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사실은 바람을 피웠습니다."

<남은 날은 전부 휴가>의 첫 문장이다.

이런, 심란한 가족 문제인가 싶어서 약간 실망했다. 유부남의 뜬금없는 불륜 고백이라니.

TV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을 상상했는데 다행히 폭풍은 지나간 상태다. 오히려 아내가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이혼을 진행했다. 그래서 살던 아파트는 팔았고 오늘은 이삿날이다. 부부는 각자 살 집을 정했고, 하나뿐인 딸은 고등학교 기숙사로 들어갈 예정이다. 가족해체의 순간, 가족이 함께 하는 마지막 시간이 이 소설의 시작이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그때 아버지 하야사카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온다.

"우리 친구 해요. 드라이브도 하고 밥도 먹고."

모르는 사람이 보낸 문자다. 딸 사키는 스팸이니 무시하라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나직이 중얼거린다. "아빠, 친구 있었으면 좋겠거든."

답장을 보낼까 망설이는 아버지를 보고, 어머니는 웃으면서 해보라고 말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분명히 누군가 우연히 보낸 문자에 답장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왜? 외로우니까, 친구가 필요하니까.

이혼한 부부의 이삿날로 시작되는 이야기에 별 기대를 안했는데 진짜 주인공은 오카다 씨다. 그가 바로 문자를 보낸 사람이다. 정말 친구가 필요해서 문자를 보낸 건 아니다. 그렇다면 왜 무작위로 아무에게나 친구 하자는 문자를 보냈냐고 묻는다면 비밀이다. 궁금하다면 직접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오카다 씨의 직업은 좀 이해가 안 된다. 교통사고 사기단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조폭 하수인이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규정지을만한 직업이 아니라서 설명이 곤란했는데 하야사카 씨가 답장을 보낸 덕분에 지금은 백수 상태다.

책을 읽다보면 종종 책이 곧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책만 읽는 편인데 아주 가끔 이외의 책을 만날 때가 있다. 나와는 다르지만 호감이 가는 친구 같다고 해야 할까. 오카다가 그렇다. <남은 날은 전부 휴가>에 나오는 사람들은 오카다와 이런저런 인연이 있다. 하야사카 씨네 가족처럼 우연히 만난 경우도 있고 일 때문에 관련된 경우도 있다. 각각 전혀 다른 상황에서 만났기 때문에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헷갈릴 수 있다.

그런데 굳이 좋다 혹은 나쁘다로 규정지을 필요가 있을까.

오카다의 말처럼 사람이 무슨 딸기 맛, 레몬 맛처럼 라벨이 붙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라벨 붙이기를 한다.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하면서, 왜 똑같은 기준을 강요하는 세상에 끌려가는 건지......

다른 사람의 사는 이야기를 보면서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된다.

오카다는 어린 시절에 비디오 대여점을 가서 사람이 고통스러워하거나 아파하는 영화를 알려달라고 한다. 이유는 남의 아픔을 알고 싶다고. 그랬더니 점원이 프랑스 영화 <작은 병정>이 무서운 고문 장면이 나온다고 겁을 주면서 추천해준다. 영화 속에서 고문을 당하던 주인공은 "바캉스를 생각했어."라고 말한다. 오카다는 이 대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때부터 오카다는 싫은 일이 생기면 바캉스를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 같다.

오카다처럼 바캉스를 꿈꾸면서 오늘을 산다면 남은 날은 전부 휴가 같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잿빛 음모
존 그리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존 그리샴의 소설은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들춰내면서도 영화처럼 잘 짜여진 스토리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법률 전문가였던 자신의 경험을 잘 녹여낸 작품들이 대부분인데, 이번 작품 <잿빛 음모> 역시 법정 스릴러물이다.

<잿빛 음모>의 주인공은 매력적이지만 워커홀릭 싱글녀 서맨사다.

뉴욕에서 손꼽히는 대형 로펌회사에서 일하는 변호사인 그녀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2008년 9월 15일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뉴욕의 대형회사들까지 대량 정리해고가 이어진다. 그녀 역시 '일시 해고'가 된다. '즉시 해고'와 다른 점은 건강보험 혜택은 유지해주는 대신, 비영리 단체에서 무급 인턴으로 일을 해야한다는 조건이다. 1년 후 복직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보장하기 힘든 상황이다.

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까지는 아니더라도 멋지게 일하는 변호사의 모습을 기대했는데 시작부터 암울하다. 갑작스런 일시 해고 통보를 받고 바로 자신의 물건을 종이상자에 챙겨 나와야 하는 서맨사의 모습이 우리나라의 IMF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매일 서류와 씨름하느라 신나게 휴가를 즐긴다거나 연애할 시간도 없었던 그녀지만 해고는 전혀 예상못한 변수다.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대기업에 다닌다는 것이 실상은 그리 멋진 인생은 아닌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 소개해준 비영리 단체에 이력서를 보내지만 그마저도 구하기 힘들고 드디어 열번째, 마운틴 법률 구조 클리닉에서 연락이 온다. 버지니아 주 브래디라는 마을에 있고, 저소득층에게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그곳은 무분별한 광산개발로 환경파괴와 산업재해로 볼 수 있는 흑폐증, 암 발생이 심각한 광산마을이다.

서맨사가 원했던 직장은 아니지만 변호사 매티와 도너번을 통해서 일에 대한 열정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뉴욕에서는 부동산과 관련된 법률서류만을 하루종일 봐야했던 그녀가 지금은 매일 고객을 만나 법률상담을 해주고 있다. 똑같은 변호사지만 전혀 다른 형태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서류더미에 파묻힌 피곤한 인생과 소박하고 단촐하지만 시끌벅적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인생 중에서 무엇이 더 좋은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만 그 양쪽을 다 경험해보지 않고서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원래 존 그리샴의 소설을 읽을 때는 사건에 몰입하는데, 이번 소설에서는 묘하게도 서맨사라는 한 사람에게 집중하게 된 것 같다. 아마도 리먼브라더스 사태라는 시간적 배경과 스물아홉이라는 그녀의 나이가 꽤 의미가 있게 다가온 것 같다.

서맨사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선 주인공이다. 이십대 초반에는 오로지 어떤 직업, 어떤 직장을 선택하느냐에 관심을 갖는다. 직업을 선택하고 일하다보면 여러가지 갈등을 겪게 되고 문득 삶의 질, 행복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물론 사람마다 시기적으로 다르겠지만 어떤 인생을 살아가든지 늘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나는 지금 행복한가'가 아닐까 싶다.

대기업 크롤 탄광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온갖 위험을 감수하는 도너먼과 그를 돕는 매티와 제프를 보면서 그녀는 선뜻 동참하지 못한다. 그 모습이 진심으로 이해가 된다. 우리는 정의를 위해 앞장설 수 있는 영웅이 아니다. 그냥 평범하게 행복을 누리면 살고 싶은 한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나만의 행복이 아닌 우리 모두의 행복을 생각할 때 세상을을 바꾸는 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탄광에서 일하면서 흑폐증에 걸리고 아프다는 이유로 보상도 없이 해고당한 버디 부부는 사건을 맡아준 서맨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우리에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당신은 아마 실감하지 못할 거요."

<잿빛 음모>의 결말은 열려있다. 여전히 진행중이다. 현실적인 결말이 마음에 든다. 앞으로 서맨사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가슴 뛰는 진짜 인생을 살 거라고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2 : 공포 편 - 검은 고양이 외, 최신 원전 완역본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2
에드거 앨런 포우 지음, 바른번역 옮김, 김성곤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드거 앨런 포 소설전집 시리즈가 새롭게 출간되었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추리소설에 대한 추억뿐 아니라 문고판 책에 대한 추억까지 되살려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한 손에 잡을 수 있는 가볍고 작은 문고판 책.

오랜만에 만난 옛친구처럼 반갑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 두 번째 책은 공포 편이다. 아마도 처음 읽었던 소설이 <검은 고양이>였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엄청 충격적인 스토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책에는 모두 1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기이하고 무서운 이야기 모음인데 읽으면서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예전에는 오싹오싹 공포감을 맛보며 읽던 소설인데 지금은 또다른 감정을 맛보게 되는 것 같다. 인간의 심리 탐구라고 해야 할까.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원초적인 공포감의 근원은 무엇일까.

정상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가 모든 이야기의 시작인 것 같다.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거의 일어날 리 없는 사건들이 등장함으로써 호기심을 자극한다. 광기로 인한 환각일 수도 있고,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신적인 현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읽을수록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에드거 앨런 포가 만들어낸 추리 스릴러라는 장르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독자들을 잡아끄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나이들수록 담력이 줄어드는 것인지, 취향이 변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동안 추리소설은 뜸했는데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만나니 신선하고 좋다. 공포영화처럼 자극적이지 않아서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이야기가 주는 공포감보다는 그런 공포를 자극하는 요소를 찾는 재미가 있다. 소름 끼치는 섬뜩함이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밝혀진 진실인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다. 뭔가를 숨기고 감추는 인물과 그것을 집요하게 알아내려는 인물 사이에서 미묘한 갈등이 벌어진다. 세상은 그 진실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뉘는 것 같다.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어느 정도 예상되는 전개가 있는데, 가장 무서운 이야기는 갈등 구조의 두 사람이 동일인일 때인 것 같다.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만큼 공포스러운 건 없는 것 같다. 스스로를 믿을 수 없을 때, 자신이 알고 있는 '나'가 누구인지 모를 때 혹은 자신이 잘 알던 누군가가 전혀 낯선 사람으로 보일 때처럼 친숙함이 낯설음으로 바뀌는 순간 공포는 찾아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이 화내는 진짜 이유
EBS 당신이 화내는 진짜 이유 제작팀 외 지음, 최해연 감수, EBS MEDIA / 토네이도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화내는 것도 습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자신이 왜 화를 내는지조차 모르면서 화내는 자신에게 화를 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화를 낼 때는 대부분 누군가 대상이 존재합니다. 누구 때문에, 어떤 일 때문에 등등.

안타까운 건 '화'로 인해서 우리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화를 잘 다스릴 수 있을까요?

이 책은 EBS 다큐프라임 ‘당신이 화내는 진짜 이유’ 제작진이 1년간 추적한 '화'의 참모습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방송을 통해 이미 본 내용이지만 책을 통해 읽으면서 차근차근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지금 내 앞에, 잔뜩 화가 난 사람이 있다. 지금 그가 나를 향해 무섭게 달려들고 있다. 이 사람을 상대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89p)

첫째, 피한다.

둘째, 맞서 싸운다.

셋째, 부드럽게 그를 맞아들여,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감싸 안으며 다른 방향으로 천천히 걷는다.

번째 방법을 쓴다면,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재차 공격할 것이다.

번째 방법을 쓰면, 그 사람의 화를 더욱 돋우게 될 것이다.

세 번째 방법을 쓸 수 있다면, 화를 풀어주는 것은 물론 그 사람을 당신의 가장 가까운 편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흔히 화가 난 사람을 타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사람을 자기자신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화'라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은 내면 아이를 만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뭔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불안하고 초조할 때에 짜증이 화로 표출되는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가 벽을 손으로 밀면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면 뭐라고 할까요?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뚜렷한 이유 없이 자주 화를 내고 있다면 스스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 속에는 아직 자라지 못한 아이가 웅크리고 있다가 떼를 쓰며 울어대는 것과 같습니다. 소리지르면서 야단칠까요, 아니면 벽은 움직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차분히 설명하며 이해시킬까요?

책 속에 제가 좋아하는 비유가 등장합니다. 장자의 빈 배 이야기입니다. 내 배와 부딪힌 배가 비어있다면 우리가 화를 낼 이유가 있을 까요?

그런데 그동안 저 역시 여러가지 이유와 핑계를 그 배에 싣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남탓'이 화를 낸, 가장 그럴듯한 이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진짜 이유를 숨긴 채, 아니 무엇인지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화나는 감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다만 그 화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마주하며 다룰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화를 다스리는 나만의 브레이크를 항상 점검해야 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1 : 미스터리 편 - 모르그가의 살인 외, 최신 원전 완역본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1
에드거 앨런 포우 지음, 바른번역 옮김, 김성곤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포영화나 추리소설을 즐겨 보던 시절이 있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은 기묘한 매력이 있다. 정말 오랜만에 그의 소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중 첫번째 책은 미스터리 편이다. <모르그가의 살인>, <마리 로제 미스터리>, <도둑맞은 편지>, <황금 벌레>, <병속의 수기>, <폭로하는 심장>, <범인은 너다>, <군중 속의 남자>, <누더기 산 이야기>, <에이러스와 차미언의 대화>까지 모두 10편의 단편을 만날 수 있다.

추리소설에 입문하기 위한 책으로 이보다 더 적절한 책은 없을 것 같다. 바로 주인공 뒤팽에 대한 소개가 <모르그가의 살인>에서 자세히 나온다. 어떻게 사건에 대한 놀라운 분석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부분에 대해서 꽤 친절한 설명이 있으니 참고하면 될 것 같다. 그의 분석은 정확한 방법을 통해 얻은 결과인데도 사람들이 보기에는 직감을 이용한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일반인들보다 뛰어난 것은 지식적인 측면이라기보다는 뛰어난 관찰력을 바탕으로 한 추리능력일 것이다. 얼마만큼 정보를 얻어내느냐는 관찰을 할 때, 무엇을 관찰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부터 시작된다. 흔한 예로 사람들의 표정 변화에 주목하면 그 사람의 생각을 추측할 수 있다.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의욕적으로 탐정 역할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탐정이 추리한 사실을 독자가 알아차릴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그토록 쉬운 추리였다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좀더 난해하고 미궁에 빠진 사건일수록 더 매력적인 법이다.

에드거 앨런 포가 1941년에 오귀스트 뒤팽을 주인공으로 한 <모르그가의 살인>을 발표했다고 하니 벌써 70여년 전의 추리소설인 것이다. 현재 추리소설을 집필한 작가들 중에 뒤팽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뒤팽이라는 인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탐정 중에서는 거의 원조, 조상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야기 자체보다는 뒤팽이라는 인물 탐구에 초점을 맞추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뒤팽은 어린아이와 같은 상상력과 전문가적인 분석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대할 때에 편견을 갖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사건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근거없는 추측이나 섣부른 판단을 피해야 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어야 진짜 범인을 밝혀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뒤팽은 국장이나 경찰보다 학생들의 추리력이 훨씬 낫다고 말한다. 뒤팽은 홀짝 게임을 잘하는 여덟 살짜리 소년이 얼마나 놀라운 분석력을 가졌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홀짝 게임은 구슬을 가지고 하는 단순한 게임으로 한 명이 구슬 몇 개를 손안에 쥐고 있으면 상대방이 그 수가 홀인지 짝인지 맞히는 것이다. 상대방 추측이 맞으면 상대방이 구슬을 따고 틀리면 구슬을 잃는 것이다. 이 소년은 학교에서 주변 아이들의 구슬을 전부 땄는데 친구들은 소년의 추리 방법을 행운이라고 여겼지만 실은 소년에게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었다. 그 원칙이란 상대방의 생각을 관찰해서 알아내는 것이다. 뒤팽이 소년에게 어떻게 상대방의 생각을 읽어서 계속 이길 수 있냐고 물었더니, 소년은 "누군가가 얼마나 현명한지, 멍청한지, 착한지, 악한지 혹은 그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의 표정을 최대한 똑같이 지어봐요. 그리고 그 표정과 어울리거나 일치한다고 여겨지는 생각이나 감정을 내 마음 속에 갖게 될 때까지 기다리죠."라고 말했단다. 이것이야말로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 수 있는 탐정의 기본원칙이 아닐까 싶다.

추리소설을 읽고나면 탐정에 대한 감탄이 결국에는 그것을 쓴 작가에게 돌아가는 것 같다. 에드거 앨런 포, 정말 놀라운 작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