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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세균과 공존해야 하는가 - 왜 항생제는 모든 현대병의 근원인가?
마틴 블레이저 지음, 서자영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병원에 간 적이 없으니까 항생제를 복용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오."이다.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의 눈에 바르는 연고부터 우리가 자주 먹는 고기, 우유, 계란을 먹을 때마다 항생제를 복용하고 있는 것이다.
1940년대 중반, 미국 제약업체가 일반 사료를 먹인 가축보다 항생제가 들어간 사료를 먹인 가축들이 더 빨리 더 크게 자란다는 것을 발견하면서부터 현재까지 가축에게 항생제를 투여하고 있다. 2011년 미국 가축 생산업자들은 가축에 사용하기 위해서만 약 13만 톤의 항생제를 구매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미국에서 팔리는 항생제의 70~80퍼센트에 달하는 양이라고 한다. 이건 미국의 경우니까 우리나라는 괜찮다고 안심해도 될까.
더 충격적인 건 유기농 사과와 배에까지 항생제를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과실수에 사용된 항생제는 생산물에 부착된 유기농 표에 적혀 있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는 모를 수밖에 없다. 생산자가 판매에 불리한 내용을 일부러 표기할 이유는 없으니까. 도대체 항생제는 이토록 광범위한 사용이 안전한 것일까.
그동안 가축부터 과일까지 모든 것을 집중 생산하는 현대농업 방식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항생제 과용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엄청나게 많은 미생물 중에서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될 헬리코박터 파이로리에 주목해보자.
예전 유산균음료 광고에 등장했던 마셜박사가 기억날 것이다. 위암과 궤양의 원인이 되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를 항생제로 박멸했을 때 벌어지는 사태가 꽤 충격적이다.
위암과 궤양을 일으키는 악성 균주로 알고 있던 헬리코박터 파이로리를 항생제로 제거했을 때 오히려 천식의 발생이 증가하고 위식도 역류질환이 발생한다고 한다. 일련의 연구 결과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보균자자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가 없는 사람들보다 천식에 걸릴 비율이 40퍼센트 적다는 것이다. 또한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보균자는 위식도 역류질환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몸에 상주하는 미생물의 역할에 대해서 몰랐던 사실들이 속속 밝혀진다.
헬리코박터 파이로리에 관한 또다른 연구를 보면 생후 첫 1년 안에 헬리코박터 파이로리를 획득하는데 그 시기에 획득한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보균자는 헬리코박터 파이로가 없는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키가 더 작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가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여겼는데 이후 연구를 보면 생후 2년 이내에 항생제 사용과 더 관련이 있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성장 촉진을 위해 가축에게 준 항생제 효과처럼 사람도 동일한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생후 첫 6개월 이내에 항생제를 처방받은 아이들은 살이 더 찐다. 왜 근래에 소아비만이 급격히 증가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제왕절개 분만법이 비만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분만방법의 문제가 아닌 항생제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 몸의 상주 미생물은 전례없는 곤경에 처해 있다. 미생물을 우리와 별개로 구분지어 병원균처럼 취급했다가 치과 진료 후 항생제 처방을 받고 목숨을 잃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점은 전염병에 원인이 되는 병원균에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이때 상주 미생물이 파괴된 사람들이 가장 취약한 위험군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의료기관이나 정부가 제정해야 하는 정책이나 제도적인 해결방안은 시일이 필요한 부분이다. 정부가 항생제 사용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지만 먼저 우리 자신부터 항생제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의 코감기에 대한 처방전을 받기 전에 가능하면 하루 더 기다려봐도 되는지 의사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아이가 아픈데 무조건 기다리면서 지켜보라는 뜻이 아니다. 심하게 아픈 경우는 즉시 항생제 치료를 해야 영구적 손상을 막고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단지 상주 미생물의 부수적 피해를 우려해서 항생제 치료를 연기하자는 것이므로 절대 아이를 위험 속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소아과 의사 및 의료진은 항생제를 처방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소아과를 가 본 부모라면 아이의 증상을 말하고 있는데 그와 동시에 처방전을 작성하는 의사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치료과정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현재 의료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저자는 소아과의사들이 아이들을 체계적으로 진단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도 전체 내과 의사들 중 소아과의사들의 수입이 가장 낮다고 한다.
항생제 남용을 줄이기 위해서 정부는 가축이나 농산물의 항생제 사용을 금지시켜야 한다. 그러나 당장 금지시킬 수 없으므로 식품 생산자가 농약, 살충제, 항생제, 호르몬 등의 검출 수치 등을 전부 표기하도록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될 것이다.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과도한 손 소독제 사용을 중단하고 미생물과 항생제의 인과관계를 잊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세균과 공존해야 잘 살 수 있다.
"...... 다른 사람들 모두가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13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