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랄한 라라
마광수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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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하면 <즐거운 사라>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바가 있다. 불법 포르노도 아닌 소설책이 음란문서라고 해서 법적 처벌을 받은 것이다. 그 당시(92)에 미성년자였던 관계로 그 책을 읽을 기회가 없다가 이제서야 <발랄한 라라>로 마광수 교수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참 당황스러운 책이다. 민망하다고 해야 할까?

주제는 성, 섹스다. 작가의 말을 옮기자면 성적(性的)이라기보다는 유미주의적(唯美主義的)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 경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지극히 남성적인 입장에서 꿈꾸는 성적 판타지를 고스란히 글로 묘사하고 있어서 그가 왜 사회적 지탄을 받았는지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이 책을 비난하자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솔직하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벗은 몸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어느 장소냐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은밀한 분위기는 아름다울 수 있지만 노골적이면 확 깨는 느낌.

예전에 읽었던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를 보면 역사적으로 인간의 잔인하면서도 기묘한 성욕은 존재하던 것이다. 다만 그는 자신의 욕망과 상상을 결합하여 거침없이 세상에 책을 낸 것뿐이다. 현대판 사드 백작인가? 걔 중에는 나와 같이 호기심으로 그의 소설을 읽다가 놀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공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한 것 같다. 자신의 성적 취향을 고루 갖춘 이상형의 여인이 등장하거나 아예 자신의 실명이 들어간 단편도 있다. 인조속눈썹과 야한 화장, 짧은 초미니스커트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긴 손톱이 등장한다. 또한 다양한 부위의 피어싱을 통해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표현한다. 정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충실하게 성적 판타지를 적어내는 정성이 대단하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성적 쾌락을 위해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가만 살펴보면 <심각해씨의 비극>, <그리운 그 긴 손톱의 여인>, <마광수 교수와의 사랑>를 통해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대변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는 자신의 이상형 여인을 만날 길이 없으니 문학적 상상력으로 해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욕구불만이 그만큼 큰 것 같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도 성적 욕망은 전혀 사그러들지 않는 모양이다. 한 편으론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 의식 덕분에 <즐거운 사라>에 이어 <발랄한 라라>가 탄생된 것이겠지만. 은밀한 자신의 성적 환상을 충족시켜 줄 상상 속의 그녀들, 사라, 라라 등등……

이 정도면 대충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점은 시대가 바뀌고 감시와 검열이 자유로워진 것은 알겠지만 미성년자들을 위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평범한 책인 줄 알고 아이들이 들춰봤다가는 낭패다.

미성년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들키지 않게 읽기 바란다. 그나저나 이 책을 어디에 둬야 할 지 걱정이다. 아무리 성 해방을 외쳐대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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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 그녀 이력서를 쓰다 -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는 여성 10인의 이야기
김병숙 지음 / 미래의창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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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한민국 전업주부 아줌마들의 변신은 무죄!

당당하게 내 인생을 찾기에 나이는 중요치 않다.

이 책의 주인공은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동창 모임에서 직장여성인 친구, 백희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서른아홉의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바로 이력서를 쓰게 된 것이다. 결혼과 동시에 미련 없이 그만 둔 직장을, 서른아홉이 된 지금 간절히 원하게 된 것이다. 친구 백희가 멘토 역할을 해주고 주변에 있는 10명의 여자들 이야기를 토대로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체 형식이라서 아줌마 독자들에게는 일상의 수다처럼 편안하면서도 멘토다운 조언을 충실히 하는 유익한 책이다.

대부분의 여자들, 특히 40대를 바라보는 여자들은 취업하고 싶은 마음만 앞설 뿐 행동으로 옮기지 않지. 나도 얼마 전까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난 우연히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는 돌파구를 찾았어. (113p)

그래,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그 취업걸림돌이 아니라 부딪쳐보지도 않고 못하겠다고 포기하는 거야.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시간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지. (186p)

사실 여자가 결혼한 뒤에도 계속 직장 생활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당당히 자신의 일을 하는 여성을 보면 부럽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책 속에서 멘토 역할을 해준 백희란 친구처럼 말이다. 반면 전업주부로 지낸 주인공과 같은 아줌마들은 상대적인 위축감을 느끼게 된다. 그건 전업주부로서의 자부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닌 순수하게 란 존재를 잊고 있었다는 허탈감 때문일 것이다.

서른아홉의 그녀가 이력서를 쓰는 이유는 전업주부보다 직장여성이 더 멋져 보여서가 아니다. 단순히 그런 의도로 직업을 구하는 거라면 금세 좌절하고 말 것이다. 직장여성이 전부 우아하고 멋진 일만 할 거란 기대는 대단한 착각이며 환상이니까.

그녀는 결혼과 함께 자신의 원래 꿈을 잊고 있었다. 전업주부의 삶도 보람되겠지만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그녀가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특별한 강의를 들으면서다. 빠르게 고령화 사회가 되고 있는 요즘, 우리가 150세까지 산다고 하면 지금 함께 사는 남편과는 100년을 더 넘게 살아야 된다. 주부로서의 역할도 어느 시기가 되면 더 할 일이 없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뒤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본격적으로 나만의 직업을 찾는 과정은 빠를수록 좋다. 아니,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흔히 듣던 말이지만 진짜 옳은 말이다.) 서른아홉 아줌마가 이제서야 자신에게 알맞은 직업을 찾았다고 말할 때, 곁에서 남편들은 격려하며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왜냐하면 남자들 역시 평생 직장이란 없으니까 안심하긴 이르다. 어쩌면 마흔아홉 그가 이력서를 쓰게 될 지도 모르니까. 남편들을 위해서는 <또 다른 40년을 준비하는 40대 인생경영>이란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세상을 향해 자신 있게 소리쳐본다.

나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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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꿈이었을까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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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님의 첫 연애소설이라고 해서 무척 기대했다. 이 말은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는 것이지, 실망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적어도 내가 기대하는 연애소설은 달콤해야 한다. 왜냐하면 너무 현실과 다를 바가 없다면 재미가 없으니까. 현실은 굳이 소설이 아니라도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달콤한 이야기만을 원한다고 나의 유치함을 탓해도 어쩔 수 없다. 어쩌면 더 나이가 들고 늙어도 나의 바람은 여전할테니까.

'그것은 꿈이었을까?' -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잠시 제목을 잊고 책을 읽다보니 온통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린다.

준과 진. 의대생인 두 남학생은 친구들에게 '하품하는 쌍둥이'라고 불린다. 항상 붙어다니면서 하품을 동시에 한다나?

진이 좋아하는 비틀스의 노래마다 하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비틀스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잠시 난감했다. 무슨 연관이 있나 싶어서. 그러나 마지막 작가의 말을 보니 전혀 연관이 없다고 한다. 그저 그 이야기를 쓸 때 비틀스 음악을 들었다고 한다.

왠지 이 소설은 비틀스 음악을 들으면서 읽어야 그 느낌이 제대로 사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책 첫 페이지에 <주의 사항 : 비틀스 음악을 들으면서 읽지 않으면 내용이 헷갈릴 수 있음.>이라고 적어줬어야 된다.

우리 집에는 비틀스 음악이 없기에 그냥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왜 이 책이 연애소설일까? 난 모르겠다. (그러나 작품해설을 읽고 싶지는 않다. 느낌까지 설득당하기 싫어서.)

분명 여자와 남자가 나오긴 하는데 서로가 사랑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냉소적이면서 애잔한 느낌이 공존한다.

준의 꿈에 나오는 여자 마리아는 슬픔의 상징 같다. 이들 주인공은 온통 슬픔으로 가득 차 있어서 사랑이 들어갈 틈이 없는 것 같다. 처음에는 참 희한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씩 그들을 알 것도 같다.

솔직히 준의 모습은 보는 사람까지 나른하게 만든다. 특별한 열정이나 열의가 없는 사람을 보면 괜히 덩달아 힘이 빠진다. 세상 사는 일이 귀찮아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그가 꿈에서는 전혀 다르다. 사랑하는 연인을 향한 간절함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것이 불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내게는 준과 진, 모두가 꿈 같으니까.

뿌연 안개 속의 길을 걸은 느낌이다. 어디까지 왔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른 채 길 위에 서 있다.

아마도 그들이 말하는 슬픔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 것 같다. 내게는 그런 깊은 슬픔이 없으니까.

꿈이라고 해서 막연히 즐겁고 행복한 꿈만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연애소설이 가볍고 유쾌하기만 한 것도 아니겠지.

깊은 슬픔을 간직한 사람은 어떤 사랑을 할까?

작가가 말하는 연애소설이란 결국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닐까?

차디찬 슬픔의 여운.

현실의 슬픔을 외면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꿈에서조차 현실을 벗어나기 힘드니까.

한바탕 꿈 속을 헤매다 보니 내 모습이 보인다.

당신은 어떤 사랑을 꿈 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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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 바다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스티븐 캘러핸 지음, 남문희 옮김 / 황금부엉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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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 표류 76일째, 극적으로 구조된 한 남자의 실화다. 이 아찔한 모험은 16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까지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망망대해 구명선에 의지하여 오로지 살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은 흡사 우리 인생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가 경험한 극도의 굶주림과 갈증은 최악의 상황이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 홀로 살아남는다면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바다에 떠다니는 것은 죄다 일종의 섬이다. (125p)

누군가에는 실질적인 경험이,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지극히 철학적인 명제로 다가오는 것 같다. 난파당한 뒤 작은 구명선을 의지한 채 구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절망감과 분노로 삶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그는 최대한의 이성을 끌어모아 중요한 진실을 깨닫는다. 넓은 바다 위에서 작은 구명선을 배들이 발견하기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들이 왜 자길 발견하지 못했냐고 원망한들 소용없는 일이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 너는 최선을 다할 수 있어.

이렇게 중얼거리며 좌절감을 달랬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를 구조하기 위해 타인들에게

의지할 수는 없다. 나 스스로 나를 구조해야만 한다. (136p)

그는 바다의 자유라는 유혹에 이끌려 감히 바다를 향해 나섰지만 바다는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바다는 인간적인 감정과는 무관하게 수많은 생물들을 포용하면서도 때론 거칠게 내몰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직접 제작한 나폴레옹 솔로 호가 험난한 대서양을 건너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오랜 기간 준비하고 노력했으니까.

바다를 그토록 사랑한 그였지만 표류하면서는 왜 하필 나야? 혹은 카나리아 제도를 떠나지 않았다면……’이라는 부질없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와 벗어나고픈 충동은 그에게는 삶의 투쟁이면서 고행하는 자의 번뇌와도 같다.

인간의 필요와 욕구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생애 처음으로 절감했다.

……궁핍한 생활은 참으로 기묘하고도 소중한 풍요를 내게 선물했다. (171p)

인간의 본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은 풍요로울 때는 결코 만족을 모른다. 그러다가 모든 것을 빼앗긴 뒤에야 지금 가진 작은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다. 이 소중한 삶의 지혜를 영원히 간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깨달음도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다. 그의 표류기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는 것은 그의 선명한 깨달음의 순간을 되살리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바다에 비유하지만 실제로 바다를 표류하면서 인생의 혹독한 시험을 통과한 스티븐 캘러핸처럼 교훈을 주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인생은 홀로서기다. 끊임없이 살기 위해 몸부림 치며 위대한 자연과 신 앞에 겸손함을 배운다. 우리가 스스로를 살려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최선을 다하며 견디는 것이다.

비록 운명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 인간의 몫일지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다가 가르쳐 준 진실이 아닐까?

또한 그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의 부모님과 형은 포기하지 않고 구조 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다들 살아남기 힘들다고 포기해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가족이 있다는 건 인생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삶은 모순투성이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 목적지를 향해 쾌속 전진할 수 있어 기쁜 반면, 몸이 젖고 추워서 오들오들 떨어야 하고 난파의 두려움에 시달려야 한다. 바람이 잔잔해지면 몸이 마르고 상처가 아물며 물고기도 더 쉽게 잡히지만, 표류 기간이 연장되고 도중에 상어를 만날 위험도 커진다…… 나쁜가 아니면 더 나쁜가, 불편한가 아니면 좀 더 불편한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1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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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회 추억
신영복 지음, 조병은 영역, 김세현 그림 / 돌베개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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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님과 청구회는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청구회는 무슨 단체 이름일까?

막연히 이름만을 보고 뜻을 같이 하던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추측했다. 실제로 중앙정보부에서 심문 받을 때, 청구회의 정체와 회원의 명단을 대라는 추궁을 당했다고 한다.

 

청구회 노래

 

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처럼

우리는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

어깨동무 동무야 젊은 용사들아

동트는 새 아침 태양보다 빛나게

나가자 힘차게 청구용사들.

 

밟아도 솟아나는 보리 싹처럼

우리는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

배우며 일하는 젊은 용사들아

동트는 새 아침 태양보다 빛나게

나가자 힘차게 청구용사들.

 

이 노래 가사 속에 불순한 의도가 느껴지는가?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존재인가 보다.

신영복님을 알게 된 것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을 읽으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이 왜 감옥에 가게 되었는지는 깊이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치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20년 간의 옥살이를 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다.

이제 와서 ?라는 물음은 부질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은 알고 있을 진실 말이다.

이 책은 1966년 이른 봄날의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청구회의 정체는 영화 속 기막힌 반전처럼 드러난다. 아니, 반전이라고 느낀 것이 괜히 멋쩍은 기분이 든다. 색안경 낀 사람 중 하나가 된 듯하다. 빨갱이로 낙인 찍힌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온통 빨갛게 보이는 것처럼.

문화동에 사는 여섯 명의 꼬마들, 그 아이들은 자칭 독수리 용사들이다. 귀엽게 느껴지는 독수리 용사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살벌한 용사로 느껴질 수도 있다니 착잡한 기분이 든다. 이 모든 것이 분단된 조국을 가진 우리만의 비극인지도 모른다.

<청구회 추억>이 다른 어떤 이의 추억이었다면 흐믓한 미소를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여섯 명의 꼬마들을 떠올리면 유쾌하고 기특하니까. 각자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사는 그 아이들은 정말 착한 아이들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다.

이 세상이 청구용사들을 바로 보지 못하는데 무엇을 더 기대하겠는가?

청구회 일원이던 한 명의 어른은 이 모든 추억을 감옥 마룻바닥에 엎드려 기록하였다. 청구회 어린이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난 그 부분이 궁금하다.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되었지만 그들 나름의 믿음으로 지켜낸 청구회였는데, 그 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중단되고 말았다는 것이 왠지 아쉽기만 하다. 가난한 시절의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 주었던 사람은 감옥에 갇혀 그 아이들을 떠올리며 희망을 찾은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희망이 되었건, 1968년 청구회는 사라졌다.

그 동안 잊혀졌던 청구회가 아련한 추억에서 이제는 한 권의 책으로 재탄생 되었다.

그들의 추억 중에서 특히 서오릉에서 아이들이 준 진달래 한 묶음이 퍽 인상적이다. 수줍게 꽃을 건네는 아이들의 순수함은 그 자체만으로도 진실되고 거룩한 상징이다.

또한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이 주는 느낌처럼 화사한 봄날이 문득 애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출간 20주년을 맞는 올해, <청구회 추억>은 영어로 동시에 번역된 글이 함께 실려 있다. 따뜻한 그림과 글을 우리뿐 아니라 외국인들까지 읽을 수 있도록 한 점은 멋진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은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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