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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철학자
알퐁스 도데 지음, 김혜경 옮김 / 책만드는집 / 2003년 2월
평점 :
감히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 알퐁스 도데를 안다고 말할 자격은 없지만 그래도 그의 작품 중 하나를 뽑으라면 단연 <별>이라고 말하고 싶다. 섬세한 감정을 아름답고 순수한 언어로 표현해낸 작품이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일 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제야 <꼬마 철학자>를 만났다. 만약 먼저 만났더라면 알퐁스 도데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제목만 보면 의젓하고 멋진 소년을 상상할 테지만 첫 장을 보는 순간,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짐작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난 둔한 사람이다. 솔직히 누구라도 불행은 외면하고 싶을 것이다.
“우선,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불행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말해두어야겠다.”
바로 우리의 주인공 다니엘 에세트의 말이다.
아무도 이 세상에 불행을 주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세상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불공평하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러니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탄생과 불행이 맞물린 경우는 벗어날 방법이 없다.
다니엘에게는 신부인 큰형과 울보인 자크 형이 있다. 특히 자크 형은 다니엘에게 있어 중요한 존재다. 내게는 두 사람이 원래는 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자크 형과 육체적으로 작은 다니엘.
다니엘은 집안에서 막내일 뿐 아니라 작은 체격 때문에 학교에서 ‘꼬맹이’로 불린다. 꼬마 다니엘에게 삶의 불행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진정한 철학을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그의 삶 어느 곳에서도 철학은 없다. 현실적으로 가난하고 비참한 하루를 사는데 철학은 너무나 배부른 고민이다. 그는 철학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시를 노래하고 꿈을 꾸는 어린 소년이었다. 책 속 어디에도 다니엘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분명 세월은 흘렀는데 여전히 작고 연약한 다니엘은 변하지 않는다. 그가 변한 것은 모든 불행이 지나간 뒤다. 우리에겐 마지막이지만 다니엘에게는 또 다른 시작이다. 책 마지막 장은 이렇다.
‘자, 꼬맹아, 이젠 어른이 되는 거야!’
이 마지막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꼬마 철학자 다니엘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단순한 불행 따위가 아니었다. 세상에 불행은 어디든 존재한다. 삶은 행복과 불행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있다. 그 실들을 엮어 삶을 만들어가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다니엘은 꼬맹이가 아닌 어른이 되려고 한다. 이제 삶이 어떤 모습이든 스스로 마주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거라 믿는다.
그리고 다니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결코 불행과 함께 태어난 아이가 아니다. 불행에 짓눌려 꼬맹이가 된 것도 네 탓은 아니다. 네가 들려준 <항아리 사건>처럼 모든 불행은 모진 운명의 장난이었다. 이제 네가 어른이 된다니 네 삶을 축복해주고 싶다.
우리는 누구나 꼬맹이였다.
<꼬마 철학자>는 세상 앞에 꼬맹이였던, 혹은 꼬맹이인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