리학적 조언을 담고 있다. 하지만 진짜 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이러한 조언들이 도움이 될 지는 미지수다. 아프고 괴로울 때는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니까. 그러니까 이 책을 통해 미리 예방주사를 맞는 기분으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사랑할 때까지 헤어져라는 말은 사랑을 하려면 이별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 해야 이별도 사랑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여자와 남자가 어떻게 사랑에 빠져들고 사랑하면서 어떤 위기를 겪는지, 그러다 결국 이별했다면 어떻게 이별을 받아들이고 견뎌내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쭉 읽다 보면 마치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강연을 듣는 기분이다. 심리학적 관점이란 인간의 감정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 같다. 머리로는 이해되는 내용이지만 막상 내게 벌어진 상황이라면 이성적으로 대처하기는 힘들 것 같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된다. 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는가? 그렇게 파고들다보면 결국에는 어린시절 부모와의 관계까지 살펴보게 된다.

사랑을 느끼는 것은 감정이다. 하지만 사랑을 유지해가는 것은 감정만으로는 힘들다. 사랑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반대로 나라는 사람이 상대방을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 중간에 사례로 언급되는 내용들은 사랑하는 연인들의 수많은 고민들이라고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을 느끼는 건 무척 행복한 일인데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각자가 어떤 사람이냐를 스스로 알아야 풀어갈 수 있는 것 같다. 

취향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성숙함을 지녔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겉모습만 어른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성숙해야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잘 모르지만 점점 가까워지고 친밀해지면 미처 몰랐던 미성숙한 면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건 그 사람이 부모와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느냐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서 처음 맺게 되는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가족, 친구, 지인 등등 수많은 관계로 이어지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와 사랑하고 이별하는 일들이 우리에게는 인생의 전부인 것마냥 느껴질 때가 있지만 정말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라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이 순간을 살아가는 나 자신을 돌보고 사랑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라는 것. 나는 사랑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해주면 어떨까. 나 자신과의 관계를 잘해낼 수 있다면 그 어떤 사랑도,이별도 두려워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별이 아무리 아프다고 해도 다시 사랑하라고, 더 좋은 사랑을 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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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 한국사 - 모든 역사를 꿰뚫는 10가지 프레임
구완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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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거대한 강에 비유했던가.

그동안은 마치 한강을 바라보면서 한강 자체보다는 한강을 건너는 다리만 기억했던 것 같다. 단편적인 지식으로는 한국사를 제대로 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특별히 '국사를 잃어버린 사람들'과 '국사를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한다. 내 경우는 후자인데 어떤 목적없이 그냥 한국사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마음이 전부다. 학창시절처럼 시험을 위해 무조건 외우는 한국사 책이라면 내게는 필요가 없다. 그런 면에서 관통 한국사는 이제까지 봤던 책과는 다른 것 같다.

시대구분, 지배층, 피지배층, 기술과 생산력, 토지와 조세, 사회와 문화, 종교, 대외관계, 전쟁, 인물이라는10가지 프레임을 통해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을 꿰뚫는다. 각각의 프레임마다 요약정리해주는 부분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들려준다.

요즘 흔히 말하는 스토리텔링이 한국사를 이해하는 데에는 효과적인 것 같다. 프레임은 역사를 이해하는 열쇠다. 복잡하고 외워지지 않는 역사적 사실이 프레임을 하나씩 채워나가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로 바뀌는 것 같다. 처음에는 한국사를 단 한 권으로 알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다 읽고나니 왜 관통 한국사인지 알 것 같다. 세부적인 내용에 신경쓰기보다는 전체적인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새삼 역사가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이해되는 학문이었나를 생각하게 된다. 승자만을 기억하는 역사 속에서 피지배층을 통해 현재의 민주주의까지 이해할 수 있고, 토지와 조세를 통해 경제를 파악하고 대외 관계를 통해 국제 질서와 세계사 속의 한국을 볼 수 있다. 기존에 읽었던, 비록 몇 권에 불과하지만 한국사 책 중에서 전체를 통으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속시원한 책이었던 것 같다.

"역사의 물줄기는 직선으로 흐르는 법이 없다. 구불구불 흐르다, 때로는 직각으로 급하게 꺾이기도 하고, 심지어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역사의 흐름을 크게 바꾸는 사건 중에서도 으뜸은 전쟁. 각 전쟁의 성격만 이해해도 한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277p)

관통 한국사를 통해 단숨에 거대한 물줄기를 따라간 것 같다. 잊어버렸던 국사를 떠올리는 것이 남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신선하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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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걸 조로리 45 - 공포의 요괴 소풍 쾌걸 조로리 시리즈 45
하라 유타카 글.그림, 오용택 옮김 / 을파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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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즐겨보던 만화가 나중에 알고보면 일본원작인 것들이 있다. 비록 우리나라 작품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재미는 국적을 뛰어넘는 것 같다.

<쾌걸 조로리> 시리즈는 이미 일본 어린이뿐 아니라 한국 어린이까지 사로잡은 인기작품이다. TV만화와 영화로도 제작되었을 정도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시리즈다.

이 책은 시리즈 중 45권으로 공포의 요괴 소풍이라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조로리는 멋진 성을 짓고, 예쁜 아내를 얻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사건에 휘말리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하지만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이끌려 가게 된다. 그 곳에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어른 한 명을 괴롭히고 있다. 순간 참지 못하고 도와준다. 괴롭힘을 당하던 어른은 요괴학교 선생님인데 오히려 조로리에게 화를 낸다. 그 아이들은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꼬마 요괴들인데 오늘은 소풍을 가는 날이라는 것이다. 아직 어린애들이라 힘이 넘쳐서 선생님이 애를 먹고 있다면서 조로리에게 함께 소풍을 가자는 제안을 한다. 조로리는 그제서야 자신이 방금 전에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겠다던 맹세가 떠올라서 거절하려는데 갑자기 요괴 학교 선생님이 벼랑 끝에서 놀던 아이를 구하려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서 아이들을 부탁한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쾌걸 조로리와 멧돼지 쌍둥이 이시시, 노시시가 함께 떠나는 모험 이야기.

만화라고 하기에는 글밥이 많고 그냥 동화라고 하기에는 그림으로 표현된 느낌이 만화와 흡사하다. 일단 그림으로 표현된 부분이 아기자기하고 책의 겉표지와 안쪽면, 책날개까지 전혀 생각 못한 부분에도 내용이 담겨 있다. 책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왜 일본 어린이들이 독서 열풍에 빠졌는지를 알 것 같다. 글밥으로 가득찬 책이 아니라도, 교훈적인 내용이 아니라도 좋다. 일단 어린이들이 책을 펼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쾌걸 조로리는 책의 겉표지만 봐도 궁금해지는 책인 것 같다. 책상 위에 놓인 책을 본 우리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 안다. 도대체 저 책은 뭐지? 호기심을 자극해서 보고싶게 만드는 것 같다.

어른인 내가 보면서도 문득 어릴 적 즐겨보던 만화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재미있다. 자연스럽게 다음장으로 넘기다보면 어느새 마지막장까지 다 보게 되는 책이다. 작은 일이에도 웃음보가 터지는 아이들처럼 쾌걸 조로리의 이야기는 유쾌발랄하다. 책이 주는 즐거움과 웃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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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긋는 소녀 - 샤프 오브젝트
길리언 플린 지음, 문은실 옮김 / 푸른숲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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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을 칼로 긋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갑자기 따끔한 느낌이 들어서 살펴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베인 상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아주아주 작은 상처일 뿐인데 뭔가에 내 몸이 베였다는 게 굉장히 기분 나쁘다. 하물며 칼로 그어진 상처라면 상상하기조차 싫을 것 같다. 그런데 일부러 자신의 몸을 칼로 긋는다는 건 몹시 위험하고 비정상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시카고에서 네 번째 가는 신문 <데일리 포스트>의 기자 카밀 프리커. 그녀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커리 국장은 카밀에게 윈드 갭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취재하라고 보낸다. 윈드 갭은 카밀의 고향이다. 현재도 엄마와 새아버지 그리고 이부동생 엠마가 살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녀는 윈드 갭에 정말 오고 싶지가 않다. 엄마 아도라와의 만남이 껄끄럽고 불편한 이유가 뭘까. 자신을 믿고 취재를 맡긴 커리 국장때문에 떠밀리듯 윈드 갭에 온다.

살인사건의 피해자 2명은 십대 소녀들이다. 내털리와 앤. 둘다 목졸려 죽었으며 성추행이나 다른 폭행의 흔적은 전혀 없고, 단지 이를 뽑아갔다는 점이 특이하다.

카밀은 살인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형사 리처드를 알게 된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부동생 엠마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나이는 열세 살이지만 거의 성인여성 못지 않은 몸매를 지닌 조숙한 소녀 엠마와 그녀의 금발 친구들.

이 소설은 읽는 내내 뭔가 불길한 기분이 들었는데 결말을 보고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주인공 카밀은 커터(cutter, 자신의 몸을 칼같이 날카로운 물건으로 긋고 베는 사람들)였다.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기듯이 칼로 단어를 새긴다. 열세 살의 어느 여름날, 처음으로 새긴 글자는 '사악한'이다. 그 뒤로 몸 구석구석에 칼로 새겨진 단어들이 박혀 있다. 손목에는 '해로운', 왼쪽 엉덩이에는 '페티코트', 어깨 위에 '팬티', 오른쪽 발목 안쪽에 '체리', 엄지발가락 밑바닥에 '꿰매다', 왼쪽 젖가슴 바로 아래에 '아기', 몸에 새길 공간이 부족할 정도다. 심지어 발가락 사이에 '나쁜'과 '울다'를 새겨 넣을 정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긴 단어는 처음 그 짓을 시작한지 16년 후의 것이다. '사라지다' 그 단어를자신의 목덜미에 새기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것이다. 커터들을 위한 특수 병원에서 12주 동안 머물다가 퇴원한 지 고작 6개월 된 상태다. 서른 살의 카밀은 마치 세 살 어린아이처럼 연약하고 예민하다. 그런 그녀가 연쇄살인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자신의 고향에 간 것이다.

자신과는 어색하고 불편한 엄마 아도라가 이부동생 엠마에게는 헌신적인 모습을 보면서 마치 내가 카밀이 된 것처럼 과도하게 감정몰입이 되었던 것 같다. 카밀과 아도라, 엠마 그리고 죽은 여동생 메리언까지 엄마와 딸, 자매 간의 관계가 묘하게 얽혀 있다. 그리고 피해자 소녀들까지 어찌보면 전부 소녀들의 이야기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받지 못해서 불쌍하고, 어린 나이에 죽어서 불쌍한 소녀들.

세상에는 별 미치광이가 다 존재한다. 그런데 종종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걸 잊게 된다. 그들을 낳아준 부모와 같이 자란 형제자매들. 사랑스러운 아기의 얼굴을 보면서 미치광이를 떠올리긴 힘들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정상적으로 태어난 아기가 미치광이 부모 손에 키워진다는 가설이다.

뮌하우젠 증후군이나 MBP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누군가를 아프게 만드는 미치광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건 해외뉴스를 통해 접했을 것이다. 몸을 긋는 소녀의 이야기가 현실에서 벌어진다는 것이 소름끼치게 무섭다. 소설은 더이상 허구가 아닌 현실의 한 조각이 된 것이다. 읽는 내내 누가 범인인지를 찾기 보다는 오히려 제발 그 사람이 아니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들 중 하나가 몹시 더럽혀진 느낌이 든다. 아름다워야 할 그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평생 비극처럼 따라다닐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소름이 돋았던 것 같다. 비록 소설이지만 카밀이 좀더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자신의 몸이 아닌 마음에 '사랑'을 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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