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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는 자 1 ㅣ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시공사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과연 언제 '괴물'로 변해버리는가? (183p)
굉장히 섬뜩한 범죄 현장을 차분하게 묘사하는 놀라운 작품이다. 저자는 실제 범죄학과 행동과학의 전문가다. 이 작품은 자신이 실제 참여한 사건을 소재로 집필한 소설이다. 따라서 작품 속 연쇄살인범은 작가의 상상이 아닌 실존 인물이란 뜻이다.
공포 영화나 소설을 볼 때, 나름의 안전장치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진짜가 아니야.'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약간의 오싹하고 서늘한 느낌을 받으면서 즐길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이야기라면 공포는 단순한 무서움을 넘어선 위협으로 느껴진다.
어린이 유괴사건, 그리고 숲 속에서 땅에 묻혀있는 여섯 아이의 팔이 발견된다.
데비. 에닉. 세이바인. 멀리사. 캐럴라인. 그리고 이름모를 소녀.
일곱 살부터 열세 살의 소녀들을 죽인 살인마, 괴물의 정체는 뭘까?
범죄학자 고란 게블러 박사를 중심으로 수사팀이 구성된다. 그들은 괴물에게 '앨버트'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건 범인을 '괴물'이라고 부르며 우리와 다른 차원의 존재라고 믿는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다. 분명 연쇄살인범, 사이코패스는 인간이 아닌 '괴물'이지만 실제로 체포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평범하거나 온순한 경우가 많다. 어쩌면 그 점이 우리를 더욱 소름끼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동화처럼 끔찍한 괴물의 모습이었다면 속는 일은 없었을텐데 그들은 멀쩡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악마와 같은 일들을 자행한다.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알렉산더 버먼이 붙잡힌다. 그의 차 트렁크에는 첫번째 희생자 데비의 시체가 들어있다. 하지만 그는 진짜 범인이 아니다. 아동성애자라는 점에서 파렴치한 놈은 맞지만 살인자는 아니다. 먹잇감을 찾던 중 자신의 이름을 아는 어떤 사내에게 구타 당하고 떠나라는 위협을 받는다. 유괴 사건으로 거리와 도로에는 경계태세로 경찰관들이 있는 상황이라 수상쩍은 알렉산더는 붙잡히고 유치장에서 자살한다.
이 사건에 합류하게 된 밀라 바스케스 수사관은 뛰어난 통찰력으로 게블러 박사와 함께 실마리를 찾아간다. 1권은 서서히 '앨버트'의 정체를 드러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고란 게블러 박사와 밀라 바스케스 수사관이란 인물의 내면을 보여준다. 범죄자와 그들을 쫓는 사람들. 겉보기에는 그들이 선과 악을 대변하는듯 보이지만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악마의 속삭임을 들을 때가 있다. 범죄자도 한때는 천진난만한 아이였을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성실하고 친절한 이웃이 연쇄살인범일 수 있다는 걸 잊지말아야한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내면을 잘 관리해야 한다. 악마의 속삭임은 '앨버트'와 같은 괴물에게는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게 하지만 우리에게는 어떤 일을 저지르게 할 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를 더욱 공포스럽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싶다. 1권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는다.