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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조진국 지음 / 해냄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고?
유치해도 괜히 따져 묻고 싶다. 사랑한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라고 말이다. 그리고 괜히 피식 웃음이 나온다. 가슴 떨리는 사랑이 현재형이 아닌 과거형인 사람이 부리는 억지 같아서.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목만 봤을 때의 소감이다.)
처음엔 그랬다. 말랑말랑한 사랑의 감성이 너무 오랜만이라 잊고 있었나보다.
달콤한 알사탕을 녹여 먹듯, 조금씩 그 맛이 전해져 온다. 사랑이라는 맛, 그러나 사탕처럼 달지만은 않은 그 맛을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거다.
사탕과 사랑의 공통점은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그 맛을 완전히 잊지는 못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사탕을 먹고 사랑을 한다.
이 책은 슬며시 내게 사랑이라는 사탕을 건네준다. 자, 이 맛이 기억나니?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시집인 줄 알았다. 차례에 적힌 제목들이 한 편의 시처럼 그윽한 느낌이다.
< 차 례 >
1. 겨울 끝에는 봄이 오듯이, 내 끝에는 항상 네가 있다.
2. 사랑은 운명이 아니라 운명적인 선택이다.
3. 너한테만은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4. 버려진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5. 젊음은 ‘가벼운’ 것이 아니라 ‘아픈’ 것이다.
6. 숫자는 달콤한 사랑의 언어다.
7. 빛의 반대말은 어둠이 아니라 투명함이다.
8. 너의 눈물까지 감싸 안는 사람이고 싶다.
9. 나이가 들수록 상처를 회복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10. 눈을 감으면 외로운 사람들만 모이는 작은 섬이 보인다.
11. 슬픔을 나누려는 사람보다 슬픔을 주는 사람에게 끌린다.
12. 뒷모습을 허락하는 것은 전부를 주는 것이다.
13. 사랑에 빠지면 아이도 어른이 된다.
14. 소리에는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는 이야기가 있다.
15. 두 번째 이별은 첫 이별보다 아프다.
16. 추억은 고양이처럼 깊고 오랜 흔적을 남긴다.
17. 더 사랑해서 더 외로운 사랑이 있다.
18. 울어도 변하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쓸쓸함’이다.
19. 어느 날 추억은 담담해지고, 마음은 단단해질 것이다.
20.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더 사랑하게 된다.
여기에 한 줄을 더 추가하고 싶다.
21. 차례를 읽으면서 공감할 수 없다면 이 책은 그저 시시한 연애 소설이 될 것이다.
주인공 조희정의 사랑 이야기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이면서 사랑하는 순간은 누구나 특별해지는 법이니까.
사랑은 마법 같다. 그래서 사랑을 말하는 언어 또한 마법 같은 힘을 지니는 것 같다.
이 책을 펼쳐든 장소는 버스 안, 시간은 햇살이 유난히 쏟아지는 오후였다. 문득 내 뺨에 와 닿은 햇살이 사랑하는 사람의 따스한 손길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눈부셔서 고개를 돌렸을 그 햇살이 그 순간만큼은 피하고 싶지 않았다.
“빛이 닿으면 무엇이든 반짝인다. 운하의 탁한 물결도, 푸석한 나뭇잎도, 멋없이 뻗어 있는 현대식 건물도, 말라버린 눈물 자국까지도. 그래서 사람들에게 와서 닿을 때 빛은 그냥 빛이 아니다. 저마다 다시 시작하고픈 사랑,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의 실현, 부서진 관계의 회복이라는 이름들로 바뀌어 반짝인다.
두 사람이 사랑하게 되면,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에게 빛이 된다.......“ (78p)
사랑의 언어만으로도 이 책은 내게 빛이 되어 다가왔다. 아침 햇살이 잠을 깨우듯 잠들었던 감성이 깨어나고, 오후 햇살 같은 따사로움으로 추억에 잠겼다.
빛이 닿으면 반짝인다는 자연 현상조차 사랑이란 말로 바꾸면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하게 변한다. 혹여 그 사랑이 아프다는 걸 알아채도 여전히 슬프도록 아름답다는 걸.
사랑했거나 사랑하거나 사랑할 이들을 위하여
작가는 우리에게 사랑을 들려준다.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널) 사랑하지만, (너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너는 날) 사랑하지만, (나는 널)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은 원래 불공평한 것 같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이 책은 에세이와 스토리텔링을 결합시킨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한다. 어쩐지, 단순한 나는 에세이와 소설 중 어떤 장르인지 잠시 고민했다. 물론 사랑을 말하는데 장르 구분이 뭐가 중요한가 싶어 그만 두길 잘했다.
이미 이 책을 읽는 동안 사랑이 주는 감미롭고도 씁쓸한 맛을 기억해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