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안의 특별한 악마 - PASSION
히메노 가오루코 지음, 양윤옥 옮김 / 아우름(Aurum)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 나는 탐색을 즐기는 편이다.
원래 영화 상영 전 예고편이 더 재미있듯이 책도 비슷한 면이 있다. 도대체 이 책은 뭘 담고 있을까를 짐작하면서 상상 놀이를 하는 것이다. 물론 너무 길면 안 된다. 아예 못 보는 수가 있으니까.
이 책은 일단 제목이 맘에 든다.
내 안의 특별한 악마 – 원래 제목은 수난(受難)이고, Passion은 열정이라는 뜻도 있지만 ‘십자가 위의 예수의 수난, 병고’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뭔가 제목만으로도 느낌이 오는 책이다. 여자들은 ‘나쁜 남자’에 대한 환상이 있다더니 ‘특별한 악마’가 자꾸 끌린다.
그 다음은 책 표지다. 단순 명쾌한 그림이다. 앞면은 흰색 바탕에 여주인공의 옆모습이 그려져 있고 뒷면은 까맣다. 그러나 겉 표지를 살짝 벗겨내면 알록달록 예쁜 꽃들이 만발하다.
비밀의 화원도 아니건만 괜히 혼자서 즐거워진다.
여기서 잠깐, 책 소개 글에 대해 반박하고 싶다.
‘……두 사람(?)의 상식을 뒤엎는 초과격& 쇼킹 대화로 1페이지에 3번은 반드시 웃게 된다!’라고 쓰여 있다.
앞서 탐색을 너무 즐긴 탓일까, 아니면 상상력의 부재일까?
난 1페이지에서 3번 웃은 것이 아니라 3번을 다시 읽었다. 충격으로 입을 쩍 벌린 상태까지는 아니지만 순간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이게 뭐야?’
그러나 결국은 허탈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작가의 놀라운 표현력에 감탄하면서.
번역하신 분도 당황했던 그 단어를 차마 여기에 올리고 싶지 않기에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확인하시길. 성적으로 적나라한 표현을 거리낌없이 자연스럽게 하는데도 야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이 책의 여주인공은 프란체스코란 별명으로 불린다. 엽기적인 줄거리로 볼 때 드라마 <안녕 프란체스카>가 떠오르지만 작가는 순수하게 가톨릭성인 프란체스코의 이미지를 빌려온 것이다. 오직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자연 속에서 검소하게 살았던 아씨시의 성인처럼 그녀는 착한 여자다. 어린 시절 수도원에서 자라긴 했지만 순결서약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검소하고 성실하게 살다 보니 정절이 ‘지켜져 버린’ 경우다. 그녀는 성적인 느낌을 말려버리는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다. 즉 여자로서의 매력보다는 인간다움이 도드라져서 어떤 성적인 표현도 맹물로 만든다.
이토록 순결한 그녀에게 어느 날 불쑥 찾아온 불청객이 있었으니, 바로 고가 씨다.
낯선 고가 씨와의 동거, 그녀 안의 특별한 악마가 등장한 것이다.
둘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혹시 그녀가 너무 외로운 나머지 미친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본 사람은 이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톰 행크스는 무인도에서 외로움을 이겨내려고 공에다 얼굴을 그려놓고 진짜 사람인양 대한다. 이름이 ‘윌슨’이었던가? 나중에 ‘윌슨’이 파도에 떠밀려가자 얼마나 슬퍼하던지 보는 사람까지 속상할 정도였다.
외로움이 사무칠 때, 누군가 함께 있어주는 그 존재야말로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느끼지 않을까?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무인도에 고립된 것처럼 마음을 닫고 사는지도 모른다. 왜 나는 사랑 받지 못하는 외로운 존재일까를 한탄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면 된다. 나는 누구에게 사랑을 준 기억이 있는가 말이다.
어디선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다 못써~ 못써~ 몹쓸 사람이야.’라고 고가 씨가 말할 것만 같다.
그러나 고가 씨가 그렇게 놀려대던 프란체스코는 절대 몹쓸 여자가 아니다. 사랑스러운 그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