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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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석영 작가는 사춘기 시절부터 스물한 살 무렵 방황하던 자신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다. 허구와 실재가 어떻게 뒤섞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 유준이 겪은 내면의 갈등과 방황은 진실되게 다가온다. 거침없이 자신의 알몸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런데 부끄러운 것은 오히려 나다. 나는 그 시절 무얼 했던가?

어른들 눈에는 당돌하고 무모한 녀석으로 보였을 준이지만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꽤 멋진 녀석이다. 정해진 길을 당당히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큰 소리 친 용기가 대단하다. 물론 그 때의 일탈이 내심 불안했겠지만 일단, 자신의 의지대로 온몸을 던진 거다. 그것이 진정한 젊음이고, 열정이 아닐까?

문득 준이와 친구들의 모습 속에서 나를 찾게 된다. 영길이와 상진이처럼 곁에서 지켜보면서 즐길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한 걸음 비켜서는 존재였을 것이다. 철부지 바보라 해도 안정된 울타리를 벗어날 자신이 없으니까. 그러나 확실한 일탈도, 안정된 궤도도 따르지 못한 채 멈춰버린 건지도 모른다. 사춘기 시절, 그토록 나를 찾고자 했지만 진정한 나를,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결국은 …… 덧없어.

거기 나오잖아. 물이 맑으면 갓끈을 빨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맑고 흐린 세상풍파를 다 받아들이는 거야.

준이는 여태까지의 대화가 못 참겠다는 듯이 툭 잘라버렸다.

넌 왜 쑥스럽게 만나기만 하면 책 읽은 얘기만 하는 거냐?

뭐가 쑥스러운데?

네가 지금 행동하고 살고 그런 거 중심으로 얘기하면 안 되니?

지금 생활이 싫으니까. (미아 243p)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살든지 사랑하지 않으면 소용 없다. 덧없다. 준이의 당당한 선택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흔들렸다고 생각한다. 삶이 고통스럽다는 미아에게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을 도구로 쓴다면 삶의 무게가 더해질 뿐이다. 그 누구도 인생의 정답은 알 수 없다. 너와 내가 다르니 인생의 정답도 다른 것이다. 준이와 미아가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은 서로의 차이를 참지 못해서다. 그 때는 어렸으니까.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있다. 사이 좋게 어울려 있는 듯 보여도 제각기 자신의 길을 돌고 있다. 아무리 가까워도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왜 똑같은 금성을 가지고 사람들은 새벽 동쪽에 나타나면 샛별이라 부르고, 저녁에 나타나면 개밥바라기라고 부르는 걸까? 누구의 삶을 개밥바라기별이라 부를 것인가?

젊음은 별처럼 눈부시다. 그 별이 어디에 있든, 남들이 뭐라 부르든 신경 쓸 것 없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제 가슴에 별 하나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별은 빛나면 된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등급을 매기고 이름 붙이는 건 별들에겐 무의미하다.

그 빛을 다할 때까지 온몸을 던져 빛내는 별, 참 멋지다.

우리도 각자 빛내야 될 삶이 있다. 삶이 힘들고 고단하다고 하여 포기하지 말라고.

진정한 나를 찾는 일이나 삶을 빛내는 일이나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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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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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혜초 스님이 썼다는 <왕오천축국전>이 김탁환 작가를 통해 신비로운 이야기가 되어 내 손 안에 있다.

대유사! 한 번 들어가면 되돌아 나오지 못한다는 사막길을, 그래도 많은 이들이 갖가지 이유로 떠났다가 무사히 귀환할 수 있는 것도 다 저 돈황 석굴에 든 이들이 자비를 바라며 올리는 기도 때문이리라.  (2 267p)

혜초 스님의 발자취를 좇는 일은 부단히 모래바람을 맞으며 걷는 느낌이었다. 실크로드라 불렸던 그 기나긴 사막길을 직접 걸어보지 않은 이가 어찌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덤벼든 경솔함을 탓할 수 밖에.

걷는다는 행위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수행이 된 것은 길 위에서 만나는 인연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구려 출신의 당나라 장수 고선지, 신라 상인 김란수, 파밀 고원을 넘어온 서역 무희 오름과 내림, 돌궐 사람 야곱, 대유사 사막에서 죽어간 이들……

인연이란 참 묘하다. 악연도 피할 수 없는 인연인 것 같다. 삶과 죽음이라는 길을 걷는 인간들은 인연의 고리 속에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얽힌 고리를 푸는 일,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이 열반의 경지가 아닐는지.

죽음의 사막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으나 기억을 잃은 혜초 스님에게 기억을 찾는 방법은 자신이 기록한 양피지를 읽는 것이다. 이 모든 여정을 제대로 따라가려면 긴 호흡이 필요하다. 검은 모래 폭풍을 헤매던 병사들처럼 사라진 기억을 찾는 일은 서두르면 낭패를 본다. 가만히 두 손을 벌린 채 공중 소리를 기다리듯,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쉽지 않다.

서역 무희 오름을 묘사한 대목을 보면 청록색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오름의 쌍둥이 여동생 내림은 영혼의 반쪽이라 할 수 있다.) 그녀와 함께 있는 고양이 피쉬의 눈동자는 더욱 특별하다. 오름은 고양이의 푸른 쪽 눈을 좋아하고, 내림은 노란 쪽 눈을 좋아한다. 이들의 존재는 신기루와 같다. 실제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는, 오름과 내림은 현실 세계에서 허상과 실상을 구분 못하는 우매한 인간들을 조롱하는 것 같다. 신비로운 그녀들의 정체를 헤아리다 보면 인간 내면의 죄악이 들끓는 기분이 든다.

그냥 단순하게 오름과 내림, 고양이와 물고기로 바라보는 것이 속 편하다. 깊이 파고들수록 모래 구덩이 속에 빠질 것만 같다.

혜초 스님이 얻은 깨달음은 혜초 스님의 몫이다. 그 길을 좇는다고 해서 내 것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억지를 부린 모양이다. 장사꾼 김란수를 탓할 일이 아니다. 속된 마음은 기억을 잃은 혜초 스님이 나약하고 비루한 사내로 보이게 만들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혜초 스님을 얕봤는지도 모른다. 대단히 훌륭한 고승을 만날 줄 알았는데 지나치게 평범한 모습에 조금 실망했는지도.

자신이 걸어간 길을 꼼꼼히 적어나간 한 여행자의 기록이 뭐가 그리 대단할까? 차라리 여행자라면 상관 없겠지만 불제자로서 양피지 기록은 집착으로 보였다.

그러나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갈 길을 갔더라면 오늘날 우리에게 사막길은 아무 의미를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혜초 스님이 만난 낯선 벗들은 잊혀졌을 것이다.

<왕오천축국전>은 프랑스인 폴 펠리오가 둔황 17국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둔황 석굴의 자비로 오늘날 빛을 본 것이리라.

실크로드, 이 책의 이끌림 대로 그 길을 걷는 날이 온다면 과연 나는 무엇을 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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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조선왕조실록 - 조선왕조실록으로 오늘을 읽는다
이남희 지음 / 다할미디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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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이름의 책이 없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이란 명칭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태백산본 실록을 간행하며 붙인 이름이다. 조선 5백 년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의 양은 실로 방대할 수 밖에 없다. 전문 연구자가 아닌 이상 조선왕조실록을 읽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일반인들을 위한 역사 대중화 사업으로 실록 국역 작업이 시작되어 26년 만인, 2005 [국역 조선왕조실록 CD-ROM]이 간행되었다. 부끄럽게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몰랐다. 이제는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조선왕조실록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역사를 배우고 알고자 하는 의욕만 있다면 말이다.

이 책은 실록 국역 작업을 했던 저자가 살아있는 역사로서 조선왕조실록을 설명해주고 있다. 역사적인 평가보다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라는 표현처럼 지난 역사가 오늘의 난관을 극복하는 해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조선의 법과 정치, 무역과 경제, 사회와 유교, 문화와 생활을 현재의 모습과 견주어 보니 역사는 더 이상 고리타분한 학문이 아니다. 어쩌면 현재의 모습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은지 놀라울 따름이다.

최근에 일본이 우리의 독도를 놓고 영토 분쟁인 듯 국제 사회의 이목을 끌고 있다. 우리는 당연히 우리 군인이 지키고 있는 우리 땅이니까 별 대응을 안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일본은 끊임없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역사 교과서 문제로 발전시키고 있다.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는 일본의 비열한 술수를 눈감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들 역시 제대로 된 역사를 알고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된다. 독도에 대한 한일 양국 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조선왕조실록의 의미는 더 커질 것이다.

역사적으로 독도는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 등으로 불렸는데 독도란 명칭이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1906년 강원도 관찰사에게 보낸 울릉도 군수 심흥택의 보고서의 본 군소속독도에서였다. 일본에서는 다케시마, 마츠시마라 했고, 서양에서는 그 섬을 발견한 선박 이름을 따라 프랑스에서는 리앙쿠르, 영국에서는 호넷이라고 했다. (209P)

엄연히 [세종실록지리지]에 우리 땅으로 기록된 독도가 지금에 와서 다케시마, 리앙쿠르로 명칭 된다는 건 굴욕이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상황은 단순히 외교 문제로 해결될 수 없는 국가 간 권력 다툼이라 볼 수 있다. 외교도 국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이니까.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 나라의 역사적 갈등은 국민 스스로 올바른 역사관을 지니고 국력을 키우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오늘을 재조명해보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교훈을 얻은 것 같다. 더불어 우리의 역사를 배운다는 건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뿐 아니라 우리의 뿌리를 찾는 근본적인 일임을 깨달았다.

문득 용비어천가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많이 열립니다. 원천이 깊은 물은 가뭄에 끊이지 아니하므로, 시내를 이루어 바다로 흘러갑니다.]

8 15일 광복절,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고 더욱 발전하는 대한민국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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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1 - 상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밀레니엄 (아르테)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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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를 유발하는 자극적인 책 광고를 곧이곧대로 믿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 책을 읽은 프랑스 독자의 소감 -  일요일 저녁에는 <밀레니엄>을 읽지 마라! 뜬 눈으로 월요일 아침을 맞고 싶지 않다면. 을 처음 봤을 때 그랬다.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밤을 새며 읽겠냐 싶어서 토요일 저녁에 읽기 시작했다. <밀레니엄>에 딱 걸려든 것이다.

스웨덴의 추리소설은 처음 읽는다.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장르문학 마니아, 스웨덴 사회당의 열혈 활동가, 독립 언론사 기자였고, 40대 후반에 <밀레니엄> 집필을 시작했다. 원래는 총 10부작으로 기획했는데, 3부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지 12일 후 심장마비로 급사했다고 한다. 무슨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닐까? (어설픈 추리소설 마니아의 추측) 32년을 함께 산 부인은 법적 혼인관계가 아니라서 엄청난 인세 유산을 전혀 못 받았다고 한다. 안타깝다. 작가 자신뿐 아니라 부인에게 이 책의 성공은 물 건너 일이 된 것이다. 마치 추리 소설의 결말 중 가장 허무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데뷔작은 작가의 삶과 연관이 많은 것 같다. 책 제목인 <밀레니엄>은 시사경제 월간지 이름이다. 남자 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월간 <밀레니엄>의 경제전문 기자이자 편집주간이다. 43세의 나이에도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주인공의 당연한 특권이므로 불만은 없다. 여자 주인공은 리스베트 살란데르로 24세이며 매우 특이한 인물이다. 반사회적인 면이 있지만 도전적이고 화끈한 성격이 맘에 든다. 어려운 순간에도 누군가 의지하기 보다는 스스로 해결한다는 점이 훌륭하다. 물론 방법적인 면은 고려해봐야겠지만. 사실 그녀의 해결방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서 정당방위로 보고 싶다.

겉보기에는 미카엘이 사건 해결을 주도하는 듯 보이지만 리스베트의 활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임무였다. 1부 제목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나쁜 놈에 관한 이야기다. 나쁜 놈에게 희생된 가엾은 여자들을 위해서 용감하게 나선 우리의 여 전사는 바로 리스베트다. 조금은 삐딱해 보이고 문제아로 여겨지던 그녀가 오히려 정상인처럼 위선을 떠는 이들의 추악한 내면을 고발한다. 미리 결말을 말할 수는 없지만 통쾌하다.

이야기의 줄거리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첫 장부터 스웨덴 지도가 펼쳐진다. 주인공이 해결해야 할 사건의 장소가 작은 점으로 표시 되어있다. 바로 헤데뷔엔 섬이다. 스웨덴 대기업 반예르 집안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바닷가를 향해 차례로 가족들의 집이 있다. 친절하게도 반예르 집안의 가계도와 헤데뷔 마을 지도,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가 적힌 빨간 종이 한 장이 책갈피로 꽂혀 있다. 초반에 읽다 보면 잠시 헷갈리는 인물들을 확인하기에 유용하다. 또 거의 그럴 일은 없지만 읽던 부분을 표시하기 위한 책갈피로 쓸 수도 있다.

사건을 의뢰한 사람은 반예르 그룹의 전직 회장 헨리크다. 자신이 무척 총애했던 손녀 하리에트가 38년 전 실종된 사건의 비밀을 밝히려고 한다. 한 두 달 전 사건도 아니고 38년이 지난 일에 매달리는 헨리크 회장의 집념으로, 세상에 묻혔을 끔찍한 진실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대기업 반예르 그룹의 전직 회장과 반예르 집안 사람들, 그리고 경제전문 기자 미카엘이 파헤치던 악덕 기업인 베네르스트룀(이름처럼 비호감이다), 그 밖에도 혐오스런 인간들이 몇몇 등장한다. 이런 인간들이 어디 스웨덴에만 있겠는가?

그들이 유독 더 혐오스러운 이유는 사회에서 가장 약한 여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점이다.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유린하는 행위는 인간임을 포기한 것이다. 문제는 추악한 범죄자들이 겉보기엔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들이 본색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흥미로운 책이라고 하면 재미를 떠올리겠지만 이 책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밤을 샐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어느 순간 나 역시 범인을 잡고 싶다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범인은 한 명이 아니다. 세상에 나쁜 놈이 어디 한 명뿐이겠는가?

나쁜 놈들을 화끈하게 처치해 주는 <밀레니엄>만의 통쾌함을 경험해보시라.

푹푹 찌는 더위가 한 순간 잊혀질 정도다.

나 역시 읽고 나니 광고 문구의 한 구절을 읊게 되는 것 같다. 그만큼 멋진 작품이다.

다시 한 번 주의 사항을 말하자면, 이 책은 일단 읽기 시작하면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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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보다 소중한 것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하연수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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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보다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그 보다 이 책의 장르는 뭘까?

 

어제 2008년 북경 올림픽 개회식이 있었다. 마침 이 책을 읽던 중이라 웃음이 났다. 책의 한 구절이 떠올라서다.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것을 꼽으라면, 올림픽 개회식은 분명히 10위 안에 들 것이다. (82p) 100% 공감한다. 그런데 그 지루한 개회식을 가족이 모여 앉아 함께 봤다. 가족 화합을 위해서.

엄청난 규모의 공연은 감탄할 만 했다. 저 많은 사람들이 이 날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라는 점에서. 전체 화면을 보여줄 때는 괜찮은데 클로즈업한 장면을 볼 때마다 땀 흘리며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중국이 자랑할 만한 세계 1위는 역시 13억 인구가 아닐까? 이런 딴 생각을 하며 개회식을 지켜보면서 슬슬 후회되기 시작했다. 각국 선수 입장이 시작된 것이다. 애국심을 발휘하여 우리 나라 순서를 기다리자니, 176번째란다. 마지막이 204번째로 중국이 입장했다. 이제껏 올림픽 개회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이 없었는데 괜히 책에서 지루하다니까 무모한 도전을 한 것 같다. 기왕 보기로 했으니 올림픽 개회식의 하이라이트 성화 점화를 기다렸다. 거의 5시간이 걸린 것 같다. 마지막 성화 점화는 중국의 체조 스타 리닝이 공중을 한참 날아올라가 했다. 높이가 아찔할 정도인데 역시 왕년의 체조선수라서 다른 것 같다. 전체 화면상 날아가는 성화 점화자가 깨알같이 보였다. 대단한 성화 점화였다.

올림픽 개막과 함께 올림픽에 관한 책을 읽으니 시기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림픽에 대한 대중매체의 반응이 열광적일수록 이 책의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든다. 작가면서 기자 신분으로 시드니 올림픽 현장에 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다른 시선이 진실되게 느껴진다.

시드니의 여러 곳을 한가롭게 구경하면서 매일 원고지 25-30매 분량의 원고를 쓰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 사실 조금 부럽기도 하다. 단순한 여행객보다 목적 의식이 있어서 좋고 지루할 틈이 없으니 말이다. 올림픽을 취재한다기 보다는 파헤친다고 할까? 직접 현장에서 보니 이런 상황이더라, 기분은 어떻고 인상적인 것은 이것이더라. 관광객과 기자의 중간쯤 입장에서 쓴 글 같다. 특이한 점은 일본의 마라톤 선수인 아리모리 유코와 이누부시 다카유키의 자전적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금메달리스트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최근 경기에서 패배한 선수들이다. 왜 그들을 취재했을까?

바로 승리보다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올림픽 시즌이 되면 모두가 다양한 스포츠에 열광한다. 메달을 얼만큼 획득하느냐가 주된 관심사다. 이 책이 올림픽 취재기가 아닌 이유가 그것이다. 메달을 딴 승리자는 이미 충분한 관심을 받고 있다. 반면에 패배한 다수의 선수들은 소외된다. 올림픽 정신을 강조하면서도 오로지 승리에 열중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  -피에르 쿠베르탱(Pierre Coubertin)

작가가 도쿄로 돌아와 올림픽 녹화중계를 보니 전혀 다르게 보였다는 것을 이해할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TV 속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거대한 자본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승리 지상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승리를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승리만이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여자 마라톤 선수 아리모리 유코는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자기만의 올바른 방식을 모색하는 멋진 선수다. 그것이 진정 올림픽다운 선수가 아닐까?

 저는 선수이기 이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엉뚱한 얘기로 들릴지도 몰라요. 선수에게 인간적인 면을 원하는 사람은 없는지도 모르죠. 사람들 눈에는 선수라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가장 중요해 보일 테니까요…….하지만 전 이제 제가 추구하는 선수의 모습에 조금씩 다가가려고 해요.(326p)

이제 올림픽 경기가 시작된다. 그 동안 이 날을 위해 땀 흘리며 노력했을 모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진정한 승리는 노력한 모두의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교장님의 훈화 말씀처럼 뻔한 이야기라고 딴 짓 하며 외면하지 말기를.

세상에는 뻔한 진리가 가장 위대하다. 누구나 안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어쨌거나 3주 동안 시드니 올림픽도 구경하고 한 권의 책도 남긴 작가가 부럽다. 어느 곳에 있든지 그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 잘은 모르지만 유쾌함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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