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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퍼케이션 1 - 하이드라
이우혁 지음 / 해냄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퇴마록>의 저자 이우혁의 신간이란 점에서 엄청난 기대를 했다.
과연 놀라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왠지 미국 범죄드라마 내지 공포 영화를 보는 것 같아 조금 당황스러웠다. 시작부터 보여주는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한 사건 현장에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저자는 이 책을 출간하기까지 15년의 구상과 준비기간을 거쳤다고 한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인 작품일 것이다. 범죄심리학과 그리스 신화에 기반을 둔 이야기라서 한국보다는 미국을 배경으로 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퇴마록>만큼의 독특하고 신선한 요소는 덜했던 것 같다.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의 공포 영화를 떠올릴 정도로 거침없이 잔인하여 상당히 읽기 힘들었다.
<바이퍼케이션>이란 원래 수학용어로 불확실한 결과를 뜻하는데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만약 인간이 어떠한 충격을 받는다면 내면의 선악은 어떻게 드러날까? 평화롭던 소도시에서 갑자기 이상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여자를 납치하여 피만 뽑아 마셔서 뱀파이어로 불리는 살인마와 그를 흉내내는 모방범, 그리고 헤라 헤이워드 부인, 헤라클레스, 하이드라로 불리는 존재까지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베일에 가린 그들의 정체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뱀파이어를 잡기 위해 파견된 FBI 에이들은 가르시아 형사반장에게 비밀스런 수사협조를 부탁한다. 천재 프로파일러 에이들은 사건을 풀어가는 핵심인물이다. 그런데 뛰어난 지성과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 에이들은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어린 시절 죽은 누이 벨라와 관련된 과거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도 자신의 삶이 너무나 억울하게 짓밟히게 되면 변할 수 밖에 없다. 최근 범죄 드라마나 영화가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인간 내면의 갈등이 아닐까 싶다. 만약 사랑하는 가족이 범죄자에게 무참히 살해된다면 그 당사자의 마음은 갈가리 찢긴 듯 고통스러울 것이다. 분노와 슬픔, 삶을 뒤흔드는 절망감은 너무나 강렬하여 가끔은 '복수'라는 형태로 드러나곤 한다. 아무도 복수를 정당하다고 말하지 않지만 복수는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싶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신들은 엄청난 능력을 지녔을 뿐, 인간과 다를 바 없는 감정 싸움과 전쟁을 일으키는 존재로 묘사된다. 신들의 왕 제우스는 폭군이며 바람둥이여서 아내 헤라의 질투심을 자극한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가 다른 여인을 통해 낳은 자식이어서 헤라의 미움을 받는다. 헤라의 저주로 자기 자식을 죽이고 괴로워하던 헤라클레스는 델포이의 신탁을 청하여 죄를 씻고자 한다. 신탁은 왕 에우리스테우스의 명을 따르면 불사의 몸이 된다고 알려준다. 에우리스테우스의 명이 바로 그 유명한 헤라클레스의 12과업이다. 첫 번째 과업은 네메아의 사자 퇴치이고, 두 번째 과업은 레르네에 사는 하이드라(물뱀) 퇴치로 결국 헤라클레스는 모든 과업을 완수하고 천상 세계로 올라간다. 그러나 현실에 등장한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과업을 위해 인간의 희생은 아랑곳하지 않는 잔인한 존재다. 영웅따위는 없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악한 괴물일뿐이다. 인간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한순간에 멸망시킬 강력한 힘을 지녔다. 이러한 힘의 근본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예전에 미국 연쇄 살인마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들은 인간 자체를 혐오하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 그래서 정상적인 인간 심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살을 도려내거나 인육을 먹고 피를 마시는 등의 끔찍한 행위를 즐기는 그들을 인간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다. 단순한 픽션으로 바라보면 공포를 자극하는 재미가 있겠지만 현실에 존재하기 때문에 섬뜩하고 두렵다. 도대체 무엇이 인간을 사이코패스라는 괴물로 변화시키는 것일까? 어떠한 바이퍼케이션이 작용한 것일까?
솔직히 마지막까지 헤라클레스와 하이드라의 정체를 모르겠다. 표면적인 그들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그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는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타락한 세상을 구원할 진정한 영웅은 없는 것일까? 재미로 보기에는 너무 잔인하고 진지한 주제였다. 에이들이 만든 마지막 시나리오는 과연 자신의 의지였을까? 우리의 생각과 의지가 외부의 영향없이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인간 내면 심리가 마치 우주의 신비 같다.
"괴물을 상대하는 자 괴물이 되지 않게 주의하라.
그대가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보리니."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26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