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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의 인문학 -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음, 박다솜 옮김 / 시드페이퍼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알렉산드라 호로비츠와 산책을 했다.
한 손에는 <관찰의 인문학> 책을 펼쳐 들고, 다른 손에는 형광펜을 들었다.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보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다."
도대체 동네 산책을 하면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걸까? 제대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모조리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갖고 읽었던 것 같다.
열한 번의 산책은 관찰에 관한 실험과도 같다. 그녀의 역할은 관찰자이자 기록자이다. 각각의 산책을 함께 한 이들은 그녀의 아들 오그던, 지질학자 시드니 호렌슈타인, 타이포그라퍼 폴 쇼, 일러스트레이터 마이라 칼만, 곤충 박사 찰리 아이즈먼, 야생동물 연구가 존 해디디언, 도시사회학자 프레드 켄트, 의사 베넷 로버& 물리치료사 에번 존슨, 시각장애인 알렌 고든, 음향 엔지니어 스콧 레러, 반려견 피니건이다. 겨우 두세 시간의 산책이지만 여행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책의 소제목처럼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을 알려준다. 알렉산드라 호로비츠는 그들과 함께 산책하면서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나와는 전혀 다른 누군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전문가들의 시선은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전문분야에 집중하여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일반인의 머리에서는 지진이 날 수도 있다. 지질학자 눈에는 콘크리트 도시에서도 기막히게 암석을 발견하고, 곤충 박사 눈에는 벽돌 담 위에서도 곤충의 표식을 발견한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했던 말을 알렉산드라 호로비츠가 산책을 통해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산책을 평범한 우리의 산책처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관찰을 통한 세세한 묘사를 읽다보면 글자 하나하나를 탐색하듯 집중하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모으기 위해서 형광펜을 들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마다 흔적을 남기는 작업을 했다. 가끔은 지루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런 반응조차 자연스럽다고 느꼈기 때문에 흥미로운 부분은 다시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독일 생물학자 야콥 폰 윅스퀼은 우리가 다른 동물은 물론 다른 '사람'의 시각을 상상하는 데 있어서도 성실하지 못하다고 관찰한 바 있다.
"누구나 다른 움벨트 Umwelt (시각)를 가졌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에게는 낯선 지역을 그곳에 익숙한 사람과 함께 탐험해보는 것이다. 당신에게는 길이 보이지 않겠지만 당신을 이끌어주는 사람은 헤매지 않고 길을 찾을 수 있다." (108p)
"단 하나의 진정한 여행은
낯선 땅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눈을 갖는 것,
다른 사람의 눈으로,
그것도 백 명이나 되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우주를 보는 것,
그들이 저마다 보고 있으며 그들 자신이기도 한
백 가지 우주를 보는 것이리라."
-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307p)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태어난 지 19개월 된 그녀의 아들 오그던과의 산책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다닌 적은 많지만 알렉산드라식의 산책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게 다소 충격이었다. 가끔 가던 길을 멈추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아이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했던 기억뿐이다. 그때 아이는 무엇을 보았을까. 어쩌면 그 순간의 기억은 아이의 무의식 속 어딘가에 남아있겠지만 다시는 기억해낼 수 없을 것이다. 언어로 세상을 보지 않던 순수의 시절을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알렉산드라 호로비츠의 말의 맞다. 나는 눈을 뜨고도 세상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세상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탓이다. 문득 이제는 나의 시선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았던 것까지 볼 수 있도록 세상을 향해 두 눈과 귀를 활짝 열어야겠다. 나만의 산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