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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관객 - 미디어 속의 기술문명과 우리의 시선
이충웅 지음 / 바다출판사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TV는 과연 바보 상자인가?
<문명의 관객>을 읽고 나니, TV를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를 아무런 비판이나 반성 없이 바라보았던 내가 바보였구나 라는 각성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미디어 속의 기술문명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이야기한다. 문명 속에 안주하여 수동적으로 지각하던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낯설게' 바라보기를 권한다. 현명한 관객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하루에도 엄청나게 쏟아지는 정보 속에는 과학, 의학, 기술, 사회의 다양한 문화들이 뒤섞여 있다.
저자는 각 장을 여러 명의 시선(농사꾼, 대학생, 젊은 학자 등)으로 이야기하여 독자들을 자연스럽게 이끌고 있다.
[ 1장. 몸을 향한 욕망의 시선 ]에서는 비만과 다이어트, 미용성형, <인체의 신비>, <CSI 과학 수사대>, <닥터 하우스>를 이야기한다. 성형에 관한 문제는 거의 시대적 유행이라 할 만큼 대중화되어 비판하기 힘들 정도다. 아름다운 외모가 경쟁력이라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성형은 생존 혹은 성공 전략인 것이다. 연예인들의 성형을 비판하면서도 대중 역시 성형 열풍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니 답답할 따름이다.
<인체의 신비> 전은 다소 충격적이다. 실제 의도를 모를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확실히 알게 해준다.
몇 년 전 전시회를 본 기억이 난다. 워낙 대대적인 광고가 있었고 그 당시 "국립서울과학관"에서 전시되었기 때문에 학생들과 학부모 관객이 많았다. 인체 해부를 직접 볼 수 있을 뿐더러 전시된 인체가 실제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던 전시회였다. 눈 앞에서 시체를 본다면 기절할 사람들이 시체의 여기저기를 잘라내고 펼쳐 놓은 전시회는 아무렇지도 않게 구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시체라고 인식하기 보다는 의학적인 교육 체험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체의 신비>는 우리의 몸을 신비로움이 아닌 기괴한 볼거리로 전락시켰음을 이제야 알게 됐다. 전시의 최초 기획자는 플라스티나이제이션이라는 시체 처리 기법을 개발한 군터 폰 하겐스라는 사람이다. 유럽에서 전시될 때는 성직자로 보이는 노인이 통곡했다는데 한국에서는 어린 아이들과 어른들이 즐겁게 관람하는 인기 전시회로 둔갑한 것이다. 소름끼친다. 만약 이 전시회가 <플라스티나이제이션 -시체 처리 기법>이었다면 이런 반응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중은 '과학 전시회'라는 이름 앞에 철저히 속았다. 전시회를 기획하고 수익을 챙긴 이들에게 이용당한 기분이다. 아무런 비판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무조건 수용한 결과이다.
[ 2장. 편견과 열등감과 열광의 추억 ]에서는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이야기가 나온다. "우주인 프로젝트"가 2005년 전국민을 충격으로 몰고 간 "황우석 사태"를 진화하는 국가 차원의 이벤트가 되었음을 알고 있는가? 과학에 열광했던 만큼 실망도 컸던 "황우석 사태"는 문명의 관객이 어떠해야 할 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예다. 그런데 "우주인 프로젝트"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기술 정보를 훔치려 했다는 불명예를 안고 우주인 구산이 탈락되고 이소연으로 바뀐다. 소유즈 호 승객이 되어 탑승했다는 사실이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탄생이라며 기뻐해야 될 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우주 개발 산업에 대해 모르는 대중들은 국가적 이벤트에 휩쓸려 바람잡이 역할을 할 뿐이다. 씁쓸하다.
[ 3장. 위기와 공포의 재생산 ]에서는 기름유출, 조류독감, 광우병 공포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를 다룬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는 삼성중공업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엄청난 사건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방송사 덕분에 국민이 직접 나서서 해결했다. 당시에는 자원봉사하러 가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질 정도로 수많은 이들이 발벗고 나섰다. 그런데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지 않고 작업을 하면 위험하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나중에서야 알려지면서 자원봉사자가 줄었지만 현지 주민들은 피할 수 없이 당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심각한 환경오염뿐 아니라 생계를 위협받는 주민들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약자는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조류독감이나 광우병 공포를 보면서 문득 놀이공원에 있던 <유령의 집>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에는 그 속의 유령이 실제라고 생각해서 벌벌 떨며 들어갔지만 어른이 되니 너무 시시한 곳이 되었다. 만들어진 공포는 대중들에게 입장권을 강매하는 격이다. 상황을 알 수 없는 대중들은 공포와 위기를 느끼며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끌려간다. 전 미국 국방부 장관인 도널드 럼스펠드가 조류독감 치료제로 알려진 타미플루의 특허권을 가진 회사의 대주주라는 사실은 이 모든 현상을 설명해준다.
[ 4장. 불완전한 연희에서 희망을 찾다 ]에서는 다치코마와 집단지성, 블로그, 인터넷 시대를 이야기한다.
인터넷 시대라고 불릴 만큼 국민 대다수가 인터넷을 이용한다. 블로그, 전자메일, 인터넷 카페를 통해 자유롭게 소통하고 때로는 협력한다. '촛불시위'도 인터넷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집단지성은 인터넷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문제다.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고 새로운 유행을 이끄는 인터넷 세상에서 개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주체적인 비판 의식이 없다면 유행이나 전체 의견에 휩쓸릴 가능성이 높다.
블로그는 인터넷 세상에서 나만의 공간이다.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너무나 상업적인 기대를 갖는 것은 안 좋다고 본다. 그냥 순수하게 즐기는 블로거들이 더욱 돋보인다. 요즘은 다양한 개성들이 모여 하나의 세상을 이루는 인터넷 세상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다만, 바라는 점은 익명이라는 특성을 악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연예인이나 공인뿐 아니라 개인을 대상으로 악플을 달거나 함부러 스팸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단속이 더욱 철저해져야 할 것 같다.
문명의 훌륭한 관객이 되는 길은 아직 멀지만 차근차근 가 볼 생각이다.
<문명의 관객>이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우리가 훌륭한 관객이 되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