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독종들 ㅣ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3
한 둥 지음, 김택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독하다. 독종이라 불리던 녀석들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표지를 장식한 세 친구는 분명 장짜오, 주훙쥔, 딩샤오하이일 것이다.
내게 중국이란 그저 낯선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독한 녀석들 덕분에 강렬한 인상이 남는다. 타고나길 고약스런 놈들이었다면 아예 거들떠보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독종으로 만든 것일까? 그리고 진정한 독종은 누구인가?
이 책은 1975년부터 2005년까지 한 소년의 성장과 함께 중국 현대사를 보여준다.
이야기의 시작은 열 네 살 소년 장짜오가 시골 궁수이 현중학교로 전학 오면서부터다. 처음 장면은 마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는 듯하다. 마을 최고 권력자의 아들이자 독종으로 소문난 웨이둥의 옆자리에 앉게 된 장짜오는 얼결에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감히 웨이둥에게 반항하다니, 절대 용감해서가 아니다. 그는 어떤 상황인지 잘 몰랐던 것뿐이다. 하지만 웨이둥의 유일한 적수이자 진정한 1인자 주훙쥔에게는 배짱 두둑한 녀석으로 인정 받는다. 그 일을 계기로 주훙쥔의 단짝 친구가 된다.
초반은 웨이둥의 만행이 얼마나 지능적이고 비열한지를 보여준다. 괴상한 별명으로 놀리기, 방귀 잡기, 똥침 놓기 등 하는 짓마다 밉상이다. 부모의 권력이 곧 자식까지 이어져 선생님들도 웨이둥을 어쩌지 못한다. 학교에 나오는 유일한 목적이 남들 괴롭히고 즐기기 위한 것 같다. 이 녀석은 독종이 아니라 몹쓸 녀석이다.
반면에 주훙쥔은 의리를 아는 속 깊은 독종이다. 그가 독종이라 불리는 이유는 싸움을 잘해서라기 보다는 두려움을 모르는 도전적인 성격 때문이다. 장짜오가 그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운이었지만 표면적으론 배짱 덕분이다. 누구 앞에 나서거나 주목을 끄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순수한 의리 파라고 할 수 있다. 그를 보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세상과 타협할 줄 모르는 우직한 그의 삶을 예견하는 듯하다.
장짜오가 전학 온 그날 알게 된 친구는 주훙쥔 말고 한 명이 더 있다.
바로 딩샤오하이다. 언제나 웃고 있는 이 친구는 귀여운 장난꾸러기다. 웨이둥의 장난이 악질이라면 딩샤오하이의 장난은 모두를 즐겁게 만드는 애교 정도다. 워낙 가난해서 고생을 엄청나게 하면서도 늘 얼굴은 밝게 웃고 있으니, 그야말로 진정한 독종이 아닐까 싶다. 그의 삶은 유별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 묵묵히 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중국 현대사를 이루는 바탕이란 생각이 든다. 역사의 큰 흐름 속에 휩쓸려 방황하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대중의 모습이기에 가장 공감할 만한 인물이다.
뚱뚱한 체격에 연약한 심성을 지닌 왕웨이, 싸움꾼 진뱌오화, 미술 선생님 런간쯔 등 궁수이 마을 사람들의 삶은 다양한 중국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인공 ‘나’ 장짜오가 없었더라면 궁수이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오랜 사진첩을 들추는 일도, 옛 추억을 나눌 일도 적어지는 요즘이다. 한 개인의 추억을 더듬는 일은 마치 그 시대의 역사를 되짚는 일과 맞물려진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소년 장짜오는 우여곡절 끝에 직업화가가 되어 2005년 현재를 살아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중년의 어른이 된 장짜오는 딩쌰오하이를 만난 뒤 생각한다.
‘그런데 무슨 그림을 그려야 하나? 아직은 잘 모르겠다.’ (457p)
이 소설을 통해 중국 현대사를 알고자 하는 거창한 목적은 없다. 그저 물 흐르듯 흘러가는 세월을 따르면 된다. 한 소년의 성장 과정은 주변의 다양한 인생을 보여준다. 배경만 다를 뿐 중국도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한 것 같다.
작가 한둥은 중국 문단에서는 소외된 인물이라고 한다. 젊고 급진적인 작가들이 기존의 중진 문학계에 반발하여 철저한 단절을 선언했고 이런 연유로 그 동안 우리에게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지금이라도 만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런 작가였기에 <독종들>이란 작품이 탄생한 것이 아닐까?
뭔가 억지로 끼어 맞춘 듯한 억지스러움이 없어서 좋다. 질박하면서도 담백한 느낌의 <독종들>을 읽으면서 독한 매력 속에 빠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