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악녀
페이 웰던 지음, 김석희 옮김 / 쿠오레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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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바람을 피웠다. 솔직함을 자랑으로 여기는 남편은 당당하게 그 사실을 말한다. 그 여자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나를 버리진 않을 거라고. 거짓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린다. 속으로 그들을 증오한다.

, 여기까지 볼 때 누가 악녀인가?

엄연히 아내가 있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여자인가, 아니면 그들을 증오하는 여자인가?

이 소설의 는 루시다. 남편에게 배신을 당한 여자면서 두 아이의 엄마다. 그녀는 결국 바람난 남편에 의해서 이혼을 당한다. 그녀는 모두 자신의 외모 탓이라고 생각한다.

보는 내내 참 답답하고 불편했다.

루시가 증오하는 대상은 바람 핀 남편과 내연녀라기 보다는 바로 자기 자신이란 생각이 든다. 그녀의 넋두리 같은 이야기는 연민과 함께 안타까움을 준다. 증오심은 극에 달하고 악녀가 되기로 결심한다. 처음에는 악녀 탄생에 집중해서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루시를 악녀로 만든 것은 남편 보보다.

“……당신은 최악의 여자야. 어머니로서도 실격이고, 아내로서는 훨씬 더 나빠. 요리조차 제대로 못하는 여자. 사실 여자라고 할 수도 없어. 당신은 악녀야!  (59p)

이런 파렴치한 놈, 누구보고 악녀라는 거야? 이쯤 되면 억울하고 분통 터진다. 오로지 현모양처로 살아온 아내를 비난하는 남편이야말로 악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남편과 사랑에 빠진 메리 피셔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자기 주관이 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똑같다. 남편 보보는 다시 결혼해도 못된 놈이다. 보보와 결혼한 메리는 너무나 한심해 보인다.

답답한 루시, 못된 보보, 한심한 메리.

마치 영화 <드라큘라>를 보는 것 같다. 공감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점에서.

드라큘라 같은 남편과 희생자인 아내들.

약자로서 당하기만 하던 루시의 복수는 통쾌하지도 멋지지도 않았다. 여전히 드라큘라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집착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결국은 그녀 자신도 드라큘라가 되어버린 것이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누군가는 희생되어야 하는 상황은 비극이다.

현실에서 승자는 누구일까? 마지막 결말은 다소 허무하다.

작가는 결국 모든 열쇠는 각자에게 있으니 알아서 하라고 맡겨 버리는 것 같다.

처음부터 그랬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뭔지 모를 거리감을 느꼈다. 작가는 세 사람 모두에게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하물며 주인공 루시조차 내팽개친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누구의 편도 들고 싶지 않게 만들어 버린다.

현실에서 공감할 만한 결혼, 불륜, 이혼이라는 이야기가 하나의 객관적인 보고서처럼 우리 앞에 펼쳐진다. 냉정하게,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책임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듯 하다.

이 작품은 웹진 <페미니스타> 1998년에 선정한 20세기의 여성 작가 소설 100에 뽑혔다고 한다. 페미니즘 작가의 대표 작품이란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왠지 완전히 공감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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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키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오근영 옮김 / 창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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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열심히 살아주세요, 분명히 훌륭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470p)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 떨어졌다. 미래에서 온 아들이 남긴 마지막 말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어쩌면 내게 아이가 없었다면 그 정도의 감동은 아니었을 것 같다.

스물 세 살 다쿠미는 백수 청년이다. 가끔 잡다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다. 아사쿠사 놀이공원에서 사기성 짙은 영업 일을 하던 중, 열 일곱 살 도키오를 만난다. 처음 만난 도키오는 왠지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럴 수 밖에, 미래에서 온 다쿠미의 아들이니까. 미래에서 왔다는 SF적 요소가 꽤 흥미를 일으킨다.

그러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수록 시간 여행보다는 아버지와 아들 혹은 어머니와 아들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도키오가 왜 과거의 아버지를 찾아 시간 여행을 왔을까는 금세 의문이 풀린다. 정말 다쿠미는 형편 없는 젊은이다. 도키오가 아들이지만 오히려 더 듬직하게 여겨질 정도로 하는 일마다 경솔하다.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의 현실을 이해하면서도 끝까지 돕기 위해 애쓰는 도키오가 대견스럽다.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통해 미래를 본다. 아이들은 부모의 과거를 통해 자신의 현재를 이해한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과 부모-자식 간의 인연을 이야기한다. 또한 일련의 사건을 통해 사회적 비리를 살짝 들춰낸다.

도키오의 존재는 신비로운 시간 여행자라기 보다는 우리에게 성찰의 시간을 주는 매개체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내게 아이가 없었다면 인생이 공허했을 것이다. 늘 인생에 대해 불만이 많던 내게 진심으로 삶을 감사하게 만든 사람이 현재의 가족들이다. 부모가 된다는 건 대단한 경험이다. 그래서 부모가 될 수 있게 해 준 내 아이와 지금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부모님께 감사 드리고 싶다.

훌륭한 인생이란 대단한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다.

도키오가 한 말처럼 열심히 살다 보면 분명 훌륭한 인생이 기다린다는 건 우리 모두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모두 훌륭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다쿠미와 레이코의 아들, 도키오는 말한다. 같이 있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태어나길 잘했다고 말이다. 도키오, 넌 정말 멋지다. 나도 부모님께 이 말씀을 꼭 해드리고 싶다. 아직까지 못했다는 것이 좀 부끄럽지만 아직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당신에게 분명히 말해두죠. 내일만이 미래가 아니라고요. 그것은 마음 속에 있어요. 그것만 있으면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어요. …… 당신이 미래를 느낄 수 없는 건 누구의 탓도 아니에요. 당신 탓이에요. 당신이 바보기 때문이라고요! (398P)

나도 그 동안 바보처럼 살았다.

도키오, 고맙다. 네 덕분에 알게 됐다.

처음에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끌렸지만 곧 멋진 한 방으로 진한 감동을 느꼈다.

세상에 수많은 바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당신이 바보가 아니라면, 정말 축하한다. 이미 멋진 미래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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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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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 시노다 세츠코의 <도피행>.

최근에 읽은 책과 뭔가 통하는 내용이라 느꼈는데 알고 보니 동일 작가였다.

<오타쿠에게 완벽한 여자는 없다>라는 책인데 작가명이 시노다 세쓰코라고 적혀 있어서 다른 사람이라고 여긴 것이다. 이 책은 연애에서 바로 결혼으로 들어가, 결혼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 준다. 전업주부가 된 남편과 성공한 커리어우먼인 아내를 통해 결혼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직장생활 못지않게 가사일과 육아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 보여준다. 결혼이란 누가 더 힘든지를 저울질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수록 서로 돕고 나누는 일임을 깨닫게 해준다.

삐걱거리는 신참 부부의 이야기는 비록 마지막까지 힘들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도피행>은 안타깝다.

오로지 남편과 자식을 위해 청춘을 보낸 중년의 전업주부 타에코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중년 즈음에 답답한 현실을 자각한다는 건 너무 서글프다.

우리 드라마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아줌마의 삶이다.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수많은 아줌마들을 울릴 것 같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전업주부들은 고독하고 고달프다.

가족의 행복이 내 행복인 건 맞지만 내 행복을 전부 가족에게 맡길 수는 없다. 그것이 바로 전업주부 아줌마들이 빠지는 함정이다. 엄마가 최고라고 여기던 아이들도 점점 자라면서 제 인생을 우선으로 여기게 된다. 남편도 사회생활을 통해 나름의 성취감을 얻으며 산다. 그런데 혼자만 변함없이 ‘가족바라기’라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관심한 가족도 문제지만 아줌마 먼저 변해야 한다.

타에코가 자주 아프다고 말하니까 남편이 얼른 병원을 가라던가 혹은 정신력으로 이겨내라고 말하는 부분은 흠칫했다. 어찌 이리도 닮았을까?

아내들은 원한다. 아프다고 말할 때, 다정한 목소리로 “많이 아파?” 라는 한 마디.

말로 천 냥 빚도 갚는다는데 사랑하는 아내한테 다정한 말 한 마디를 왜 그리 아끼는 건지 모르겠다.

타에코의 가출은 충동적이었지만 충분히 예견된 코스였다.

그녀가 아끼는 애완견 포포는 덩치 큰 골든 레트리버다. 순하기만 한 포포를 옆 집 아이가 자주 괴롭혔다. 그러던 어느 날 딱총을 던지고 놀리던 옆 집 아이가 포포에게 물려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개가 아이를 죽인 것이다. 개는 두려움 때문에 본능적으로 공격했고 결과는 참혹했다.

만약 이 사건만 봤다면 생각할 필요 없이 ‘살인견을 처치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에게 포포는 분신과 같은 존재다. 순종적이던 포포의 충격적인 사건은 그녀가 가출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다. 솔직히 그녀의 행동을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다.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개는 개일뿐이다.

그녀가 선택한 도피행은 마지막 선택이었다. 어찌 보면 그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왜 가족과 함께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만큼 절박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내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중년에 찾아온 고독은 뼈 속 깊이 박혀 더 이상 누군가와 마음을 나눌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고독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독이다.

<도피행>은 고독한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며 막다른 골목이었다.

작가의 전작을 통해 결혼을 대하는 부부의 자세를 생각했다면, 이 작품을 통해 가족 간에 지녀야 할 사랑을 생각했다.

다른 곳은 몰라도 가정 안에서 고독이란 존재해서는 안 된다. 가족 모두가 서로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줘야 한다. 이것은 의무가 아니라 삶의 목적이니까.

 

이제 겨우 두 작품을 읽었을 뿐이지만 작가만의 매력을 조금 알 것 같다. 흥미로운 사건이나 줄거리보다는 한 인물을 통해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누구든 이 책을 읽는다면 도피보다는 도전하길 바란다. 그것이 이 책이 주는 진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도피행(도저히 피할 수 없는 행복)을 찾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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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의 책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존 코널리 지음, 이진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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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어른들의 마음 속에는 그의 과거인 어린아이가 살고 있고

모든 어린아이의 마음 속에는 그의 미래인 어른이 살고 있기에.  존 코널리

작가의 말 그대로다. 이 책은 어른들에게 매우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과거 어린 시절에 꿈꿨던 수많은 환상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그 환상들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최근에 한국영화 <헨젤과 그레텔>을 봤다. 귀엽고 깜찍한 아이들이 주인공이지만 내용은 매우 섬찟한 공포물이다. 신비로운 숲과 이상한 아이들이 어른을 가두고 죽이는 무서운 내용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악한 모습은 결국 어른들의 탐욕이라는 또 다른 모습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책 역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진부한 결말을 거부한다. 동화라는 신비로운 세계가 어른들에 의해 파괴된 잔혹한 현실 세계와 뒤섞여 존재한다.

2차 세계대전 중인 영국, 열 두 살 소년 데이빗은 엄마를 잃었다. 그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아빠는 로즈와 재혼한다. 그리고 이복동생 조지가 태어나다. 데이빗이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책 속에 빠지는 길이다. 어느 날 데이빗은 꼬부라진 남자를 쫓아 새로운 세상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마도 그 세상은 잔혹한 동화의 나라가 아닐까 싶다. 데이빗이 벗어나고 싶었던 현실보다 더 끔찍한 모습이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동화 <빨간 모자>, <헨젤과 그레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등의 이야기가 살벌하고 잔인한 내용으로 변하여 등장한다. 늑대인간, 트롤과 같은 괴물들이 인간을 공격한다.

실제로 데이빗이 살고 있는 현실은 전쟁 중이다. 전쟁을 겪는 아이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안락한 집, 사랑하는 가족을 한 순간에 잃게 된다면 아이는 더 이상 아이일 수 없을 것이다. 아이에게 동화 속 이야기는 현실을 향한 꿈과 희망이다. 또한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의 존재는 세상 전부라고 여길 만큼 큰 의미를 지닌다.

어린 데이빗에게 새엄마 로즈와 이복동생 조지는 그 세상을 빼앗아 간 존재다.

지하 정원 돌담 밑으로 갑자기 또 다른 세계로 들어 간 데이빗.

현실보다 더 무서운 그 곳에서 벗어날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왕이 가진 <잃어버린 것들의 책> 이 있어야 된다. <잃어버린 것들의 책>을 찾아 떠나는 데이빗의 모험이 바로 이 책의 줄거리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숲사람, 롤랜드는 아빠처럼 그를 지켜준다. 꼬부라진 남자는 끊임없이 데이빗을 시험한다. 마치 악마의 유혹처럼 우리 내면에 불신과 의심의 씨를 뿌린다.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 생각했던 늑대인간, 그리고 그토록 찾아 헤맸던 늙은 왕을 통해 연약한 소년은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한 소년이 어른이 된다는 건 삶의 진실을 이해하는 순간일 것이다.

데이빗이 경험한 새로운 세상은 악몽 같은 현실이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 즉 어른이 되는 과정인 것이다.

우리 삶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무엇일까?

그러나 정말 중요한 진실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아닐까?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가 잃을 것은 그 자체일 것이고

그 삶의 순간을 지나면 다시 새로운 삶이 주어질 것을 믿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다고……

이 책을 읽고 나니, 삶이 우리에게 준 모든 것에 감사하고 싶다.

<잃어버린 것들의 책>은 정말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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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에게 완벽한 여자는 없다
시노다 세쓰코 지음, 이영미 옮김 / 디오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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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띠지 문구는 이렇다.

퀸카와 결혼하려면…… 단단히 각오하라!

나오키상 수상 작가 시노다 세쓰코의 코믹 로맨스

주변머리 없는 남자와 혼자 힘으로는 신변 정리조차 못 하는 여자

이 환상적 커플의 수상하고 기묘한 결혼이야기

왜 코믹 로맨스지?

흥미롭기는 하지만 웃기지는 않고, 연애와 결혼 이야기지만 로맨스다운 느낌이 없다. 지극히 현실적인 묘사가 돋보여서 누군가의 실제 삶을 엿본 것 같다.

일본에서 출간된 책의 띠지 문구는 이렇다.

    리카코는 33세의 엘리트 은행원. 재색을 겸비한 그녀가 어느 날 연수입 200만 엔인

     오타쿠 풍의 라이터 신이치와 어쩐 일인지 사랑에 빠지는데……. 결혼, 출산, 육아.

     소자고령화 시대의 남녀가 펼쳐 보이는 야단법석 결혼 이야기!

       (* 오타쿠: 마니아보다 한 분야에 더욱 심취해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

작품 해설에서도 나오는 얘기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엄연히 신이치다. 그런데 왜 띠지에서는 리카코가 주인공 같을까?

일단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사회적 조건으로 볼 때 유능한 아내를 둔 신이치는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선다. 물론 그에게도 글 쓰는 직업이 있지만 해외출장이 잦은 아내를 대신하여 집안일을 할 수 밖에 없다. 함께 살기 전까지는 완벽한 여자였던 아내가 결혼 후 다르게 보인다. 마치 결혼은 자정을 넘긴 신데렐라의 황금마차가 아닐까? 모든 마법은 사라지고 괴로운 현실만이 남는다. 더군다나 딸아이가 태어난 뒤는 육아까지 그의 몫이 된다.

그는 이 모든 현실이 벗어버리고 싶은 짐처럼 느껴진다. 원래는 아내가 해야 될 일들을 자신이 억지로 떠맡았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다. 이쯤 되면 대부분 신이치를 불쌍하게 여길 것이다. 괜히 독한 아내를 만나 고생하는 남편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왜 제목이 오타쿠에게 완벽한 여자는 없다겠는가?

신이치는 오타쿠 성향이 있는 남자다. 어떤 분야에 오타쿠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타쿠는 어찌 보면 유아기적 면이 느껴진다.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는 한 가지에 빠져 다른 것은 염두에 두질 않는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이야기가 처음에는 신이치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아내 리카코가 매우 이기적인 여자로 비쳐진다. 회사 일을 할 때는 프로답지만 집안 일은 엉망진창인데다 대수롭게 여기질 않으니 말이다. 신이치는 어쩔 수 없이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늘 불만스럽다. 차라리 집안 일 잘하는 여자와 결혼할 걸 하는 후회뿐이다.

결혼 후 콩깍지가 벗겨지는 가장 큰 이유는 지극히 사소한 것부터 시작된다. 치약 뚜껑을 번번히 안 닫는다거나 양말을 아무데나 벗어놓는 일 등.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누군가는 열심히 하는데 누군가는 무신경할 때 서로에 대한 애정지수가 급격히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아내들이 집안일에 무신경한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지만 반대인 경우도 있다. 그나마 둘이 살 때는 괜찮지만 아이가 생기면 그 때부터 치열한 삶이 시작된다.

신이치가 불만인 것은 가사와 육아가 아내의 몫인데 자신이 해야 된다는 억울함에 있다. 왜 나만 이 고생을 하느냐고 하지만 실은 아내가 회사에서 고생하는 것은 알 지 못한다.

이것이 불행한 결혼 생활을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제목을 이기적인 사람에게 완벽한 결혼은 없다라고 하는 것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세상에 이기적인 대다수의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결혼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뜻이다.

요즘은 전업주부인 남편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전업주부 10년 차라는 애 아빠를 보면, 영락없는 아줌마다. 저녁 반찬거리 걱정하고 아이 뒷바라지에 정신 없다. 바깥 일하는 부인은 전형적인 남편의 모습이다. 이 부부를 보면서 사람은 역할에 따라 변한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가 흔히 아내와 남편의 모습이라 여겼던 것은 여자와 남자의 차이가 아니라 역할의 차이였다.

신이치와 리카코의 결혼 생활을 보면 확실히 달콤한 환상을 깨준다.

누군가를 위해 기쁘게 희생할 마음이 없다면 결혼은 불행의 시작이다. 어설프게 여자와 남자의 몫을 나누기 보다는 함께 더불어 사는 부부의 모습이 행복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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