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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월 13주 13일 보름달이 뜨는 밤에 ㅣ 독깨비 (책콩 어린이) 1
알렉스 쉬어러 지음, 원지인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깜빡 속은 느낌이다. 공포 영화 <13일의 금요일>을 떠오르게 만드는 묘한 제목 때문이다.
단순히 공포물을 상상했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이 책이 주는 섬뜩함은 피 튀기는 공포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원초적인 공포가 아니라 슬프면서 무섭다.
늙은 마녀가 어린 소녀의 몸을 빼앗는다는 흔하디 흔한 스토리가 왜 나를 슬프고도 무섭게 하는 것일까? 그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마녀가 어디 있어?’라고 말하며 콧방귀 뀌는 어른들에게 진짜 마녀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동화 속에서 지팡이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두꺼비, 지렁이, 이상한 약초로 마법의 약을 만드는 마녀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분명히 여기에도 그런 마녀가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늙고 힘없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틀니를 낀 할머니가 마녀라니, 왠지 불쌍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래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인자한 할머니가 아니라 사악한 마녀다.
“자, 칼리, 이야기를 계속하기 전에 한 가지 말해 둘 게 있어. 너에게 꼭 경고해 주어야 할 일이야. 그건 바로 사악함이 방식이야. 사악함이나 죄악이 언제나 무시무시하고 추한 얼굴과 함께 오지는 않아. 때로는 친절해 보이는 사람들이 가장 사악하기도 해. 사악함은 사람들이 어떻게 보이고, 또 무엇을 말하는가에 있는 게 아니야. 선과 악은 사람들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거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을 하는가야. 듣기 좋은 말과 약속과 예쁜 얼굴이 좋긴 하겠지만, 그 어떤 것도 어떤 일을 하느냐 만큼 중요하진 않아.” (78p)
이 못된 마녀가 순진한 소녀들을 유혹하여 자신의 늙은 몸과 바꿔 치기를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순진하고 어린 소녀는 순식간에 자신의 젊음을 빼앗기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무도 할머니의 영혼이 소녀라는 것을 모른다. 소녀의 부모조차도.
할머니의 영혼이 사악한 마녀인지, 순진한 소녀인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 혼자 생활하기 힘들 정도로 약해진 할머니가 갈 곳은 양로원이다. 괜히 길거리를 다니면 사람들에게 어설픈 동정이나 핀잔을 듣기 일쑤다.
사람들에게 소외되어 양로원에서 지내는 노인들을 생각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젊은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길 것이다. 정말 그럴까?
아무도 세월을 피해갈 수는 없다. 젊을 때는 자신의 젊음이 영원할 거라고 착각한다. 그러다가 문득 젊음이 사라지면 알게 된다. 내 마음은 여전히 젊지만 세상은 나를 쓸모 없는 노인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열 두 살 소녀가 순식간에 아흔 살이 다 된 할머니가 된다는 건 너무나 슬프고 무서운 일이다. 세상에 마녀는 존재한다. 세월이라는 모습으로 다가와 어느 순간 우리의 젊음을 빼앗아간다. 때로는 선량한 모습으로 다가와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13개월 13주 13일 보름달이 뜨는 밤은 바로 오늘이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한 번의 기회뿐이다.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지혜들을 무시무시한 마녀 이야기로 들려주는 작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유익한 책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분명 상상하면 무서워지는 이야기다.
“메르디스, 넌 이 세상에서 그 무엇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돼. 그 무엇도 영원히 그대로일 거라고 기대하지 마. 무엇이든 다 변할 수 있어. …… 행운이란 밀물과 썰물처럼 바뀔 수 있는 거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좋은 쪽으로 흘러가기를 바라고, 바로 지금 즐길 수 있는 것을 즐기는 일뿐이야. 현재를 위해 살지 말고, 현재를 살아.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현재뿐이야.” (49-5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