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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일기
최민석 지음 / 해냄 / 2025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마드리드 일기》는 소설가 최민석 작가님의 책이에요.
보통 여행을 다니며 쓴 글은 '여행기' 혹은 '여행에세이'라는 제목을 붙이기 마련인데, 왜 '일기'일까요. 그건 실제로 자유롭게 떠난 여행이 아니라 토지문화재단과 스페인 문화체육부가 협정한 '교환 작가 프로그램' 일정으로 두 달간 마드리드에 머물렀기 때문이에요. 정해진 두 달은 공식적인 일정이라 스페인 측에서 제공한 숙소에서 지냈고, 그 후 보름은 혼자 여행하는 개인 일정이었으니, 저자는 낯선 타국에서의 경험을 '일기'로 기록하자고 맘 먹은 거예요. 그리하여 '소설가의 마드리드 일기'가 탄생했네요.
이 책은 '일기'답게 시간의 흐름 순으로 2022년 9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어요. 집에서 일상을 보내며 쓰는 '일기'와 살짝 다른 점은 두 가지예요. '오늘의 일기'가 아니라 하루나 이틀 지난 '그날'의 기록이라는 점, 또 하나는 독자들을 염두에 뒀다는 점. 아무래도 작가의 숙명이 아닌가 싶어요.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늘 뭔가를 써야만 하니 말이죠. 저자 왈, 여행 중에도 원고를 보내야 하는 자신을 가리켜 '노동자형 여행자'라고 했는데 적절한 호칭인 것 같아요. '여행자'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와는 영 딴판이지만 바로 그 점이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현상인 것 같아요. 위험을 무릅쓰고 떠나는 모험의 시절에는 여행이 자유, 일탈, 고행 등등 대단한 목적을 취했다면 지금은 셀렘과 즐거움을 위한 요소들이 훨씬 더 커졌고, 그러한 경험들을 타인과 자유롭게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네요. 스페인 마드리드를 간다는 건 옆 동네 마실 가는 일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마드리드 일기' 덕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마드리드와 그곳에 관한 이야기가 친근한 일상의 경험으로 느껴졌네요. 일단 재미있어요. 피식 웃음이 나는 상황들을 작가님의 필력으로 유쾌하게 풀어낸 것 같아요. 마드리드의 교통 사정이 익숙지 않아서 자전거를 구입하게 되는데, 영화였다면 멋지게 사이클을 타는 장면이 나오겠지만 현실은 헷갈리는 도로 상황과 약해진 체력 때문에 당황하다가 어깨 통증만 남았다네요. 이 자전거를 돈키호테의 애마인 '로시난테'라는 이름을 붙여주고(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송곳 같은 거북선'이라고 함) 잘 타고 다니다가, '왈라팝'으로 한국에서도 해본 적 없는 중고 거래를 성공하여 뿌듯하고 기뻤다는 저자를 보면서 이것이 여행의 묘미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낯설고 새로운 경험이 주는 설렘,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느끼기 위해 떠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여기에 웃음까지 더한다면 최고일 거예요. 어떤 경험이든지 그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 재미를 찾을 수 있다면 완전 행운인 거죠. 소소하지만 재밌는, 낯설지만 어딘가 친근한 마드리드에서의 특별한 일기였네요.
직원이 조심스레 사진을 한 장 찍자 했다.
방금 전까지 내 직업이 소설가라는 대화를 나눈 사실로 미뤄보아,
그가 기념사진을 찍고 싶어 한 걸로 추정됐으나, 나는 세속적 욕망과는 거리를 둔 작가처럼 겸손하게 답했다.
"사진이라니요. 저는 그냥 글만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합니다."
내 말에 젊은 직원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노노노노노. 마드리드에는 자전거 도둑이 많습니다. 쎄뇨르(선생).
구매한 사람을 자전거와 함께 인증샷으로 남겨야 합니다.
그래야 선생이 자전거를 도난당했을 때, 경찰이 이 사진을 보고
선생이 자전거의 원래 주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요."
큰 혼돈의 세계로 잘못 진입한 느낌이다. (19-20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