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 글쓰기 - 글과 생각이 깊어지는 웹 2.0시대의 글쓰기 매뉴얼
김봉석 지음 / 바다출판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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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잘 하고 싶은 사람은 일단 가장 쉬운 방법으로 요리책을 산다. 그리고 요리책에서 가장 만만하고 맛있어 보이는 요리를 시도해 본다. 재료를 준비하고 정해진 순서대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말로는 이렇게 간단하지만 실전은 다르다. 분명 동일한 재료로 만든 음식인데 요리책 속에 군침 도는 음식처럼 만들기는 쉽지 않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요리책을 무시할 수는 없다. 요리에 자신 없는 사람일수록 무작정 시도하는 것 보다는 요리책의 도움을 받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초보자용 요리책과 같다.

작가는 대중문화 평론가, 영화 평론가, 만화 평론가 등 다양한 대중문화 분야에서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현재는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전방위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글쓰기는 요리다.

자, 요리를 시작해보자.

1. 초보자가 요리를 하는 이유

먹는 일은 생존을 위한 본능을 뛰어넘어 사회문화적 특성이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소통방식이 될 수도 있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글쓰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통의 수단이 되고 있다. 선택이 아닌 필수다.

요리를 잘 못하는 사람도 가끔은 요리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음식에 정성을 담아 대접하기도 한다.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시인이 되는 것처럼.

2. 요리를 잘 하려면 기본에 충실하자

일류 요리사도 처음에는 기본적인 일부터 시작한다. 신선한 재료를 고르고, 다듬고 손질한다. 견습생을 보면 동일한 칼질만 수없이 반복한다. 무슨 분야든지 기본기가 튼튼해야 실력이 향상된다.

요리를 잘 하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맛에 예민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맛을 낼 줄 알아야 한다. 신선한 재료의 맛을 살리는 방법은 재료에 대한 지식과 재료를 다루는 기술이 필수 조건이 될 것이다.

글쓰기를 잘 하려면 필수 교양이 세 가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철학적 사고, 경제학 지식, 역사적 시각이다. 알아야 제대로 쓸 수 있다. 아는 만큼 쓴다. 풍요로운 글쓰기는 결국, 독서의 양과 깊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요리는 일단 먹어 본 사람이 만들 수 있고 직접 만들지 않더라도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3. 기본을 알고 요리를 시작하자

이제 핵심적인 레시피를 소개한다.

사람들의 입맛을 한 번에 사로잡는 구체적인 방법들이다. 그 중 몇 가지만 적어 본다.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 서두에서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더 이상 읽지 않는다. 화려한 색감이든 식욕을 자극하는 향이든 개성 있게 활용하자.

끝이 좋으면 다 좋다. 결국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찾는다.

정보는 중요하다. 보기도 좋고 맛도 좋다면 그 다음은 영양적인 면을 살펴봐야 한다.

글을 쓸 때 독자를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논리다.

4. 요리를 비평하다

요리를 평가할 수 있으려면 요리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맛 이상을 감지하고 그 안의 가치를 끄집어내야 한다.

작가는 다양한 분야의 평론가답게 문학 비평, 영화 비평, 대중문화 비평, 시사 비평을 설명하며 실제 자신의 글로 예를 들어준다.

요리는 ‘정성이 반’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노력이 반’일 것 같다.

작가는 마지막을 이렇게 적고 있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고 그리고 꾸준하게 쓰는 것, 그것이야말로 글쓰기의 정도다.”

<전방위 글쓰기>는 누구나가 어떤 분야든지 자신만의 개성을 담아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으로서 글쓰기 방법을 알려준다. ‘어떻게 잘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어떻게 꾸준히 쓸 것인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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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짝꿍 3-165 - 제1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대상 수상작
김나연 지음, 오정택 그림 / 웅진주니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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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은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놀이 친구다. 하지만 단순히 놀기 위한 도구로 본다면 장난감 입장에서는 슬플 것 같다.

<일주일 짝꿍>은 장난감 대여점에 살고 있는 장난감들의 이야기다. 꼬마 친구들에게 일주일씩 보내졌다가 가게로 돌아오는 장난감들은 저마다 뽑히기를 원하면서도 한 편으론 두려워한다. 심술궂거나 장난이 심한 아이는 장난감을 함부로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장난감끼리 못된 아이 길들이는 방법을 알려주겠는가?

<꿈꾸는 장난감>은 장난감 대여점 이름이다. 장난감들은 어떤 꿈을 꿀까?

아마도 아이들에게 사랑 받는 꿈일 것이다. 막내로 들어온 오리 장난감은 오자마자 3-165라는 번호표로 불려진다.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처음 대여될 때 덤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처음 만난 경오는 3-165를 특별한 짝꿍으로 생각한다.

보통의 아이들은 장난감에 금세 싫증을 낸다. 그 점이 장난감 대여점이 생긴 이유일 것이다. 다양한 장난감을 일주일 빌려 놀다가 돌려주면 그만이니까. 놀다가 망가진 것은 주인 아저씨가 고쳐주고 못 고칠 만큼 낡은 것은 손수레를 끄는 할머니가 가져간다. 그래서 장난감들은 할머니를 마귀할멈이라고 부른다.

장난감 대여점에 있는 장난감들이 순간 불쌍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에게 이용당하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이 짝꿍으로 받아들여주기를 소망한다. 오래된 장난감은 쓰레기차에 실려가거나 마귀할멈의 차지가 된다.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그 동안 함부로 다룬 장난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까? 조금은 그랬으면 좋겠다.

요즘 아이를 키우면서 걱정스런 부분이기도 하다. 비록 장난감이 이 이야기처럼 느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아이들과 가까운 존재란 점에서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장난감은 생명이 없지만 아이들의 사랑을 통해 생명력 있는 존재로 탄생되기도 한다.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면 <꿈꾸는 장난감>의 장난감들처럼 진짜 짝꿍,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어른 입장에서 보면, 장난감의 모습이 고달픈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들로 느껴진다.

자신의 능력껏 인기도 누리고 사랑 받지만 결국 대여 인생이라 세월의 흐름을 막지 못한다. 낡고 망가지고, 한 마디로 능력이 바닥 나면 쓸쓸히 사라지는 모습이 왠지 처량하다. 그러나 의외의 반전이 있다. 마귀할멈이라 불리던 할머니는 장난감에게 최후의 죽음이 아닌 새로운 삶을 준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화려한 순간은 인생의 잠시지만 의미 있는 삶은 마음 먹기 나름이다.

<일주일 짝꿍>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장난감들의 소망처럼 우리들에게도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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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싱 마이 라이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9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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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사춘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사춘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의 마음을 이해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흔히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더니 나도 별 수 없는 어른이 된 모양이다.

이 책은 청소년 문학선 중 한 권이다.

경쾌하고 발랄한 제목이 풋풋한 청소년들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내용을 보니 답답함이 밀려온다. 주인공 하연은 고등학교 1학년생이며 깔끔하게 살자가 신조인 자존심 강한 여학생이다. 화목한 가정이라고 하기엔 문제가 많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

십 대 청소년에게 성적 호기심이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연이 역시 환상과 호기심으로 성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결국 남자친구 채강이와의 불장난 같은 일이 벌어진다.

어른들은 십 대 소녀의 임신을 어떻게 바라볼까?

임신이라는 동일한 상황이 대상에 따라 상반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 경우는 축복 보다는 불행한 사고라는 낙인이 찍힌다. 하연이는 절대로 불량 청소년이 아니다. 사실 사람을 놓고 우수 혹은 불량이라고 평가하는 자체가 비인간적이다. 특히 청소년은 아직 자신의 행동을 책임질 만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어른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러나 하연이가 임신한 사실은 어른들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어른들은 뭐든 도와줄 것처럼 말하지만 이 경우는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하연이가 엄마에게 말하지 못한 것도 어른들의 극단적인 생각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세상의 모든 청소년들도 성적인 존재임을 인정하라고 말이다.

과연 나는 부모로서 어떤가?

십 대 청소년들의 반항을 살펴보면 자신들은 몸과 마음이 어른 못지 않은데 어른들이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심한 반발을 한다. 야무진 하연이도 그런 일을 벌일 정도로 생각 없는 아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른들 몰래 술을 마셨고 술기운에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다.

십 대 소녀의 임신이라니, 정말 부모 입장이라면 충격 그 자체일 것 같다.

솔직히 청소년의 성적 호기심은 이해하지만 그로 인한 결과까지 인정하기는 힘들다. 나 역시 여느 어른들과 다르지 않다. 이미 어쩔 수 없는 상황인 줄 알면서도 왜 그랬니?라는 어리석은 잔소리만 떠오르니 말이다.

하연이를 통해서 청소년들의 성문제를 돌아보게 됐다.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른 성을 가르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일임을 새삼 느끼게 됐다.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어떻게 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려주는 일이 급선무인 것 같다.

아이의 인생이 소중하고 아름답기를 원한다면 아이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바라봐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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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수도원 - 오드 토머스 세 번째 이야기 오드 토머스 시리즈
딘 R. 쿤츠 지음, 조영학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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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딘 쿤츠는 오드 토마스라는 신비로운 인물을 창조한 장본인이다.

이 책은 오드 토마스 시리즈 중 세 번째 작품이다. 보통은 시리즈 1권부터 읽는 것이 당연한 순서겠지만 3 <악의 수도원>을 먼저 읽게 됐다. 상관 없다.

오드 토마스의 매력은 굳이 시간의 순서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그는 인기 있는 주인공답게 친절한 설명으로 처음 읽는 이들의 우려를 잠재운다. 그의 과거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곧 그가 풀어야 할 미스터리 속으로 빠져들 테니 말이다.

첫 장에는 작가의 친필로 이렇게 적혀있다.

한국 독자 여러분께,

오드 토마스는 제 마음에 꼭 드는 주인공입니다. 저는 때때로 그의 대사를 쓰다가 한바탕 크게 웃곤 합니다. 오드가 제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재미있는 주인공인 것처럼 독자 여러분께서도 공감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 하시기를.

호러소설이 이토록 유머를 지녔다는 사실이 놀랍다. 분명 오드는 재미있고 호감이 가는 청년이다. 그의 불행했던 과거를 다 알지는 못하지만 현재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모습만으로도 멋지다. 오드의 특별한 재능은 죽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은 영혼과 바다흐라는 죽음의 사자까지, 우리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너머의 세계와 소통한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그의 재능 속에는 예지 능력이나 죽음을 맞설 힘은 포함되지 않는다.

2부에서 겪었을 불행한 사건 때문인지 오드는 수도원에서 오랜 휴가를 보내고 있다. 온갖 범죄와 악이 들끓는 세상과는 격리된 수도원은 무척 안전한 피난처로 보인다. 그러나 죽음과 악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세상에 어디 존재하겠는가?

오드 눈에는 바다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다흐의 정체는 피에 굶주린 악령으로 수많은 죽음이 발생하는 사건 사고 부근에 등장한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죽음을 예견하려고 음울한 기운이 감도는 걸까? 심각하고 침울할 것만 같은 분위기와는 달리 오드는 나름의 낙천적인 성향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대단한 용기일 수도 있다. 죽음을 볼뿐 달리 조정할 수 없다는 건 삶의 치명적인 결함이나 불행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일이다.

특별한 재능을 지녔지만 인생의 가장 소중한 보물인 스토미를 잃고 그의 삶은 엉망이 된 모양이다. 이 부분이 2부 내용일 거라 짐작된다.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수도원에 머물면서도 그는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는다.

불행한 죽음을 피하기 위해 조사를 하는 오드를 통해 가장 평화로울 것만 같은 수도원 내에 악의 존재가 서서히 드러난다. 수도원에는 수사와 수녀, 세상에 버려진 아이들이 살고 있다. 선천적인 장애를 지녔거나 악에 희생된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오드 자신도 그 아이들과 다르지 않기에 더욱 지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의문의 죽음과 괴기한 생물체의 등장으로 약간은 오싹하지만 오드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다.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을 꼽으라면 역시 주인공 오드일 것이다. 그가 수도원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로디언 로마노비치와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유머를 곁들여 정곡을 찌르는 예리함을 지녔다.

오드가 육감적으로 느끼는 모든 요소들을 주의 깊게 종합해 보면 악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영혼을 보기 때문인지 순수함과 성숙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매력의 소유자, 오드 토마스를 알게 되어 기쁘다.

오드의 재능이 가져다 준 슬픔은 그를 평범한 사람들처럼 마음껏 슬퍼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지만 초자연적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을 초월한 숭고함을 부여한 것 같다. 그가 짊어진 삶이 결코 유쾌하진 않지만 오드의 이야기는 정말 신비롭다.

과거를 구원할 수는 없다.

과거에 있었던 일과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 현재를 낳는 법이다.

슬픔을 알고 싶다면 시간의 강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슬픔은 현재를 먹고 살며 주야장천 우리와 함께 살아가겠다고 우긴다.

시간과 시간의 무게를 정복하는 건 오로지 시간뿐이다.

시간의 전에도 시간의 후에도 슬픔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위안은 그것뿐이다.      (1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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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자오선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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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로드>라는 코맥 매카시의 작품에 대해 익히 들어 왔으나 막상 읽지는 못했다. 입 소문이 나기 시작한 작가인지라 관심은 있었으나 왠지 작품의 무게감이 선뜻 다가서지 못하게 한 것 같다. 그런데 <핏빛 자오선> 1985년 발표되어 이미 <타임>이 뽑은 100대 영문소설로 선정된 작품이라고 한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미국의 4대 소설가로 손꼽히는 코맥 매카시라서 그런지 첫 만남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 같다.

일단 내게는 그리 쉽지 않은 만남이었음을 고백한다. 이 소설은 19세기 미국과 멕시코 간의 치열했던 영토 분쟁과 이후의 국경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미국 군대의 횡포와 암울한 시대적 분위기가 보는 사람까지 절망으로 이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보니 다수의 등장인물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빌려 쓴 것이라 한다.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는 이런 작가의 노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열 네 살의 소년이 가출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대의 아픔이라고 해야 될 지 아니면 단순히 개인의 불행이라 해야 될 지는 모르겠지만 소년은 더 거칠고 야만적인 세상을 향해 자신을 내던진 것이다.

여기서부터 소년을 쫓는 일이 힘겹게 느껴진다. 온통 피로 물든 폭력과 굶주림, 고통을 겪으며 성장한 소년은 생존을 위해 입대한다. 소년이 만나는 그린 목사, 머리 가죽 사냥꾼 글랜턴, 화이트 대위, 홀든 판사, 전직 신부 토빈은 공허와 절망이 난무하는 현실을 나름의 논리로 정당화한다. 하지만 그 어떤 논리도 전쟁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오히려 늙고 병든 메노파 노인만이 진실을 말한다.

 

하느님의 분노는 잠들어 있지. 인간들 앞에서 100만 년이나 잠들어 있지만, 그것을 깨울 힘을 가진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네. 지옥이 다 차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 내 말 잘 듣게. 남의 나라 땅에까지 가서 전쟁을 벌이는 것은 미친 짓이야. 그래 봤자 세상만 더 시끄러워질 뿐이지.   (63p)

 

소년은 나이답지 않은 힘겨운 삶을 버티며 살아나려고 애쓴다. 살아 숨쉰다는 것, 그것만이 소년에게는 희망이지 않을까? 핏빛 자오선은 어린 소년의 눈을 통해 혼란스러운 세상을 보여준다. 생존과 욕망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결코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그야말로 희망인지도 모른다.

지독한 소설이다. 마지막까지 묵직한 여운을 남기니 말이다.

헛소리라고 치부했던 판사의 말도 어쩌면 혼란한 세상에서는 가장 설득력 있는 논리인지도 모른다. 그 역시 자신의 논리대로 살 수 없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지 않았을까?

전혀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들의 삶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지, 각자의 숙제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낯선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기엔 내 안의 세계가 좁은 것 같다. 공감하기 보다는 들여다봤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운명은 끝내 피할 수 없어. 판사가 말했다.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지. 자기 운명을 알고서 일부러 반대의 길을 택한 자들도 결국에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운명을 맞게 되네. 운명이란 이곳 세계만큼이나 거대하여 반항자까지도 다 품고 있거든. 너무나 많은 이들이 파멸하고 만 이곳 사막은 너무도 광대하여 우리 마음을 마구 끌어당기지만 사실상 텅 비어 있지. 황량한 불모지일 뿐이야. 사실상 거대한 돌덩어리지.  (4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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