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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2007.겨울 - 통권28호
미네르바 편집부 엮음 / 연인(연인M&B)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문예지에 대한 편견을 조금 깬 느낌이다.
<미네르바>는 독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현대의 순수시들과 단편소설, 다양한 평론들이 각자의 주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문예지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머리글에서 밝혔듯이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현실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날갯짓인 것이다.
솔직히 문예지는 글 쓰는 일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소식지라고 생각했다. 분명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기 때문에 <미네르바> 제 2창간은 하나의 모험 내지 도전이 되었을 것이다.
책 표지를 크게 장식한 이윤학 시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무척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오래 전 학창 시절의 선생님이 불쑥 나를 꾸짖기 직전의 표정이랄까.
처음엔 문예지를 본다는 즐거움으로 기다리던 책이었는데 막상 받고 보니 표지가 주는 느낌 때문에 책을 살짝 밀어냈다. 책을 펼치기가 힘들었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안을 살폈다.
‘오, 이런… 나의 오해였구나.’
이윤학 시인을 본의 아니게 오해했다. 어쩌면 시에 대한 나의 오해일 수도 있다. 아니면 문학을 등한시해온 나 자신에 대한 질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정말 자기가 보고 싶은 것, 아는 만큼만 보이는가 보다. 속으로 무엇이 그리 찔렸길래 멀쩡한 사람의 표정을 불편하게 여긴 것일까.
정준영씨가 이윤학 시인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서 많이 웃었다. 그녀 역시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임에도 불구하고 대선배 격인 이윤학 시인에게 잔뜩 주눅들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솔직한 인터뷰 내용을 통해 시인을 알게 되었고 시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 시는 쓰는 게 아니라 옮기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갖고 있는 것을 통해서 대상이나 현상을 보고 일심동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 자신과 합체 정도는 돼야겠죠.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비워야 어떤 다른 것들을 채울 수가 있습니다. 대상한테 안 들키는 짝사랑을 해야……미리 목적의식을 갖고 쓰면 사물이 그대로 들어올 수 없죠…나는 하나도 안 바뀌고 내 틀 속에 대상이나 현상을 맞추려고 하기 때문에……남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죠………..
시는 어떤 관찰에서 나올거고, 관찰은 내가 갖고 있는 어떤 것을 통해서 보는 건데…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그런 끌림…그렇지만 시인이 갖고 있어야 할 어떤 덕목 중 하나가 간절함 일 거예요. 이 간절함이 빠지면 대상한테 홀리는 데 그칠 수밖에 없는…시에 쓸 수 있는 이미지는 보통 산문에서 세 개는 없앤 이미지인데…시와 산문이 구별되는 어떤 것들……”
‘아~~, 그래 시는 그런 것이구나.’
시(詩)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누구나 시를 쓸 수는 있지만 진정한 시인은 드물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겠다. 자기 감흥에 빠져 시를 읊조릴 수는 있지만 강한 끌림과 간절함이 빠진 시는 한낱 감탄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늘 시가 어렵게만 느껴졌다. 시를 쓴다는 것은 마치 하고 싶은 수천 마디의 말을 단 한 마디만 하라는 것과 같다. 머리 속을 채운 수많은 말들을 걸러내는 과정은 사금채취와 같다. 돌멩이와 모래 속에 섞인 금가루를 모으는 과정은 신중하며 인내심을 요한다. 금가루를 모아 완벽한 금괴를 만들어낸다.
시인은 말했다.
“ 나의 시를 어떻게 읽던지 나하고는 상관없습니다.”
시를 옮기는 과정을 끝낸 시인은 자신의 몫을 다했다. 시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기를 바라며 아부하지 않는다. 시는 도도하게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내가 문예지에 대하여, 이윤학 시인에 대하여 결례를 범했다. 그들은 존재한다. 그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것을 받아들이되 섣불리 단정하지 말라.
<미네르바> 호기심으로 다가간 나에게 그대는 호의를 베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