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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오브 워터 - 흑인 아들이 백인 어머니에게 바치는 글
제임스 맥브라이드 지음, 황정아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 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종에 따라서 닮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때가 종종 있다. 바로 혼혈인 경우다. 자유로운 미국에서 흑인과 백인이 결혼하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었는데 의외로 아니었다.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 인종 간의 대립이 존재한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
이 책은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를 둔 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면서 써내려간 인생 고백이라 할 수 있다. 흑인과 백인, 유대인과 미국인 간의 보이지 않는 살벌한 경계에서 살아 온 그가 자신의 가족사를 이야기한다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백인이면서 미국으로 이민 온 유대인이었다. 정통 랍비의 딸인 어머니가 흑인 남자와 결혼함으로써 유대인 가족들에게 죽은 사람 취급을 당했다. 백인 여성이 흑인 남편과 흑인 아이 12명을 키운다는 건 일상이 곧 전쟁임을 뜻했다.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 냉랭한 태도를 애써 무시하면서 가족을 지켜내는 일은 모두 어머니의 몫이었다. 물론 아이들도 인종차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한 번도 자신을 유대인이라거나 백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은 피부가 옅은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피부색의 차이는 전혀 문제될 게 없었으니까.
저자인 제임스는 어린 나이에도 늘 의문을 품었다. '왜 엄마는 우리 형제들과 다르게 생겼을까? 나는 흑인일까, 아니면 백인일까?' 엄마는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숨겼기 때문에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똑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제임스 이외에도 11 명이 더 있었다는 점이다. 제임스의 친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흑인 남성과 재혼하여 4명의 아이를 더 낳았다. 모두 12명의 형제, 자매들이 북적대며 살다보니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들도 제임스와 마찬가지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고 나름의 방식으로 성장해갔다. 가난해도 불행하지만은 않았다. 다만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아야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 제임스를 위해 그토록 감추고 싶어했던 아픈 과거를 끄집어내기로 했다. 대부분 아픈 상처는 숨기고 싶다. 다시 떠올리는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이다. 왜 어머니가 애써 외면했는지 알 것 같다.
어머니는 자신의 믿음대로 최선을 다했다. 비록 그 방법이 전부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강인한 어머니 덕분에 12명의 자녀들이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나름의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괴롭혀도 끄떡하지 않는 힘, 그것은 사랑이었다. 서로 다른 종교, 인종, 민족, 국적까지도 뛰어넘을 수 있는 어머니의 사랑을 배웠다. 아픈 상처뿐인 과거일지라도 솔직히 드러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치유된다. 제임스를 비롯한 형제, 자매들과 어머니 루스 맥브라이드 조던 여사의 삶은 아름답고 용감했다. 그의 어머니는 2010년 1월 9일 자신의 집에서 88세의 나이로 사망했지만 이 책과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맑고 투명한 물과 같다면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