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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이라고 말해
우웸 아크판 지음, 김명신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이럴 수가...... 할 말을 잃는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벌어지는 내전, 종교 갈등, 기아, 성매매와 같은 불행한 일들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 책은 너무나 당황스럽다. 작가의 중단편 작품 4편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는데 주인공은 다르지만 그 아이들이 느꼈을 공포, 불안, 절망, 괴로움 때문에 서로 연결된 듯 착각을 일으킨다. 도대체 이 아이들에게 왜?
공허한 질문을 던지고 혼란스럽다. 이 지구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제목의 의미를 이해 못했다. " 한 편이라고 말해!" 그건 흑백으로 나뉜 사회에서 유리한 쪽이 내 편이라고 말하란 뜻이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종교, 정치, 그 어떤 이해 관계든지 상관 없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가치관이 있겠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은 혼돈 그 자체인 것 같다. 재빠르게 어느 편이든 선택하지 않으면 불리해진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거나 부정부패로 얼룩진 사회에서 약자로 산다는 건 견디기 힘든 고문일 것이다. 읽으면서도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아이들은 마치 힘없는 풀처럼 밟으면 밟히고 꺾으면 꺾인 채로 소리없이 고통당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그 아이들의 절망감이 전해져서 그만 힘이 빠져버린다.
이 책은 두 눈을 질끈 감거나 모른 척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도 가슴 아픈 아프리카의 현실을 보여준다. 먼 나라 이야기라고 외면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겨우 열두 살 소녀가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길거리에서 몸을 파는 일을 참아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크리스마스 성찬>에 등장하는 '마이샤'의 가족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오히려 '마이샤'의 남동생인 '지가나'만 그 상황을 참을 수 없다. 누나의 희생으로 크리스마스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 자신이 학교를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슬프고 화가 난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든 그들 가족에게 허기를 채우는 방법은 접착제를 흡입하는 것이다. 이토록 가난하고 배고픈 가족에게 어린 소녀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가봉에서 가기 위해 살찌우기>는 어린 소년, 소녀들이 해외로 팔려가는 내용이다. 크페 삼촌은 자신의 조카들을 돈 받고 팔려다가 죄책감을 느낀다. 코칙파와 예와 남매의 시선으로 바라본 현실은 아무도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다. 살기 위해 눈치보는 남매의 모습이 안타깝다. 크페 삼촌은 왜 진작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까? 더 자세한 내용은 안 나오지만 팔려간 아이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혹시나 장기매매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아닌지, 그 뒷 이야기는 안 나오지만 제발 멀리 도망갔기를 바랄 뿐이다.
<이건 무슨 언어지?>는 순수한 아이들의 우정도 한 순간에 갈라놓는 어른들이 등장한다. 각자 어떤 신앙을 가지고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걸까? 아이들이 갖는 기본적인 의문처럼 어른들이 만든 세상은 말도 안 되게 억지를 부린다. 그러나 힘없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따르는 수 밖에......
<럭셔리 영구차>는 읽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주인공 주브릴은 열여섯 살 소년이며 종교적인 문제로 오른손이 손목 부위에서 잘렸다. 종교 분쟁때문에 무슬림이 그는 남부로 피신하는 그리스도교로 위장하여 럭셔리 버스에 탄 것이다. 자리 때문에 옥신각신 싸우는 사람들 틈에서 오른손을 바지춤에 넣은 모습은 거만해보이고 버스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살기 위해 피난을 떠나는 그들이 벌이는 다툼은 축소된 종교 분쟁 같다. 정말 종교의 존재 의미가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부모님의 침실>은 끔찍했던 1994년 르완다 내전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다 읽고나니 한숨이 나오며 가슴이 묵직해진다. 언제쯤 평화로운 세상이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