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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 2 - 왕수편, 인간의 운명을 가를 무섭고도 아름다운 괴수
우에하시 나호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야수의 두 번째 권은 <왕수편>이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온갖 헷갈리던 상황이 제자리를 찾게 된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책은 두꺼워도 전혀 상관이 없다. 1권보다 2권이 조금 더 두꺼운데 결말이 가까워질수록 아쉬워지는 것을 보면, 차라리 3권으로 늘렸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 책의 매력은 판타지라는 배경으로 재미를 주면서 나름의 교훈적인 면을 지닌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린은 매우 총명하고 강인한 인물이다. 열 살 소녀에서 성숙한 여인이 되는 과정이 흡사 드라마 대장금을 떠올리게 한다. 가장 친숙하다고 할 수 있는 장금이가 판타지 세계로 간 것 같다. 굳이 주인공을 유사한 다른 인물과 연관 짓는 것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며 나만의 호감 표시다. “넌 내가 좋아하는 누구를 참 많이 닮은 것 같아.”라는 식으로.
여자 주인공 중에 가장 맘에 드는 성격이다. 진실하고 열정적인 모습은 누구라도 끌릴 것이다. 이런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은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통할 것이다.
“엄마가 무엇을 죄로 생각했는지…… 당신이 무엇을 죄로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고, 당신이 재앙을 막기 위해서 무슨 생각으로 계율을 지켜왔는지도…… 짐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죄라는 말로 인간을 묶어두는 것이 너무 싫습니다.” (347p)
“무성피리로 왕수나 투사를 경직시키는 것처럼 당신들은 죄라는 말로 인간의 마음을 경직시키고 있어요. 그런 모습이 역겨울 만큼 싫어요.” (348p)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감탄했다. 에린은 단순히 똑똑한 것이 아니라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다. 맹목적으로 계율을 따르지 않고, 진리를 위해 맞서는 진정한 야수의 면모를 지녔다. 오랜 역사가 말해주듯이 인간은 탐욕으로 인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일으키며 세상을 어지럽혔다. 무엇이 죄가 될까?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는 부분이다.
에린은 어린 새끼 왕수 리란을 돌보면서 소통하고 나중에는 조종하는 법을 알게 된다. 이것은 왕수 규범에 어긋나는 일이며 재앙을 뜻한다. 왜 그런지는 곧 밝혀진다. 왕수 규범이란 신성왕국의 시조 요제가 만든 것으로 왕수를 돌보면서 지켜야 될 사항을 정해놓은 것이다.
왕수는 절대로 인간에게 길들여지지 않는 동물로 알려져 왔고, 오로지 무성피리를 불어 제압하는 방식으로 돌봐 왔다. 왕수는 인간이 무성피리를 불면 일시적 마비가 된 것처럼 꼼짝하지 않는다. 이러한 왕수와 인간의 관계를 깬 에린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너무나 중요한 이 질문의 답은 마지막에 나온다. 어쩌면 이미 알아차린 분들도 있을 것이다.
판타지 세상은 놀랍다. 분명 야수의 형상으로 묘사되어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들면서 결국에는 현실 세계의 인간 내면을 돌아보게 만든다.
에린의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진실된 모습은 인간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모델일 것이다. 무시무시한 괴물인 왕수조차 마음을 열게 만드는 그녀는 판타지 세상뿐 아니라 현실 세계도 구원해줄 것만 같다.
이 책에서 조금 아쉬운 점은 3권이 없다는 점이다. <에린편>이 나와서 아름다운 로맨스와 모험이 나왔으면 좋겠다. 일단 왕수가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 다음 이야기 보따리가 많을 것 같다.
왕수의 이미지가 하늘을 나는 용이라서 그런지 자꾸 <테메레르>가 떠오른다. <야수>에서는 왕수를 조종하는 사람이 에린 한 사람뿐이지만 <테메레르>에서는 전투기마냥 훈련 받는 용과 조종사들이 등장한다. 아쉬운 대로 그 다음 이야기를 <테메레르>로 대신해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