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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귀부인 살인 사건 ㅣ 탐정 글래디 골드 시리즈 2
리타 라킨 지음, 이경아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귀여운 할머니들을 떠올리니 웃음 먼저 나온다. 모여서 재잘재잘 수다 떨며 놀다가도 카드 게임 승부에 흥분하는 모습이 십 대 소녀들 같다. 사립 탐정 글래디 골드는 75세의 할머니다. 남편과 사별 후 동생 에비가 사는 플로리다 라니아 가든으로 이사 와 함께 산다. 글래디를 중심으로 모인 친구들은 71세 아이다, 83세 벨라, 80세 소피다. 평범한 할머니들이 모여서 탐정 사무소를 열었으니 이른바, <노인 전문 노인 사립 탐정>의 탄생이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은 그녀들의 활약을 통해 알 수 있다. 매력적인 여주인공이 아니라서 살짝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점점 글래디와 글래디에이터들의 깜찍한 매력 속에 빠져든다. 사람의 매력이란 보여지지 않는 은밀한 부분에서 더욱 빛이 나는 것 같다. 책이라서 전혀 할머니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다는 점이 한 몫을 했겠지만 어찌됐든 할머니들의 유쾌발랄함은 최고다.
오싹한 살인 사건을 다룬 이야기건만 너무도 유쾌하게 그려낸다. 살인 사건 자체는 끔찍한 일이지만 이 소설은 사건을 해결해 가는 글래디와 그녀들을 보는 즐거움에 있다. 우리는 누구나 흘러가는 세월을 막지 못한다. 그런데도 젊은 사람들은 노인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지는 않는다. 현재의 젊음이 영원할 거라 믿는 착각 속에 살기 때문에 노인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삶의 열정이나 욕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또한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플로리다에서 손꼽히는 부자, 귀부인들이 죽었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사로 마무리된다. 친구들과 골프 치던 중에 죽었고, 혼자 사우다를 하다 죽었고, 아이들과 놀이기구를 타던 중에 죽었으니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죽기 직전에 흔적을 남길 수는 있다. 또한 살인 사건 속에는 그들이 어떻게 살아 왔느냐가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왜 그들을 죽였을까? 미친 연쇄살인마의 범행이 아니라면 죽음 뒤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숨겨져 있다.
부자 할머니의 죽음이 세간에는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글래디는 뭔가 수상쩍은 느낌을 받는다. 비슷한 시기에 귀부인 3명의 죽음은 묘한 공통점이 있다. 남편이 죽으면서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았다는 점과 연하 매력남과 재혼을 했다는 점이다. 아무도 의뢰한 적이 없는 사건을 수사하는 글래디는 정말 호기심 넘치는 할머니다. 글래디가 없었다면 그냥 신문 한 켠에 부고란으로 끝났을 일이다. 우리에게 호기심이 없다면 삶은 참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이다. 그래서 글래디의 왕성한 호기심과 치밀한 추리를 보며 즐겁고 부러운 생각이 든다. 과연 나의 먼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투덜이 아이다, 사오정 벨라, 공주병 소피, 톡톡 튀는 에비.....어떤 모습으로 살던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70대 노인에게도 풋풋한 로맨스를 꿈꾸게 해준 글래디의 남자 친구 잭을 보니 인생이 즐거워진다.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청춘의 멋진 로맨스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글래디 일행이 '천국호' 크루즈 여행을 떠나면서 귀부인 살인 사건의 실마리는 조금씩 풀려간다. 그녀가 훌륭한 사립 탐정인 이유는 마음이 따뜻한 할머니라는 점이다. 사건 해결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녀에게는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활력이며, 의뢰인에 대한 진심이 느껴진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우려는 마음이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한다. '천국호'에서 처음 만난 에이미가 어려움에 처하자 글래디 일행이 발벗고 나서는 장면은 대한민국 아줌마의 푸근한 정과 흡사하다. 그녀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편은 아니지만 함께 나누고 즐길 줄 안다. 비록 질투심에 싸울 때도 있지만 결국에는 화해한다. 서로를 끈끈하게 이어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은 글래디의 몫이다. 반면 살인 사건의 희생자였던 그녀들은 부자 할머니라서 많은 것을 누렸지만 죽은 뒤에는 욕을 먹을 정도로 가족과 친지들을 무시했다. 오로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살다 간 그녀들은 경제적인 부자였지, 마음의 부자가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살인 사건의 희생자들과 글래디 일행의 삶이 교차되면서 행복한 노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흔히 추리 소설이라고 하면 냉철한 추리와 치밀한 사건 전개가 매력인데 이 책은 따뜻한 마음까지 보태어 유쾌하고 즐겁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젊음, 지혜, 사랑, 우정, 행복, 믿음......그리고 흘러가는 시간......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우리 삶에서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은 있다.
행복하게, 즐겁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