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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톨른 차일드
키스 도나휴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왼쪽은 번역된 책이고 오른쪽은 원서다.
누가 책표지를 디자인했는지는 모르지만 왼쪽이 책의 분위기를 더 잘 살린 것 같다.
아름드리나무 한 가운데 소년이 서 있다. 헨리 데이 혹은 애니데이라고 불리는 소년?
판타지와 현실을 절묘히 오가며 놀라운 삶을 보여주는 책이다.
어릴 적 마루에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꿈인지 잠깐의 공상인지 모를 묘한 경험을 할 때가 있었다. 나는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느낌? 아마도 그 때의 고민이 ‘나는 누구일까?’였던 것 같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알고 있는 내 모습은 껍데기이고 진짜 나는 다른 어딘가에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현재의 나 자신에 익숙해지고 삶에 대한 의문들이 옅어지면서 그 때의 느낌도 사라졌다.
그런데 바로 이 책 <스톨른 차일드>를 읽으면서 떠올랐다.
스톨른 차일드= 바꿔친 아이, 도둑맞은 아이
늦여름 오후, 일곱 살 헨리는 몰래 집을 나와 속이 빈 밤나무에 들어가 숨었다. 그리고 숲에 살고 있는 요정 중 한 명이 헨리의 모습을 복제해서 그의 인생을 가로챘다. 원래의 헨리는 요정이 된 것이다. 숲의 요정들은 오랜 세월 동안 누군가의 인생을 도둑질하여 인간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이제 헨리가 된 소년과 요정이 된 헨리가 존재한다.
누가 진짜 헨리 데이일까?
두 사람이 교차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곱 살 이전의 헨리는 ‘애니데이’라는 요정이 되었지만 원래 자신의 삶을 잊지 못하고 헨리 주변을 맴돈다. 일곱 살 이후 헨리가 된 요정은 원래 ‘구스타프 웅게르란트’였던 자신과 헨리 사이에서 방황한다.
사실 누가 진짜 헨리 데이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두 사람이 원하는 건 ‘진정한 나’의 인생을 찾는 것이다. 과연 그들은 ‘나’를 찾을 수 있을까?
대부분 자신의 어린 시절 중 가장 오래된 기억이 여섯 살에서 일곱 살 때인 경우가 많다. 그 이전은 기억하기가 힘들다.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시기의 ‘나’가 된다는 건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고 ‘진정한 나’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일곱 살, 우리 아이도 이 나이가 되면서 변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 얘가 우리 얘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전과는 달라져서 잠시 혼란스러웠다. 아마도 헨리 아버지가 느낀 낯설음도 나와 같았을 것이다. 중요한 건 아이는 내가 낳았을 뿐 ‘제2의 나’가 아니란 사실이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온전한 사랑을 주기가 힘들다. 부모와 아이 사이도 아이의 성장처럼 성장 통이 있나보다.
키스 도나휴, 정말 대단한 작가다.
요정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인생을 가르쳐주니 말이다.
헨리 데이는 언제나 애니데이, 헨리였다. 구스타프가 헨리의 인생을 가로챈 것이 아니라 헨리 안에 구스타프라는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어린이의 무한한 잠재력은 미래의 어떤 모습이든 가능하게 한다. 마치 요정들이 누군가의 모습을 그대로 복제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가끔은 간섭하는 부모 곁을 떠난 친구들끼리 살 수 있는 요정이 부러울 때가 있을 것이다. 헨리는 자신의 삶을 도둑맞은 후에야 그 삶이 소중했음을 뼈저리게 느끼지만 말이다. 만약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고 다른 누군가로 산다면 어떨까? 그래도 변하는 것은 없다. 언제나 어디서나 ‘나’는 ‘나’로 살 테니까.
헨리가 요정 애니데이로 살면서 사랑한 스펙과 인간 헨리가 사랑한 테스를 보니 문득 인생의 소중한 한 가지가 생각난다. 바로 진정한 사랑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도 이미 알려줬다.
그러면 우리 인생에 사랑만 있으면 행복할까? 아니다. 헨리는 사랑하는 테스를 만나 결혼하고 아들 에드워드와 단란한 가정을 꾸몄지만 늘 불안했다. 진정한 나를 찾지 못해서였다. 가짜 헨리인 자신을 사람들이 싫어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아내 테스의 진실한 사랑 앞에 본래의 자신을 찾아 간다. 잊고 있던 자신의 꿈을 실현하면서 그는 진짜 헨리가 됐다. 헨리라는 이름이 헨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그것이 바로 ‘나’를 만드는 것이다.
인생이란 결국 ‘나’를 찾아가며 ‘나’를 완성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나서 무척 궁금한 것이 있었다.
작가는 W. B. 예이츠의 시 <스톨른 차일드>에서 영감을 받아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도대체 예이츠는 어디에서 영감을 받아 이런 묘한 시를 쓴 것일까? 놀랍다. 정말 우리가 모르는 요정이 어딘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둑맞은 아이
The Stolen Child
- W.B.예이츠
슬루 숲 우거진 바위투성이 언덕이
호수에 잠겨 있는 곳,
거기 나뭇잎 무성한 섬이 누워 있고
날개 퍼덕이는 황새가
조는 물쥐를 깨운다
우리는 딸기와 훔친 빠알간 버찌가
가득 담긴 요정의 술통을
거기 숨겨 두었다.
자아, 떠나자 사람의 아이야!
호수로 황야로
요정의 손에 손을 맞잡고,
세상은 네가 모르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나니.
달빛의 물결이 침침한 잿빛 모래밭을
빛으로 환하게 밝히는 곳,
머나먼 로시즈의 외떨어진 곳에서
우리는 밤새워 모래를 밟는다.
오래된 춤을 엮으며,
손을 잡고 눈빛을 섞으며
달이 둥실 떠오를 때까지
앞으로 뒤로 껑충 껑충 뛰며
우리는 공허한 거품을 쫓아다니다.
세상이 고난으로 가득하고
잠든 동안에도 걱정이 떠나지 않는데.
자아, 떠나자 사람의 아이야!
호수로 황야로
요정의 손에 손을 맞잡고,
세상은 네가 모르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나니.
글렌카아 호수 위쪽의 야산들에서
방황하는 물이 쏟아져 내리는 그 곳,
별 하나도 멱 감기 힘든
골풀 우거진 물웅덩이에서,
우리는 졸고 있는 송어를 찾아
그것들의 귀에 속삭이며
불안한 꿈을 꾸게 한다.
작은 실개울에
눈물 떨어뜨리는 고사리 밭에서
가만히 몸을 내밀며.
자아, 떠나자 사람의 아이야!
호수로 황야로
요정의 손에 손을 맞잡고,
세상은 네가 모르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나니.
우리들과 함께 그는 가리라
진지한 눈을 한 아이는
그는 더 이상 따뜻한 언덕에서 들려오는
송아지들의 나직한 울음이나
가슴에 평화를 불어넣는
화로 위 주전자의 노래는 듣지 못하리라.
혹은 갈색 새앙쥐가
귀리 상자 주변을 들락거리는 것을 못 보리라.
왜냐하면 사람의 아이, 그는 오니까.
요정과 손에 손을 맞잡고,
호수로 황야로
그가 이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슬픔이 가득찬 세상을 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