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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할레드 호세이니는 대단한 작가다. 소설을 읽는 동안 현실 속의 나는 사라지고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 느낌이 든다. 이미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으면서 가슴 한 켠이 강하게 울렸던 기억이 난다. 소설이 이토록 강한 여운을 남기는 힘은 무엇일까?
비극적인 현실이 주는 고통이 아닐까 싶다. 이상하게도 고통과 슬픔은 쉽게 전이되는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은 이제 나에게는 비극으로 각인되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어린이들이 많지만 유년기는 거의 없다.”는 말처럼 해맑고 순수한 아이들이 자라기에는 너무나 척박하고 잔인한 곳이다. 아이가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가 없다면 그 곳은 지옥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이 한 소년의 삶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 같다.
그리고 인간 내면의 상처와 치유 과정을 통해 용서의 의미를 배우게 된다.
“부당하긴 하지만 며칠 동안 일어난 일이, 때로는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이 평생을 바꿔버릴 수도 있다, 아미르.” (216p)
주인공 아미르는 1975년 겨울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때론 가장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저지른다. 인간이니까 실수하는 거라고 위로하기에는 너무나 치명적인 실수는 평생 마음의 상처로 남는다. 한 순간의 이기심 혹은 배신에 대한 대가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성장한다는 건 변화할 수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는 죄책감이란 마음의 상처를 남긴 채 모든 변화를 거부하게 되는 것 같다.
열 두 살 소년 아미르의 선택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누가 그를 탓하겠는가? 하산조차 그를 용서했는데. 진정한 용기를 지녔다면 삶이 더욱 당당했겠지만 잠시 주저하는 순간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자신할 수 없다. 비겁함이 때론 삶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위로할 때도 있으니까. 어른인 나도 겁쟁이일 때가 있으니까.
“……죄책감 때문에 선에 이르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속죄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너 자신을 용서하거라.”
죄책감은 옳지 않은 자신을 비난하는 선한 의지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선한 의지마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서른 여덟의 아미르에게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속죄의 기회가 온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그로 인해 정말 큰 상처가 생겼지만 비로소 죄책감의 굴레를 벗은 것이다.
주인공 아미르는 평범하지만 언제든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의 곁에서 든든한 힘이 되어 준 하산은 선함, 그 자체다. 아미르가 연을 날리면 곁에서 실패를 잡고 도와주는 하산이 있었다. 인생 역경에도 꿋꿋하게 살 수 있는 힘은 하산의 선량하고 우직한 마음과 같지 않을까?
<연을 쫓는 아이>는 우리에게 삶의 진실을 알려 준다.
세상살이를 연 싸움에 비유한다면 상대의 연을 끊기 위한 유리가루 묻힌 줄은 자신의 손에도 상처를 입힌다. 하늘 높이 떠 있는 연을 보며 어떤 이는 자유나 희망을 말하지만 연은 새처럼 자유롭지 않다. 실패와 연결된 줄이 끊기면 추락하고 만다.
아미르와 하산 그리고 소랍의 삶을 보면서 연줄과 같은 운명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이 결코 놓을 수 없는 연은 어쩌면, 아프가니스탄이 아닐까?
“……거짓말로 위안을 얻느니 차라리 진실에 의해 상처를 입는 것이 낫다.” (90p)
솔직히 진실에 의해 상처 입는 것은 두렵고,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은 일이다. 아미르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에게도 숨기고 싶었던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 아버지 바바, 아버지의 가장 진실한 친구였던 라힘 칸도 진실 앞에서는 나약한 존재였다. 그래도 아미르는 결국 해냈다.
하산과 너무도 대조적인 인물, 아세프는 공공의 적이라 할 수 있다. 비극적인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대표하는 인간인데, 과연 이 놈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라 할 수 있는 <용서>를 아세프는 제외하고 싶은 심정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존재에게 용서는 무의미하다.
“용서란 요란한 깨달음의 팡파르와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소지품들을 모아서 짐을 꾸린 다음
한밤중에 예고 없이 조용히 빠져나갈 때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닐까?” (538p)
아프가니스탄 하늘에 연이 날리고 아이들의 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를 통해 작은 희망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