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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시간 1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내가 원하는 건 정의야." (224p)
이 말에 반박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거예요. 하지만 누가 어떤 정의를 원하는지 알게 된다면 전적으로 동의하긴 어려울 거예요. 자유, 정의, 공정... 말이야 쉽지, 대부분 이걸 강조할수록 반대인 경우라는 게 아이러니하네요.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할까요, 그럴 리가요.
《자비의 시간》은 법정 스릴러의 대가인 존 그리샴의 장편소설이에요.
"불행한 작은 집은 ···" (6p)이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끝까지 읽기가 힘들어요. 주정뱅이 남자 스튜가 만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오더니 여자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구타하는 장면은 심장이 벌렁거리네요. 위층에서 숨죽이고 있는 아이들, 드루와 두살 어린 여동생 키이라는 서로 끌어 안은 채 어머니가 구타 당하는 소리를 들으며 공포에 떨고 있어요. 갑자기 남자가 키이라를 부르며 위층으로 올라오고, 잠겨 있는 아이들 방문을 흔들다가 잠시 뒤 조용해졌어요. 문을 나온 드루는 주방에 쓰려져 있는 엄마를 발견했고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스튜어트 코퍼가 우리 엄마를 살해했어요. 엄마가 죽었어요." (17p)라고 911에 신고했고, 겨우 네발로 기며 스튜가 누워 있는 침실로 들어갔어요. 증오심에 눈이 먼 드루는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 골아떨어진 스튜의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어요. 열여섯 살 소년 드루는 엄마의 애인인 남자를 총으로 쏴 죽였고, 죽은 줄 알았던 엄마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어요. 이 사건에서 깜짝 놀란 부분은 스튜라는 망나니 같은 남자가 경찰 신분이라는 거예요. 작은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전말은 열여섯 살의 소년이 동거하는 경찰을 죽였다는 것, 그래서 동료 경찰들과 마을사람들이 분노한다는 거예요. 아무도 드루의 변호를 맡지 않으려고 하자, 누스 판사가 개인적으로 친한 제이크 브리건스 변호사에게 임시로 맡아달라고 부탁했어요.
"판사가 억지로 당신에게 사건을 맡길 수는 없지?"
"사실은 모르겠어. 오전 내내 생각했는데 판사가 변호사를 임명하려고 했는데 변호사가 거절했던 경우가 기억나지 않더라고. 순회법원 판사는 권력이 어마어마하고, 누스 판사는 내가 거절하면 내 인생을 끔찍하게 만들 수도 있어. 솔직히 그러니까 거절하지 않는 거지. 시골 변호사는 담당 판사한테 찍히면 죽으니까."
"스몰우드 사건도 걱정되는 거고?"
"물론 그 걱정도 되지. ... 계속 누스 판사를 기분 좋게 해줘야 해."
"판사가 다른 사건 때문에 앙심을 품을 수도 있다는 거야?"
"오마르 누스는 멋지고 늙은 판사로 거의 매번 제대로 된 판결을 하지만, 까다롭게 굴 수 있어. 인간이고 실수도 하거니와 자신이 원하는 건 뭐든 얻어내는 데 익숙하지. 적어도 자기 법정에서는 그래." (81-82p)
제이크 변호사가 드루를 맡게 된 건 누스 판사의 요청 때문이지, 공명심을 발휘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매우 현실적으로 보여주네요. 그는 고민했고, 현재 진행 중인 스몰우드 사건의 승소를 위한 징검다리로 여겼을 뿐이에요. 근데 열여섯 살이라고 믿기지 않는 왜소한 체격의 드루를 보면서 마음이 흔들렸고, 드루와 키이라, 이들 남매의 엄마인 조시가 스튜에게 폭행과 학대를 당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변호를 위해 애쓰지만 상황은 녹록치가 않네요. 소름돋는 건 망나니 스튜에 대해 동료 경찰이나 마을 사람들이 쉬쉬 하면서 그를 옹호한다는 거예요. 스튜를 죽인 소년의 변호를 맡았다는 이유로 제이크에게 협박전화를 하고, 등을 돌린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했네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이 범죄자가 되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너무 지옥이잖아요. 사람들은 드루에게 왜 그랬냐고 묻지만 드루 입장이 된다면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른 범죄, 그래도 처벌은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사형은 가혹하네요. 과연 제이크는 드루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