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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
애덤 필립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책과 사람의 공통점은?
첫 인상이 중요하다. (어떤 내용의 책인지 잘 모를 경우, 책 제목과 표지가 주는 이미지는 독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요인이 된다.)
겉만 보고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왜소한 체격, 즉 얇은 책이라고 해서 만만하게 봤다가는 두고두고 후회한다.)
서로 간에 궁합이 있다. (제 눈에 안경, 콩깍지 씌웠네 등의 말처럼 자신과 잘 맞는 책이 있는가 하면 영 정이 안가는 책도 있다.)
서론이 너무 길었나 보다. 이 책은 어떤 책인가?
<멀쩡함과 광기>라는 두 단어가 주는 강렬함에 끌렸다. 현대인들이 두려워하면서도 궁금해 하는 광기와 함께 멀쩡함이라는 모범적인 주제가 함께 한다. 거기다가 ‘보고되지 않은’ 이라는 제목에 큰 비중을 둔 것이, 이 책에 대한 첫 인상이다. 흥미로운 주제였고 책의 두께 또한 얇은 편이라 부담 없이 만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곧 나만의 착각임을 깨달았다. 책의 순수한 의도에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들려주는 이야기는 쉽지 않았다. 이야기 자체가 어렵다기 보다는 표현의 혼란스러움이라고 해야 할까?
저자 애덤 필립스는 정신분석가라고 한다. 전문가답게 대중을 위해 멀쩡함과 광기의 개념을 설명한다. 프롤로그가 꽤 길다. <멀쩡함을 정의하기 위한 메모>라고 하면서 정신적 멀쩡함이라는 개념이 어렵고 혼란스러움을 미리 알려준다. 그러나 이미 예고했다고 해서 더 쉬워진다거나 혼란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960~1970년대 정신의학 분야에서 정신병의 본질 혹은 광기의 정의만큼이나 광기에 대한현대적인 공포가 더 중요한 의미를 띠었다고 한다. 반면에 정신의학 반대 운동가들은 광기를 다르게 해석한다. 그들에게 광기는 끔찍한 삶에 대한 진정한 반응이며 오히려 멀쩡함은 비인간적이며 빈곤한 정신을 뜻한다. 이러한 논쟁은 멀쩡함과 광기를 넘어선 ‘인간성 회복’을 위한 운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R.D 레잉이 말한 ‘오늘날의 멀쩡함’은 세뇌와 비슷한 개념이다. 레잉이 권하는 ‘진정한 멀쩡함’은 개성을 의미한다. 본연의 모습, 개인적인 비전을 깨닫게 만든다. 레잉의 주장이 개념의 혼란을 주기는 하지만 바람직한 멀쩡함을 옹호한 것으로 본다.
정말 놀랍게도 멀쩡함을 설명하면 할수록 머리 속이 혼란스러워진다.
대중들이 정신의학의 역사를 알고 있을 거란 전제 하에 설명한 것이라면 지나친 기대가 아니었나 싶다. 내게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같은 힘든 과정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핵심은 이러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만진 ‘멀쩡함’이란 코끼리는 이렇다.)
불안정한 현대 사회에 만연된 광기에 현혹되지 말고 과감하게 멀쩡함을 쟁취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멀쩡함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그 동안 멀쩡함을 광기의 대안으로 여겼던 것은 멀쩡함에 대한 굴욕이다.
이 책은 멀쩡함의 이름으로 당당히 우리의 삶을 위해, 우리 자신이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대신 저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옳다는 생각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 모든 사람이 겉으로 드러난 모습보다 훨씬 더 혼란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멀쩡한 행동이 될 것이다.” (270p)
현대 정신의학의 대표적인 질병 세 가지 – 어린이의 자폐증, 정신분열증, 우울증-가 우리를 힘들게 할지라도 진정한 멀쩡함을 알고 있다면 희망은 있다.
프로이트는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동물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다른 모든 생물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욕구의 지속성이 자명하게 나타난다는 점도 이상하다. 욕구에 의심을 품는 것은 일종의 광기일 것이다. (223p)
진정한 멀쩡함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 그리고 자기답게 사는 것이 아닐까?
아, 정말 어렵다. 콕 찍어 “A는 B다.”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A= 멀쩡함, B= 우리 자신
마지막으로 번역하신 김승욱님의 노고에 백분의 일 정도 공감한다. 아무리 힘들다 해도 독자보다 번역하신 분이 더 힘드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