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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백작부인
레베카 존스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1월
평점 :
<피의 백작부인>은 에르제베트 바토리 백작부인에 관한 소설이다.
그녀에 대해 잘 모른다면 다음의 내용을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다.
"남자 뱀파이어의 원조가 드라큘라라면, 여자 뱀파이어의 원조는 헝가리의 에르제베트 바토리 백작부인이다. 폴란드의 왕을 사촌으로 둘 정도로 명문가인 바토리가는 그들이 소유한 막대한 재산과 토지를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근친결혼이 빈번히 이뤄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바토리가에는 유난히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많았다.
바토리는 용맹스러운 군인으로 이름이 알려진 페렌츠 나다스니 백작과 결혼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군인의 기질을 타고난 남편이 터키와 전쟁을 치르느라 집에 없는 날이 많았고 젊은 시절 바토리는 낯선 성에서 시어머니와 지내야 했다. 매사에 지나치게 엄격한 시어머니로 인해 바토리는 억눌린 채 지내면서 서서히 정신병자로 변해갔다.
1600년 남편은 전사하고, 마흔 살의 바토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때부터 그녀는 뒤틀린 욕망이 엽기적 행각으로 표출되기 시작한다. 우연히 하녀의 잘못을 탓하며 때리는 과정에서 하녀의 피가 바토리의 얼굴과 팔에 튀었고 피에 닿은 부분의 피부가 하얗고 탱탱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늙어가는 것에 지나치게 민감했던 그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젊은 여성의 피가 자신의 젊음을 되돌려 줄 거라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산악 지대인 카르파티아 산맥 언덕에 위치한 자신의 체이테 성으로 농부의 딸들을 납치하여 잔인하게 고문하여 죽이고 그 피로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바토리는 '철의 처녀','철의 새장'과 같은 고문 도구까지 제작하였다.
그러나 바토리의 살인 행각은 종국에 덜미를 잡히고 만다. 처녀들이 체이테 성에만 들어가면 살아 나오지 못한다는 소문이 인근 마을에 퍼지면서 사람들은 그 성을 악마의 성이라 여기며 가까이 가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된다. 이 소문은 당시 교구의 신부에게 전달되고, 결국 바토리의 만행은 그의 사촌 기오르기 투르소 백작의 방문으로 그 실상이 밝혀진다. 그녀가 죽인 처녀의 수에 대한 진술은 문서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50명에서부터 610명에까지 이른다. 이 일에 가담한 바토리의 하녀나 하인들은 모두 사형을 당했다. 그러나 정작 바토리는 왕족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죽음을 모면하는 대신 창과 문이 폐쇄된 방에 감금됐고, 3년 뒤에 그 방에서 죽었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 바토리에 대한 공포감이 떠돌았으며, 그녀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책 띠지에 "처녀의 피로 목욕한 여인, 바토리 - 오해로 뒤덮인 진짜 초상을 되찾다"라는 문구를 보고 굉장히 자극적인 소재의 이야기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주인공 에르제베트 바토리의 시점에서 모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마치 살인마라는 누명을 쓴 한 여인이 감옥에 갇혀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그녀가 자신의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자신의 인생을 들려주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읽는 내내 감쪽같이 속았다. 피의 백작부인으로 알려진 바토리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그대로 믿었던 것이다. 책을 다 읽은 뒤에 바토리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고 소름 끼쳤다. 내게는 그것이 가장 충격적인 반전이다.
하인들을 잔인하게 다루는 방식은 어린 시절에 봤던 아버지의 행동을 통해 습득했고, 결혼한 이후에는 남편인 페렌츠가 격려해줬기 때문에 백작 부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하인들에게 내린 처벌은 다시 언급하기 싫을 정도로 잔인해서 공포영화 수준이다. 어린 나이에 백작 부인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을 우습게 보는 하인들을 따끔하게 혼내고 다스려야 했다는 것이 그녀의 변명이다. 또한 남편 이외의 남자를 사랑하고 배신당하는 과정은 중세 시대에 재산의 일부처럼 여겨졌던 여성의 비참한 현실처럼 보였다. 그 당시의 여자들은 지참금이 많아야만 결혼할 수 있었고, 정략결혼을 통해 부와 권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남편이 죽으면 혼자 남겨진 미망인은 재산과 영지를 주변 귀족들에게 빼앗기고 수녀원에 갇히는 경우도 있어서 미망인이 된 바토리의 처지가 조금은 이해가 됐다. 하지만 바토리를 통해 본 중세 시대의 모습이 진실이라면 너무나 끔찍한 지옥 같다. 똑같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이런 일들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을 용납했던 중세 시대 자체가 공포로 다가왔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죄의식 없는 인간인 것 같다. 아들을 그리워하는 엄마라면,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인간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차라리 뱀파이어의 이야기였다면 환상의 세계로 이해할텐데 에르제베트 바토리 백작부인의 이야기는 중세 시대에 관한 세밀한 묘사 때문에 실감나는 현실로 느껴졌던 것 같다. 기묘한 세상을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