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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축복
오가와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평범한 듯한 일상 이야기가 일곱 편의 단편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누가 주인공인지 헷갈리다가 어느새 ‘아, 이 사람이구나.’라고 알게 되는 이야기다.
콕 집어서 여류 소설가인 ‘나’라고 말하면 좋았겠지만 역시 <우연한 축복>처럼 우연히 자연스럽게 ‘나’를 알아가길 바란 것 같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에 썼다는 일기 혹은 습작을 보는 느낌이다. 대단한 작가가 된 것처럼 한껏 으쓱한 기분으로 글을 써 가는 모습이 점점 세월과 함께 생계를 위해 시계 공장에서 일하는 직공처럼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으로 겹쳐진다.
삶은 우연일까?
운명과 우연은 묘하게 비슷하지만 다른 것 같다. 둘 다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무게가 다른 것 같다. 묵직한 운명보다는 가벼운 우연이 좋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을 그저 우연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
주인공의 삶은 상식적인 기준으로 볼 때 그다지 축복받은 것 같지 않다. 그런데도 그녀의 삶들을 하나의 단편들로 엮어 <우연한 축복>이라고 이름 붙인 것을 보면 굉장히 낙천적인 면이 엿보인다. 아니면 이렇게 생각하는 나를 회의적이라고 해야 하나?
아차, 원래 남의 삶을 함부로 평가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깜박 잊었다. 내가 알고 있는 주인공은 얇은 책 한 권에 적힌 내용뿐이다.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란 뜻이다.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깨달은 것은 보여지는 것이 제일 작은 부분이란 점이다.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과 전혀 다르네.’라고 놀랄 때가 있다.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모자라고 부족하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종종 깜박 잊고 겉모습으로 평가할 때가 있다. 행복은 비교가 아닌 충족인 것을.
주인공이 왜 자신의 삶이 <우연한 축복>인지를 놓고, 물고 늘어지는 나를 한심하게 봐도 어쩔 수 없다. 이른바 속물 근성, 세상 때가 묻은 것을 어쩌겠는가?
아무리 세상 때가 묻어도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삶 자체가 축복이란 것을 말이다. 매일 감사할 일 보다 투덜댈 일이 많아도 살아 있으니까 좋다. 그러니 이쯤에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주인공의 삶과 내 삶이 다르지 않다는 점, 우리 삶이 우연한 축복이라는 점을 말이다.
이 이야기가 혹시 작가 자신의 삶이 아닐까 상상해봤는데 다 읽고 나니 결국 콕 집어 누가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란 생각이 든다.
누구든 한 사람의 인생은 한 편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자기 자신이며 특별하다는 점이다. 정말 희한하다. 주인공의 삶을 요리조리 뜯어보다가 어느새 그 삶에 빠져든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우연한 축복>처럼 삶은 때로 우연의 모습으로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준다. 편안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내게는 <삶은 축복>으로 기억될 또 한 권의 책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