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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평점 :
작가 성석제는 타고난 이야기꾼임이 확실하다. 그렇지 않다면 책 한 권을 단숨에 읽게 만드는 매력을 설명할 길이 없다. 제목부터 묘한 매력을 풍긴다. 제목을 읽으면서 동시에 질문을 유발한다. 독자의 호기심을 잔뜩 부풀린 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 책은 소설집이다. 모두 일곱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지극히 평범한 줄거리를 지녔으면서도 지루하지 않다.
주인공 황만근은 학식 높은 교수님도 아니고 매력이 철철 넘치는 꽃미남도 아니다. 황만근이 누구길래, 뭐라고 말했길래 이것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을까?
착하다 못해 너무 순박해서 동네 사람들이 바보 취급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황만근의 훌륭한 면모를 알아본 사람은 오직 민 씨뿐이다. 그는 분명히 황만근, 황선생의 말을 들었다.
“농사꾼은 빚을 지마 안 된다 카이.” (36p)
“내가 왜 빚을 안 졌니야고. 아무도 나한테 빚 준다고 안캐. 바보라고 아무도 보증 서라는 이야기도 안 했다. 나는 내 짓고 싶은 대로 농사지민서 안 망하고 백 년을 살 끼라.”(38p)
약아빠진 사람들은 성실하고 착한 사람은 바보라고 무시한다. 그래, 바보들 눈에는 바보만 보이는 거다. 세상에 보탬 되는 사람들은 죄다 바보다.
솔직히 일곱 편 모두, 주인공이 참 변변치 못하다. 세속적인 시각으로 보면, 별로 가진 것도 없고 내세울 것 하나 없다. 그런데도 그들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는 뭘까?
매력 없는 인물에게 흥미와 관심이 쏠리게 하는 작가의 재주를 칭찬하는 수 밖에.
어쩌면 그들의 매력은 보이지 않는 은밀한 면에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는 이 책을 읽고 ‘참 찌질한 인생이다.’라고 명쾌한 해석을 했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겉보기에 찌질한 인생이지만 그러한 인생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래서 내게 이 책은 거름 같다.
책을 가지고 너무 격이 떨어지는 비유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천하제일 남가이>에서 남가이는 똥을 모아다가 비료를 만든다. 똥 냄새 풀풀 풍기는 남가이지만 그는 특별하다. 남보다 수십 배 강력한 페로몬으로 사랑스런 냄새가 똥 냄새를 능가하니 말이다. 그러나 사람을 홀리는 그의 매력보다는 그가 모은 똥이 거름이 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남들이 우습게 여기고 피하는 더러운 똥이 농사꾼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거름이 된다.
“아무리 멀리서 봐도 사람처럼 보이는 얼굴, 명백히 사람일 수 밖에 없는 얼굴, 이런 얼굴이 미남의 얼굴이야. 잘 생겼다는 건 사람답다는 걸 말하는 거지. 천하제일 미남은 천하에 짝이 없이 사람답다는 거야. 그런 사람이 흔할 것 같지. 하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찾기가 어렵다네.” (172p)
냄새 나는 입으로 자신의 비밀인 것처럼 말하는 남가이, 그가 정말 천하제일 미남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미남에 대한 정의는 동의한다. 사람다운 얼굴이 잘 생긴 것이다.
세상을 잘 산다는 건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그저 똥처럼 하찮을지라도 제 몫을 다하며 자기답게 산다면 그것이 인생 성공이지 않을까?
자, 황만근을 바보로 보는 사람은 그저 헛소리라 할 것이고 황선생으로 보는 사람은 건질만한 말씀이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