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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아이들 1 - 숨어사는 아이들 ㅣ 봄나무 문학선
마거릿 피터슨 해딕스 지음, 이혜선 옮김 / 봄나무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가족계획 표어가 나올 때가 있었다. 그런데 불과 몇 십 년 만에 세상이 바뀌어 출산장려정책을 펼치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낄 따름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나라의 경우다. 이웃나라 중국은 아직까지도 강력한 산아제한을 하고 있다. 법적으로 한 가구에 한 명의 자녀만을 허용한다. 그로인해 둘째, 셋째 아이들은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 아이로 살아야 한다.
이 소설은 바로 그림자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소설 속의 사회는 식량난으로 인해 국가적 위기를 맞으면서 전제국가로 변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배계층은 배런이라고 부르며 일반인은 상상할 수도 없는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 다만 그들도 예외 없이 지켜야 할 법이 있는데 그건 자녀를 둘 이상 낳으면 안 된다는 인구법이다. 만약 셋째 아이를 낳는다면 어떻게 될까? 끔찍하지만 인구 경찰에게 발각되는 즉시 죽음이다.
루크는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림자 아이다. 형들은 자유롭게 외출을 하는데 왜 자신만 숨어 살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처음에는 자신이 어리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열두 살이 된 지금에서야 조금씩 자신의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된다.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건 어린 루크에게는 너무도 괴롭고 슬픈 일이다. 그래도 루크 집 근처에 숲이 있어서 바깥 활동이 어느 정도 가능했었는데 갑자기 숲을 없애고 배런들이 살 저택을 만들면서 꼼짝없이 집 안에 갇혀 살게 된다.
문득 이 소설을 읽으면서 미래 사회를 상상해본다. 점점 심해지는 빈부격차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인구정책을 감안하면 소설 속 사회가 비현실적이지만은 않다. 누가 알겠는가?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지금 사회가 영원하리란 법은 없다. 언제든 끔찍한 독재자가 등장할 수도 있고 새로운 신분계층이 생겨나면서 철저히 통제된 사회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사회든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희망이 없다.
루크는 우연히 배런들이 사는 저택에도 셋째 아이가 있다는 걸 발견한다. 그리고 무작정 그 집으로 몰래 들어가 만나는데 그 아이는 또래 소녀인 젠이다. 가족이외에는 외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온 루크와는 달리 젠은 인터넷을 통해 다른 그림자 아이들과 교류하며 불의한 세상과 맞서려 한다. 루크는 젠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조금씩 배워간다.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서 당당히 정면에 나서려는 젠과 두려움에 숨어버리는 루크. 누가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없다. 각자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자 아이들에게 희망은 무엇일까? 더 이상 숨을 필요 없이 세상을 자유롭게 사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가 그림자 아이들에게는 절실한 희망이 된 것이다.
이 소설은 한 권으로 끝나지 않는다. 웅크리고 숨어만 있던 루크에게 놀랍고도 두려운 기회가 찾아온다. 드디어 세상을 향해 나온 루크는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나야만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연 이 소설은 어린 소년을 영웅으로 만들어 우리에게 희망을 줄 것인가, 아니면 순응하며 살아남는 현실주의자의 모습을 통해 비극적인 미래를 부각시킬 것인가?
그림자 아이들은 암울한 미래 사회를 대표하는 소외계층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없는 법이 존재하는 사회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리고 약해보이는 루크가 우리를 대신하여 위험천만한 세상에 뛰어든다. 비록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소년이지만 루크에게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용기가 있으니까 잘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어서 다음 권이 나오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