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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음모
존 그리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존 그리샴의 소설은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들춰내면서도 영화처럼 잘 짜여진 스토리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법률 전문가였던 자신의 경험을 잘 녹여낸 작품들이 대부분인데, 이번 작품 <잿빛 음모> 역시 법정 스릴러물이다.
<잿빛 음모>의 주인공은 매력적이지만 워커홀릭 싱글녀 서맨사다.
뉴욕에서 손꼽히는 대형 로펌회사에서 일하는 변호사인 그녀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2008년 9월 15일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뉴욕의 대형회사들까지 대량 정리해고가 이어진다. 그녀 역시 '일시 해고'가 된다. '즉시 해고'와 다른 점은 건강보험 혜택은 유지해주는 대신, 비영리 단체에서 무급 인턴으로 일을 해야한다는 조건이다. 1년 후 복직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보장하기 힘든 상황이다.
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까지는 아니더라도 멋지게 일하는 변호사의 모습을 기대했는데 시작부터 암울하다. 갑작스런 일시 해고 통보를 받고 바로 자신의 물건을 종이상자에 챙겨 나와야 하는 서맨사의 모습이 우리나라의 IMF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매일 서류와 씨름하느라 신나게 휴가를 즐긴다거나 연애할 시간도 없었던 그녀지만 해고는 전혀 예상못한 변수다.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대기업에 다닌다는 것이 실상은 그리 멋진 인생은 아닌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 소개해준 비영리 단체에 이력서를 보내지만 그마저도 구하기 힘들고 드디어 열번째, 마운틴 법률 구조 클리닉에서 연락이 온다. 버지니아 주 브래디라는 마을에 있고, 저소득층에게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그곳은 무분별한 광산개발로 환경파괴와 산업재해로 볼 수 있는 흑폐증, 암 발생이 심각한 광산마을이다.
서맨사가 원했던 직장은 아니지만 변호사 매티와 도너번을 통해서 일에 대한 열정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뉴욕에서는 부동산과 관련된 법률서류만을 하루종일 봐야했던 그녀가 지금은 매일 고객을 만나 법률상담을 해주고 있다. 똑같은 변호사지만 전혀 다른 형태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서류더미에 파묻힌 피곤한 인생과 소박하고 단촐하지만 시끌벅적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인생 중에서 무엇이 더 좋은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만 그 양쪽을 다 경험해보지 않고서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원래 존 그리샴의 소설을 읽을 때는 사건에 몰입하는데, 이번 소설에서는 묘하게도 서맨사라는 한 사람에게 집중하게 된 것 같다. 아마도 리먼브라더스 사태라는 시간적 배경과 스물아홉이라는 그녀의 나이가 꽤 의미가 있게 다가온 것 같다.
서맨사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선 주인공이다. 이십대 초반에는 오로지 어떤 직업, 어떤 직장을 선택하느냐에 관심을 갖는다. 직업을 선택하고 일하다보면 여러가지 갈등을 겪게 되고 문득 삶의 질, 행복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물론 사람마다 시기적으로 다르겠지만 어떤 인생을 살아가든지 늘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나는 지금 행복한가'가 아닐까 싶다.
대기업 크롤 탄광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온갖 위험을 감수하는 도너먼과 그를 돕는 매티와 제프를 보면서 그녀는 선뜻 동참하지 못한다. 그 모습이 진심으로 이해가 된다. 우리는 정의를 위해 앞장설 수 있는 영웅이 아니다. 그냥 평범하게 행복을 누리면 살고 싶은 한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나만의 행복이 아닌 우리 모두의 행복을 생각할 때 세상을을 바꾸는 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탄광에서 일하면서 흑폐증에 걸리고 아프다는 이유로 보상도 없이 해고당한 버디 부부는 사건을 맡아준 서맨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우리에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당신은 아마 실감하지 못할 거요."
<잿빛 음모>의 결말은 열려있다. 여전히 진행중이다. 현실적인 결말이 마음에 든다. 앞으로 서맨사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가슴 뛰는 진짜 인생을 살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