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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작가 시노다 세츠코의 <도피행>.
최근에 읽은 책과 뭔가 통하는 내용이라 느꼈는데 알고 보니 동일 작가였다.
<오타쿠에게 완벽한 여자는 없다>라는 책인데 작가명이 시노다 세쓰코라고 적혀 있어서 다른 사람이라고 여긴 것이다. 이 책은 연애에서 바로 결혼으로 들어가, 결혼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 준다. 전업주부가 된 남편과 성공한 커리어우먼인 아내를 통해 결혼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직장생활 못지않게 가사일과 육아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 보여준다. 결혼이란 누가 더 힘든지를 저울질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수록 서로 돕고 나누는 일임을 깨닫게 해준다.
삐걱거리는 신참 부부의 이야기는 비록 마지막까지 힘들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도피행>은 안타깝다.
오로지 남편과 자식을 위해 청춘을 보낸 중년의 전업주부 타에코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중년 즈음에 답답한 현실을 자각한다는 건 너무 서글프다.
우리 드라마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아줌마의 삶이다.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수많은 아줌마들을 울릴 것 같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전업주부들은 고독하고 고달프다.
가족의 행복이 내 행복인 건 맞지만 내 행복을 전부 가족에게 맡길 수는 없다. 그것이 바로 전업주부 아줌마들이 빠지는 함정이다. 엄마가 최고라고 여기던 아이들도 점점 자라면서 제 인생을 우선으로 여기게 된다. 남편도 사회생활을 통해 나름의 성취감을 얻으며 산다. 그런데 혼자만 변함없이 ‘가족바라기’라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관심한 가족도 문제지만 아줌마 먼저 변해야 한다.
타에코가 자주 아프다고 말하니까 남편이 얼른 병원을 가라던가 혹은 정신력으로 이겨내라고 말하는 부분은 흠칫했다. 어찌 이리도 닮았을까?
아내들은 원한다. 아프다고 말할 때, 다정한 목소리로 “많이 아파?” 라는 한 마디.
말로 천 냥 빚도 갚는다는데 사랑하는 아내한테 다정한 말 한 마디를 왜 그리 아끼는 건지 모르겠다.
타에코의 가출은 충동적이었지만 충분히 예견된 코스였다.
그녀가 아끼는 애완견 포포는 덩치 큰 골든 레트리버다. 순하기만 한 포포를 옆 집 아이가 자주 괴롭혔다. 그러던 어느 날 딱총을 던지고 놀리던 옆 집 아이가 포포에게 물려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개가 아이를 죽인 것이다. 개는 두려움 때문에 본능적으로 공격했고 결과는 참혹했다.
만약 이 사건만 봤다면 생각할 필요 없이 ‘살인견을 처치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에게 포포는 분신과 같은 존재다. 순종적이던 포포의 충격적인 사건은 그녀가 가출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다. 솔직히 그녀의 행동을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다.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개는 개일뿐이다.
그녀가 선택한 도피행은 마지막 선택이었다. 어찌 보면 그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왜 가족과 함께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만큼 절박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내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중년에 찾아온 고독은 뼈 속 깊이 박혀 더 이상 누군가와 마음을 나눌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고독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독이다.
<도피행>은 고독한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며 막다른 골목이었다.
작가의 전작을 통해 결혼을 대하는 부부의 자세를 생각했다면, 이 작품을 통해 가족 간에 지녀야 할 사랑을 생각했다.
다른 곳은 몰라도 가정 안에서 고독이란 존재해서는 안 된다. 가족 모두가 서로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줘야 한다. 이것은 의무가 아니라 삶의 목적이니까.
이제 겨우 두 작품을 읽었을 뿐이지만 작가만의 매력을 조금 알 것 같다. 흥미로운 사건이나 줄거리보다는 한 인물을 통해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누구든 이 책을 읽는다면 도피보다는 도전하길 바란다. 그것이 이 책이 주는 진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도피행(도저히 피할 수 없는 행복)을 찾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